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지역에 남으려면…먼저 ‘어른’이 필요했다
30년 닫혔던 목욕탕이 카페로
소멸 위기 어촌의 청년마을 실험
3년간 청년 9천명 다녀가고 11명 남아
정착률 벗어나, 청년·지역 가교 중요
공간과 활동은 예산이 채워도
청년 ‘비빌언덕’은 지역 공동체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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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는 연중 관광객으로 붐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은 내륙의 사적지만 둘러보기 때문에 경주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다. 경주역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들여 산을 넘으면 바닷가 동네 감포읍과 만난다. 월성원전을 등지고 동해안 어항들이 줄지어 늘어선 바닷가 한가운데 감포항이 있다. 감포는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군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았을 만큼 번성했지만, 지금은 인구 5000여명의 작은 어촌이다.
13일 찾아간 감포항 뒷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기 버거울 만큼 좁은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그곳에 사각형 굴뚝이 우뚝 솟아 있는 카페 ‘1925감포’가 있다. 30년 넘게 문이 닫혀 있던 옛 목욕탕의 흔적을 고스란히 살려낸 공간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카페가 있는 골목은 낮에도 지나기가 꺼려지는 곳이었다. 목욕탕 입구는 화재 위험 때문에 합판으로 막혀 있었고, 어두운 골목엔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보행 보조기를 끄는 할머니가 종종 지날 뿐이었다. 지금 그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주말이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온다.
쇠락하던 감포에 ‘젊은 변화’가 일어난 것은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로 선정된 ‘가자미 마을’ 프로젝트 덕분이다. 경주의 시어(市魚)이자 감포 특산물인 가자미를 매개로 한 마을 활동은 3년의 정부 지원이 끝난 뒤 경상북도의 추가 지원으로 올해 5년차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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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것과 미래 사이
청년마을 프로젝트 ‘가자미 마을’을 만든 건 로컬 콘텐츠 회사 ‘마카모디’다. ‘모두 모여라’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을 회사 이름으로 삼은 건 김미나(40) 대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인도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2014년, 그는 고향인 경주에서 카레집을 열었다. ‘재미있는 게 없다’며 심심해하던 친구들과 가게 앞 공원에서 프리마켓을 연 것이 시작이었다. 얼마나 참여할까 싶었지만, 방구석에 숨어 있던 재주꾼들이 속속 참여했다. 첫 회부터 서른 다섯팀이 모인 프리마켓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모두 모여’ 소통하는 커뮤니티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을 왜 모으냐, 정치하려는 거냐”는 오해도 받았지만, 1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람을 모으고 판을 벌여왔다. 감포는 그 여정에서 만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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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토박이인 김 대표에게도 감포는 낯선 동네였다.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오는 곳 정도였던 감포가 새롭게 다가온 건 2020년,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구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면서부터다. 이곳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때 감포에서 4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온 서삼란씨(70)와 인연이 닿았다. 서씨는 감포를 “오래된 미래”라고 불렀다. 30~40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앞이 그려지는,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라는 뜻이다. 서씨는 “예측 가능한 동네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며 청년들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쉼표가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카모디’를 통해 모인 청년들이 낡은 목욕탕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마냥 반가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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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래된 목욕탕을 사들이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이때 지역 어르신들이 나섰다. 어린이집 원장, 외항어선 선주, 보리밥집 주인 등 지역 주민 6명은 청년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고자 주민단체 ‘함께가는길’을 꾸렸다. 서씨는 “주민들이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청년들과 함께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어르신들은 목욕탕을 사들여 청년들에게 3년간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했다. 이렇게 마련해 목욕탕 카페로 변신한 ‘1925 감포’를 기반으로 마을에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서씨가 기꺼이 청년들의 언덕이 된 데에는 그만의 지론이 있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고 하잖아요. 크고 화려한 건 금방 사라지고, 눈에 안 띄어 버려둔 것들이 그 자리를 지킬 때가 많거든요.” 눈에 띄지 않아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오래간다는 그의 생각은, ‘함께가는길’의 운영 방식에도 배어 있다. 사람을 더 모아 큰일을 해보자는 말이 나와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의견이 갈리고 초심을 잊어요. 우리는 이 골목을 지키자고 모인 거지, 다른 일 하자고 만든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회원은 예닐곱을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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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이라는 잣대를 넘어
마을 어르신들의 지원 덕에 청년들은 여러 시도를 이어갔다. 마카모디는 2022년 청년마을에 선정된 뒤 해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첫해엔 가자미로 만든 음식을 개발해 파는 ‘가자미 식탁·가자미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식당 창업은 버거운 무게였다. 일회성 경험은 가능했지만 자기 식당을 차리려는 이들은 드물었다. 참여한 청년들이 원한 것은 경주에 어울리는 관광·여행업이었고, 이듬해 사업은 도슨트 투어와 사운드 스케이프(소리 풍경) 투어를 결합한 ‘가자미 여행사’로 옮겨갔다. 지금은 감포에 정착해 빈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린 청년과 손잡고 선상 낚시나 마을 산책을 곁들인 1박2일·2박3일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청년들을 오래 붙잡는 대신 짧게 인연을 맺고 이들이 계속 감포를 찾는 것으로 방향을 옮긴 데에는 ‘청년 정착’에 대한 김 대표의 회의가 깔려 있다. 이것저것 시도하며 자기 길을 더듬어 가는 청년들에게 한곳에 뿌리내리길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22~2024년까지 지역살이 및 네트워킹 프로그램으로 9300여명 청년이 ‘가자미 마을’과 인연을 맺고 11명만이 감포를 비롯한 경주에 정착했지만, 그는 이 숫자를 실패로 읽지 않는다.
김 대표는 “청년들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경주만 알았던 청년들이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을 들어와 감포를 알게 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가자미 마을 프로젝트로 감포와 인연을 맺은 뒤 자기 고민이 무르익었을 때 스스로 이 지역 일대로 찾아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다림은 예상 밖의 방식으로 열매를 맺는다. 가자미 마을을 접했던 한 청년은 감포와 경주를 오가며 느슨한 관계를 이어가다 경주 시내에 책방을 열었다.
김 대표는 "청년마을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마을을 운영하는 팀은 대개 그 지역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버틴 조직이다. 청년의 지역 유입과 정착을 돕는 건 원래 공공의 역할이지만, 정부가 예산을 주고 이 일을 청년마을에 맡긴 셈이다. 그런데도 공공은 매번 “언제 자립할 것이냐”고 묻는다. 김 대표는 “이만큼 버텨온 조직이라면, 가르치고 관리해야 할 수혜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에 기대한 파트너십을 마카모디는 지역주민과 쌓아왔다. ‘함께가는길’은 마카모디가 힘들 때 찾아가면 손을 보태되 먼저 나서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청년들이 방법을 찾을 때까지 지켜보고 기다렸다. 서삼란씨는 “청년들이 알아서 잘해요. 우리는 그저 지켜보는 거죠”라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지역 어르신들이 마카모디의 비빌 언덕이 되었듯, 마카모디는 이제 지역을 찾는 청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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