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서 안전한 일상을 여는 사람들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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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석 | 역무원
“후, 후… 이번 열차는 우리 역의 마지막 열차인 사당행 열차입니다. 승강장에 계신 승객들은 모두 승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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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시. 마지막 승객까지 떠나보낸 차갑게 식어버린 승강장에 역무원의 알림 방송만이 무겁게 깔린다. 역무원들은 승강장, 대합실, 화장실 등 역사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승객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막차 시간은 역무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간대다. 승객들이 안전히 귀가할 수 있도록 출구를 안내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린다. 승강 설비를 멈추고, 출입구 셔터를 내리고, 조명을 끄면 어두컴컴해진 대합실이 드러난다. 그제야 지금 서 있는 곳이 지하 깊은 곳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내 바깥 공기와 역사 내부의 공기를 섞어주던 환기 설비마저 가동을 멈추면, 눅눅한 지하의 냄새가 역 내부를 메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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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정신없이 움직인 지하철의 하루는 이렇게 마감된다. 열차는 멈췄지만, 지하의 노동자들은 멈추지 않는다. 조명이 꺼지고, 지하의 공기가 더 이상 순환하지 않아도, 지하의 노동자들은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한다. 이들에게 오늘의 영업 종료는 곧 내일의 영업 준비와 같은 말이다.
지하의 노동자들은 승객들이 남기고 간 희로애락의 흔적을 정리하듯 지하 곳곳을 정비한다. 선로에 떨어진 유실물을 수거하고, 승강장의 먼지와 토사물을 청소하고, 각종 기기와 설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열차와 승객이 오가는 시간에는 감히 하지 못했던 점검 작업이 비로소 시작된다. 셔터가 굳게 닫힌 역사 안에서는 또 다른 삶의 터전이 펼쳐진다. 역무원을 비롯해 청소노동자, 기술노동자, 선로 점검 노동자 등 내일을 준비하는 이들의 수많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매캐한 터널의 먼지가 노동자의 삶 위로 차곡차곡 쌓여간다. 네시간 남짓, 텅 빈 지하철 역사를 뜯고 만지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밝아온다. 멈춰 있던 배기구에서 서늘한 새벽 공기가 뿜어져 나오면, 셔터를 올리고 다시 승객을 맞이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지하의 노동자들은 아침 햇살이 아닌, 배기구 돌아가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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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시, 셔터가 올라가기도 전부터 삼삼오오 승객들이 몰려든다. 이내 승강장이 가득 찬다. 책을 읽는 사람, 통화하는 사람,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사람, 쪽잠을 청하는 사람…. 첫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표정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한다. 사당역에서 출발한 4호선 첫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이미 좌석은 꽉 차 있고, 서서 가는 승객도 눈에 띈다. 첫차가 아무런 이상 없이 안전하게 운행되는지 확인하는 것 또한 역무원의 역할이다. 승객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첫차에 무사히 오른 것을 확인한 뒤 승무원에게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낸다. 비로소 캄캄한 지하에서 준비한 보람이 밀려온다.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하도록 하고, 또 끝맺도록 하는 지하철 노동자들에게는 일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하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지하철이 무사히 운영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돕는 것이 역무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업무 영역에도 한계가 없다.
역 이용과 역세권 안내부터 교통약자 지원, 응급환자 대응 등 서비스 업무는 기본이다. 각종 기기와 설비 고장 시 초기 조처를 하는 엔지니어 역할부터 화재 진압, 범죄 예방, 시설물 보호 등 안전 관리까지 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일차적으로 책임진다. 그러나 정작 역무원들은 자기 자신의 안전조차 담보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웬만한 서울 지하철 역은 많게는 네다섯명, 적게는 단 두명이 이 모든 업무를 감당한다. 하루 5만여명이 이용하는 어느 역에서는 역무원 단 세명이 시민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역무원들은 텁텁한 땅속에서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간다. 낮과 밤이 바뀐 일상을 견디면서도, 서울의 하루가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역을 움직인다.
역무원과 시민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지하철을 꿈꾼다. 하지만 시는 교통공사의 만성적인 적자를 핑계로 환기, 공기질, 승강설비 개선 등 지하 환경 개선에 미온적이다. 나아가 가뜩이나 부족한 현장 인력을 더 감축하려고 한다.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노동자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효율과 숫자의 논리가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가치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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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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