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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7, 2026

세지는 당원 권력, 심해진 ‘정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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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전화 폭탄’에 위축…“소수 강성 당원에 정당이 포획돼”
2000년대 열린우리당 처음 표방…이재명·장동혁 당권 장악 배경
당비 납부 당원 여당 152만·국힘 100만…의사 결정 영향력 커져
여야 모두 1인1표제 등 당원 뜻 제도적 반영…정치인들 입지 축소
‘전업 당원’ 과대 대표…“당원이 다 결정하면 정당은 왜 필요한가”

국민의힘 A의원은 최근 당 지도부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문자폭탄 및 팩스 공격을 받았다. 이 의원은 “팩스 수신을 막아놓으니 옆방인 민주당 의원실로 나에게 ‘팩스를 보게 하라’고 연락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B의원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당내 일부 세력을 비판한 적이 있다. 언론보도로 공개되지 않았는데 그날 밤 지역구 일부 당원들에게 “두고 보자”는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고 행동하는 당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야도 경쟁적으로 당원주권·당원중심 정당을 강조하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는 내가 만든 말”이라고 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당원중심정당”을 내세우고 있다. 당원중심정당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당원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 정당정치의 미래일까.

당원주권정당론은 당원의 정치 참여를 확대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반면 일부 강성 당원의 입김이 커지면서 극단적 진영주의가 강화되고, 정치인의 자율성과 책임정치가 약화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원 권력의 강화가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를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당원중심정당을 대표적으로 표방한 건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기간당원제를 도입해 당비를 내는 당원에게 당직자와 공직후보 선출권을 줬다. 이는 3김 시대 제왕적 총재들이 당 권력을 독점하던 톱다운 방식을 해소하는 개혁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당원주권정당론이 최근 재부상한 것은 비주류 정치 지도자들이 당권을 장악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22년 각종 당원 플랫폼을 설치했고, 2023년 1월 정치혁신위원회를 출범하며 정치개혁은 “당원이 주인인 제대로 된 민주정당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인사는 “당 주류가 아닌 변방의 정치인이었던 이 대통령을 중앙정치 무대로 끌어올린 건 국회의원들이 아닌 당원들”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길이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정당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영남 출신도, 중진도 아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탄생시킨 힘은 당원이었다. 장 대표는 당원중심정당을 임기 2년차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한 국민의힘 당권파 인사는 “과거에는 원내 기득권인 의원들, 기성 언론이 당의 대주주 행세를 하며 힘으로 당원들을 찍어눌렀지만, 장 대표 체제가 되면서 당원중심주의가 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여야 정당의 핵심 당원 숫자는 늘어났다. 민주당 권리당원은 올해 8·17 전당대회 기준 152만여명으로 파악됐다. 국민의힘은 지난 4월 100만 책임당원 돌파 기념식을 했다. 권리당원이나 책임당원은 모두 당비를 내는 당원을 말하는데 최근 1년 내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하면 자격이 주어진다.

여야가 당원 권력 강화에 집중하면서 이를 제도화하는 조치도 이어졌다. 민주당은 8·17 전당대회에서 1인1표제를 처음 도입했다.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기초단체장 등 대의원 표의 가치가 권리당원과 같아졌다.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 비중은 계속 높아져 민주당은 2024년 8월 전당대회 때 적용된 70% 비중을 올해에도 유지했다.

국민의힘은 새누리당 시절인 2014년 1인1표제를 도입했다. 민주당보다 12년 앞서 당원주권시대를 연 셈이다. 국민의힘 역시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계속 높여 현재 80%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협위원장 선출 권한도 책임당원에게 이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직이 아닌 국회직에도 당원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도 등장했다. 민주당은 2024년 6월부터 국회의장·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원투표 20%를 반영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다른 당권파 인사는 “기득권인 의원과 당원들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지고 있다”며 “원내대표 경선에도 당원 뜻을 반영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이 뽑으면 된다”며 “전체 당원이 국회의장이 누구인지 세세히 알면서 개입을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당원 권한이 강해지고 당원 숫자가 늘어나면서 정작 정치 주체인 정치인들의 입지는 축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여야를 가리지 않는 문자폭탄에 국회의원들이 위축돼 있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를 두 대 쓰는 의원들을 다수 볼 수 있다.

민주당 C의원은 최근 스마트폰에 쏟아지는 당원 문자메시지를 ‘읽음’ 표시만 한다고 했다. 욕설과 비난이 난무해 한동안 읽지 않았더니 “왜 안 읽느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읽음 표시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국민의힘 D의원은 “당내 경선을 생각하는 의원들은 본인 판단보다는 당원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의원총회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도 생겼다. 민주당 초선 E의원은 “의총 발언이 새나가 언론에 보도되면 그날부터 문자폭탄과 전화항의가 쏟아진다”면서 “소신 있게 발언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정치문화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정책·입법 등 의정활동보다 당원에 구애하기 위한 유튜브 채널에 집중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보좌진 9명 중 5명을 유튜브 제작을 위해 쓰는 의원실도 있다”고 전했다.

당원 권한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전업’, 강성 당원들의 뜻이 과대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 10년간 보좌관으로 일한 민주당 인사는 “하루 종일 정치 뉴스, 유튜브를 소비하고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당원들의 뜻이 전체 당원의 뜻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F의원은 “스레드 같은 공간에서는 20·30 남성 청년들이 과대표되는 것 같다”며 “스레드 게시물만 보고 있으면 전체 당원이나 국민 뜻과 괴리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당원들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일부 강경 목소리가 득세하고, 정치 공론장이 대화와 타협보다는 적대와 대결로 흐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원 뜻을 많이 반영하는 것은 추구해야 할 방향이지만 타협과 조율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원중심정당론이 최초 부상했던 시절인 2005년 정진민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논문 ‘지구당 폐지 이후의 새로운 정당구조와 당원중심 정당운영의 범위’에서 전망한 결과가 일부 나타났다. 당시 정 교수는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을 건설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들 소수의 정당활동가들에 의해 사실상 정당이 포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정당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유권자들의 선호와는 거리가 있거나 왜곡된 후보 선출이나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국민의힘 비당권파 G의원은 “당원들의 뜻을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건 원론적으로 옳다”면서도 “지도부가 강경보수들에 휘둘리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는 과정이 당원중심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대의원은 “생업이 있는 당원들을 대신해 정치를 더 많이 고심하고 그만큼 더 좋은 결정을 대리해서 내준다는 취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대의원의 의미가 없어졌다”며 “이런 과정이 정치실종”이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수도권 H의원은 “당원이 직접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 정치라면 국회의원은 왜 필요하고, 정당은 왜 필요하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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