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상업적 합리성’을 넘어 임상옥의 안목으로…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는 거상(巨商) 임상옥의 안목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사랑방은 장사 밑천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오자 임상옥은 그에게 거금 2,000냥을 내준다. 아무런 담보도, 원리금 상환에 관한 약정도 없었다. 돈 빌린 사람은 종적없이 사라졌다가, 6년 뒤 장뇌 삼 10만냥 어치를 수레에 싣고 갑자기 나타났다. 그 사람은 인삼씨를 사서 깊은 산에다 뿌렸다가 거둬 온 것이다. 둘은 수익 10만냥을 50대 50으로 나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선뜩 이해하기 어려운 거래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상인으로서 당시의 통상적 상관행에 따라 거래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6년간의 사업수익을 50대 50으로 나눈 것이 당시 상관행에 부합했다면 그것은 ‘상업적으로 합리적인(commercially reasonable)’ 거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처음 돈을 건넬 때 원리금 회수방법이나 사업 실패 시 누가 손실을 부담하는지 등에 명확히 정했다면 훗날 분쟁의 소지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쟁이 없으면 상업적 합리성을 따질 이유도 없다. 문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거래 당시 전문적인 상인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가 법적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것이 ‘상업적 합리성(Commercial Reasonableness)’이다.
지금 한미간 투자 협상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당연 상업적 합리성이다. 이 용어는 미국 통일상법전(UCC; Uniform Commercial Code)에 나오지만, 원래 그 뿌리는 상인간의 오랜 관행이다. 미국 전지역에 적용되는 통일된 연방 상법은 없다. 각주는 독립된 정부이므로 각자 입법권을 가진다. 그러나 50개주가 각각 다른 내용의 상법을 가지고 있다면 주(州)를 넘나드는 거래는 상당히 복잡해지고 불안해진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단일 상법을 가지기 위한 노력으로 195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 UCC이다. 이는 모델(Model) 법이므로 각 주는 이 모델을 법으로 사용하겠다고 결정하면 그것이 곧 그 주의 상법이 된다.
UCC에서 상업적 합리성 개념을 설명하는 사례가 은행의 담보물 처분이다. 그 때 담보물 처분의 방법, 시기, 장소, 조건 등 모든 측면이 상업적으로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최고가격을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UCC의 모든 조항이 당사자의 합의보다 우선하는 강행규정은 아니다. 따라서 당사자간 합의로 UCC 와 달리 정할 수 있다. 이같이 특별한 명시적 합의가 없다면 분쟁시에는 상업적 합리성이 법적 판단 기준이 된다.
2025년 ‘한미 전략적 투자 MOU’에 따르면, 투자위원회가 상업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믿는 투자만 미국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상업적 합리성은 일반적 개념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투자사업의 예상 존속기간 동안 한국에 분배되는 총 예상수입이 투자 원리금을 전부 충당할 수 있는 경우에 상업적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한다. 왜 일반적인 상업적 합리성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의 했을까. 그것은 거래 당사자가 상인이 아니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의 위험 뿐 아니라 국가경제, 외환시장, 산업정책, 안보와 공급망까지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한미전략투자특별법’도 상업적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것이 없더라도 국민경제 발전, 산업경쟁력 강화 등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 경영자는 실제 경영에서 상업적 합리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공동투자 등 국제거래에서 이 개념을 계약서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면 어느 위치에 어떤 강도로 넣느냐가 중요하다. 계약서의 Recitals나 Whereas 부분에 “양 당사자는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거래를 추구한다”고 적는다면 거래의 배경과 목적을 확인하는 의미가 강하다. 반면 본문에 “투자가 Commercially Reasonable하지 않다면 자금 투입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라 쓰면 훨씬 강한 보호장치가 된다. 더 나아가 이를 전제조건(condition precedent)으로 만들면 해당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투자 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구조가 된다. 따라서 중요한 거래일수록 ‘Commercially Reasonable’이라는 애매한 말을 쓰는 것보다, 그 말이 실제로 어떤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쓰는 것이 좋다.
문제는 계약서에 아무런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았을 때이다. 이 경우 상업적 합리성은 거래가 이루어진 시장과 업종의 관행, 당사자의 과거 거래, 당시의 시장가격과 조건 등을 놓고 판단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UCC 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다수 상거래법이 인정하는 법리이다. 따라서 국제거래를 하는 경영자라면 계약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나라와 업종의 상관행을 조사하고, 그 관행이 훗날 법정에서 나에게 어떤 효과로 작용할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약 21년 전, 미국의 한 정부 기관이 현지법인 H사에 5만 달러의 기부를 요청했다. 나는 즉시 기부하자고 상신 했지만, 엔지니어 출신 CEO는 “5만 달러를 input하면 output이 5만 달러라는 점을 숫자로 증명하라”고 지시했다. 하룻동안 고민하다 이렇게 보고했다. “경영에서 모든 경우에 1+1은 2가 된다고 공학처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요청했을 때 즉시 타이밍 좋게 기부하고 언론에 홍보한다면 1+1이 3이 되거나 그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주면 1+1이 영이 되거나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부 승인을 받았다. 이 경험으로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 근거는 손익계산이나 상업적 합리성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더욱 공고히 가지게 되었다.
국제거래에 분쟁이 생겨 국제 상사중재원이나 법원에 가서 다투게 된다면, 결국 상업적 합리성은 창과 방패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내가 “상업적으로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할 때 상대방 역시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은 상업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상업적 합리성은 편리한 만능 무기가 아니다. 구체적인 거래조건과 시장관행을 미리 문서화하고, 애매한 점은 무엇을 합리적인 거래로 볼 것인지 사전에 합의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상업적 합리성은 결국 ‘얼마를 벌 수 있는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거래가 그 시점, 그 시장, 그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전문적인 경영자가 감수할 만한 거래였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계약서의 한 문장보다, 그 거래를 둘러싼 명시적, 묵시적 상황과 당시의 상관행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영자에게 중요한 것은 거래가 끝난 뒤 “상업적으로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할 논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결정하는 그날 왜 그것이 합리적이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이다. 1+1이 2가 아니라 3 또는 그 이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상업적 합리성을 초월한 임상옥같은 안목을 가진 경영자가 누리는 보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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