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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12, 2026

[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 면역계, 몸속의 군인과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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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계의 역할

[AI 활용 제작 이미지]

면역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의사는 전쟁의 언어를 즐겨 쓴다. 침입자, 방어, 전사 같은 말이다. 틀린 비유는 아니다. 그런데 면역세포의 하루를 따라가 보면 무기를 드는 시간보다 몸 안을 치우고 정돈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몸에서는 날마다 엄청난 수의 세포가 수명을 다한다. 죽은 세포와 망가진 단백질, 몸속에 들어온 먼지를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조직은 금세 엉망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면역계를 '군인과 청소부'라고 부른다.

치우는 일의 맨 앞줄에는 식세포가 있다. 이름 그대로 먹는 세포다. 세균이나 세포 찌꺼기를 만나면 세포막을 발처럼 뻗어 감싼 뒤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면 세포 안의 작은 주머니인 리소좀이 소화효소를 쏟아부어 삼킨 것을 녹인다.

식세포는 온몸에 퍼져 있고, 자리 잡은 곳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혈액과 조직을 돌아다니는 호중구와 단핵구가 있고, 간에는 쿠퍼세포가 있다. 폐 깊숙한 곳에는 폐포 대식세포가, 뇌와 척수에는 미세아교세포가 산다. 일터는 달라도 하는 일은 같다. 세균만 상대하지도 않는다. 수명을 다한 적혈구, 손상된 조직의 잔해, 숨 쉴 때 폐로 들어온 미세한 먼지까지 이들이 삼켜 치운다.

◇ 변절한 세포를 가려내는 일

면역계가 감시하는 대상은 바깥에서 들어온 적만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생긴다. 대부분은 세포가 스스로 고치거나 스스로 죽는다. 그러지 못한 세포 가운데 일부는 통제를 벗어나 끝없이 불어나는 암세포가 된다.

이런 세포를 찾아내 없애는 일도 면역계가 맡는다. 살해 T세포와 자연살해(NK)세포가 몸을 돌며 비정상적인 표지를 단 세포를 골라낸다. 그리고 표적 세포에 달라붙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질을 쏟아낸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작은 T세포가 몇 배나 큰 암세포에 붙어 있다가, 얼마 뒤 암세포가 쭈그러들며 부서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암이 생긴다는 것은 이 감시망이 어딘가에서 뚫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다시 알아보도록 돕는 면역항암제가 최근 암 치료의 큰 줄기가 된 것도 이런 원리에 기댄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 우리는 해열제부터 찾는다. 그런데 열은 몸이 일부러 올리는 것이다. 체온이 오르면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는 증식이 둔해지고 면역세포의 움직임은 활발해진다. 의학계는 발열을 감염에 맞서는 적응 반응으로 본다.

미국소아과학회가 체온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해열제의 목표로 삼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열제는 아이가 열 때문에 몹시 힘들어할 때 편하게 해 주려고 쓰는 약이다. 다만 몇 가지 경우는 체온과 상관없이 곧바로 진료받아야 한다. 생후 3개월이 안 된 아기가 열이 날 때, 아이가 축 처지거나 숨쉬기 힘들어할 때, 경련할 때다.

흔히 먹는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해열 및 진통제 성분으로 두통, 치통, 근육통, 신경통, 생리통 등 경증에서 중등도의 통증과 발열을 완화함)도 가볍게 볼 약은 아니다. 정량을 지키면 안전하다. 그러나 여러 종합감기약에 같은 성분이 겹쳐 들어 있어 모르는 사이 과량을 먹기 쉽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과다 복용이 급성 간부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군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피아 식별이다. 전투기가 아군기와 적기를 가려내는 데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듯, 면역계도 무엇을 공격하고 무엇을 내버려 둘지 끊임없이 판단한다. 음식으로 먹은 단백질은 소화돼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간혹 특정 성분을 적으로 오인하면 두드러기가 돋는다.

이 판단이 어긋나는 방향은 두 가지다. 반응이 지나치면 과민증이 된다. 꽃가루나 집먼지진드기처럼 해롭지 않은 물질에 B세포가 'IgE'(immunoglobulin E, 면역글로불린 E)라는 항체를 만들어낸다. 이 항체는 피부와 점막의 비만세포에 달라붙어 기다린다.

같은 물질이 다시 들어오면 비만세포가 '히스타민'(Histamine, 몸의 면역계, 신경전달, 소화 과정에 관여하는 유기 질소 화합물이자 면역계 물질)을 쏟아내고, 몇 분 만에 콧물과 재채기, 가려움이 터진다. 즉시형 알레르기다. 고초열(꽃가루 알레르기)과 천식이 여기에 속하고, 항히스타민제가 잘 듣는 것도 그래서다. 금속이나 옻에 닿고 하루 이틀 뒤에 피부가 짓무르는 접촉피부염은 성격이 다르다. T세포가 주도하는 지연형 반응이어서 항히스타민제보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쓴다.

면역계가 자기 조직을 적으로 몰면 자가면역질환이 된다. 갑상선을 공격하는 하시모토병과 그레이브스병, 췌장의 인슐린 분비 세포를 파괴하는 제1형 당뇨병이 있다. 관절을 무너뜨리는 류머티즘 관절염, 온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루푸스도 같은 계열이다.

반대로 반응이 모자라면 면역결핍이다. 타고나는 경우도 있고,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면역세포를 무너뜨리는 에이즈처럼 살면서 얻기도 한다. 장기이식 환자는 일부러 이 상태를 만든다. 이식받은 장기를 면역계가 남의 조직으로 알아보고 공격하지 않도록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면역은 강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알맞게 반응할 때 몸을 지킨다.

◇ 믿음도 약이 된다

면역계를 움직이는 것은 병원체와 약만이 아니다. 미국 위스콘신대 브루스 배릿 교수 연구팀은 감기 초기 환자 719명을 네 그룹으로 나눴다.

첫째 그룹에는 허브 추출물 '에키네시아'(Echinacea,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감염, 통증, 상처 치료에 사용해 왔으며, 이후 서양에서도 감기 치료제로 인기를 얻은 물질)를 주면서 그 사실을 알렸다. 둘째 그룹에는 에키네시아를, 셋째 그룹에는 위약을 주되 무엇인지 알리지 않았다. 넷째 그룹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2011년 학술지 '가정의학연보'(Annals of Family Medicine)에 실린 결과를 보면 네 그룹 사이에 감기의 강도나 기간 차이는 통계적으로 뚜렷하지 않았다. 감기에 좋다는 허브의 효과는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었다. 에키네시아가 감기에 듣는다고 믿은 사람들은 알약을 받았을 때 증상이 더 가볍고 짧은 경향을 보였다. 그 알약이 진짜든 가짜든 마찬가지였다.

면역력을 높인다는 식품과 보조제는 넘쳐나지만, 효과가 제대로 검증된 것은 드물다. 이 연구가 보여주듯 그런 제품에서 느끼는 효과의 상당 부분은 믿음에서 온다. 믿음이 몸을 움직인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다만 그 믿음에 값을 비싸게 치를 이유는 없다.

면역계는 바깥의 적과 싸우는 군대다. 날마다 몸속을 치우는 청소부이고, 변절한 세포를 가려내는 감시자이기도 하다. 더 넓게 보면 몸이 원래 있어야 할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적응해 가도록 돕는 체계다.

열이 나면 몸이 하는 일을 믿고 쉬어 주는 것, 내 몸의 군인과 청소부가 제 일을 하도록 거드는 것이 필자가 전하는 'K-건강법'의 면역 관리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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