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4주기]“조카의 마지막 시간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진실규명에 뛰어든 강민하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 이모 강민하씨가 지난 18일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그동안 조사했던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상은이가 놀러 오면 머물라고 마련한 방이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상은씨의 이모 강민하씨는 틈만 나면 이층집의 1층 그 방에서 참사 당시 영상을 돌려보고 소방 무전 녹음과 구급활동일지를 대조한다. 이태원 골목에서 빠져나온 조카는 어디로 옮겨지고 어떤 조치를 받았을까. 영상에서 상은씨를 발견하면 그다음 장면을 찾아 추적한다. 아무리 기록을 맞춰봐도 조카의 마지막 시간은 빈칸투성이다.
지난 18일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만난 강씨는 상은씨가 태어났을 때 “쫄딱 젖은 원숭이” 같았다고 회상했다. 강씨 인생에 처음 찾아온 아기이자 유일한 조카였다. 기저귀를 갈아주던 아이는 어느새 대학생이 됐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취업을 준비했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는 조카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퇴직하면 조카의 아이를 돌봐주는 모습을 그려봤다. 그랬던 강씨에게 2022년 10월29일 “모든 게 단절”됐다.
참사 4주기를 앞둔 현재 강씨의 일상은 참사 관련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수사를 요청하는 일로 채워져 있다. 집과 방 곳곳에는 상은씨 사진과 함께 온갖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구조상황보고서’ ‘1029 녹취록’ ‘현장 지휘 표준작전절차’ 등 두툼하게 묶은 자료의 페이지 사이사이에는 색색의 메모지와 표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강씨는 안경을 쓰고 노트북 화면과 직접 정리한 서류를 번갈아 들여다보다가 건조해진 눈에 틈틈이 인공눈물을 넣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 이모 강민하씨의 경기도 양평군 자택에 남겨진 고인의 흔적들. 김정근 기자
2024년 9월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출범했다. 유족들이 여름에 삼보일배를 하고 겨울에 오체투지를 하며 요구했던 조사기구였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이제 특조위에 믿고 맡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강씨는 특조위 조사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참사 당시 소방청 상황담당관이었던 소방 간부는 긴급구조통제단 가동 시점이 국회에 허위 보고됐다고 증언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상황점검회의 영상은 특조위에 제출했다고 했다. 강씨는 특조위가 자료를 확보하고도 그 내용과 조사 상황을 유족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국의 보고가 실제와 어떻게 달랐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기로 결심했다.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온갖 기록을 찾고 읽었다. 그때까지는 특조위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었다. 강씨는 “‘지금은 조사 내용을 못 알려줘도 곧 나오겠지’하며 특조위 청문회만 기다렸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손에 있는 자료를 정리했다. 설 연휴에는 사나흘 밤을 새우며 구급활동일지를 들여다봤다. 엑셀에 빠진 의료지도 항목과 구급대원 소견을 옮겨 넣고 이송 기록을 맞춰봤다. 기록이 누락되거나 실제 조치와 다르게 적힌 게 아닌지 의문이 생겼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 이모 강민하씨가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그동안 조사했던 서류들. 김정근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 이모 강민하씨가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그동안 조사했던 서류들. 김정근 선임기자
기다리던 특조위 청문회는 지난 3월 열렸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참사 당시 책임자들을 불러 대응 과정의 문제를 물었다. 강씨는 이틀간 휴가를 내고 청문회를 지켜봤다. 구급활동일지에서 발견한 의문들이 다뤄지기를 기다렸지만 기대한 내용을 듣지 못했다. 그는 “올해 1~2월부터 짬짬이 자료를 본 내가 찾아낸 문제조차 청문회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며 실망했다. 특조위가 이어서 조사해주기를 바랐다. 청문회 때 특조위원에게 구급활동일지 분석 자료를 건넸고, 지난 5월에는 소방 무전 녹음파일을 대조한 자료를 제보했다. 하지만 이후 어떤 검토와 조사가 이뤄졌는지 설명은 없었다.
특조위 자료를 더 살펴보려는 노력은 번번이 막혔다. 강씨는 특조위에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요청했지만 자료 제공과 열람에 제한을 겪었다.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따르면 피해자는 진상규명과 권리구제를 위해 참사 기록물 열람을 요구할 수 있고, 공공기관은 지체 없이 열람토록 해야 한다. 유족들이 조항 하나하나를 두고 싸웠던 법으로 만들어진 기관이 유족의 권리 행사에 제동을 건다고 느꼈다. 강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직접 진상을 파헤치며 참사 당시 문제점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 이모 강민하씨가 지난 18일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그동안 조사했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서류 하나를 집어 들면 어느새 아침이 밤이 돼 있었다. 기록에 적힌 시간을 확인하려고 문서를 펼치면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뿌리 하나 뽑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옆에 또 서너 개가 있고 실뿌리가 수천 개인 거예요.” 법령과 자료를 뒤지고 없는 자료는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친구와 여행을 가서도 페리 안에서 챙겨간 서류를 읽고, 밥을 먹거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읽은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퇴근 후와 주말에도 기록을 펼쳤다. 새벽 3시를 넘겨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이 허다했다. 자료를 덮어도 잠이 오지 않았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용이 떠올라 다시 작업실로 내려왔다. 부족한 잠은 출근길 차 안에서 보충했다. 강씨는 “한창 조사에 매진하던 지난 2~3월에는 머릿속 CPU(중앙처리장치)가 꺼지지 않았다”고 했다.
영상 속 소방대원들의 위치를 무전과 맞춰보고, 출동 차량과 도착 기록을 정리해 필요한 곳에 인력이 배치됐는지 따졌다. 정보공개로 받은 문서를 국회 제출 자료와 대조하고 감사원 감사보고서까지 살폈다. 한번 마음을 쏟은 일은 허투루 넘기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이렇게까지 파고들 줄은 몰랐다. 강씨는 “발을 담그고 보니 생각보다 내가 치밀하게 해내고 있었다”고 했다.
분석한 내용은 고소·고발로 행동해나갔다. 강씨는 “이제는 자료 분석과 조사, 고발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에는 무전 녹음파일의 조작·누락 의혹으로 소방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언니와 서로 다른 두 음성파일의 파형을 위아래로 띄워놓고, 모양이 다른 구간을 하나하나 다시 들으며 근거를 찾아냈다.
지난 21일에는 강씨 등 유족 37명이 현장 동원 인원과 구조 대응 평가보고서, 지휘권 이양 협의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며 소방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강씨는 “형사처벌 여부와 별개로 기록의 진위를 가려야 한다”며 “이태원 참사에 크고 작은 허위가 있었다는 것을 꼭 공식적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4주기를 닷새 앞둔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4주기 헌화 및 추모기도회’에서 강민하씨와 희생자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강씨는 참사 당시 현장에 설치된 재난 발생 현황 상황판을 분석한 내용도 지난 19일 서울서부지방공소청에 제출했다. 상황판에는 최성범 당시 용산소방서장이 오후 11시8분 현장에 도착해 지휘권을 선언한 것처럼 적혀 있었다. 실제 현장 도착과 지휘권 선언 사이 약 40분의 시간 간격이 있었다는 게 강씨 설명이다. 그는 두 시각을 함께 적었다가 별도의 설명 없이 문구를 수정한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내 인생을 얼마큼 상은이한테 줘야 하나 그 생각을 하긴 하죠. 그렇지만 여기까지 알아냈는데, 어떻게 그만둬요.” 앞으로도 강씨는 답을 찾는 일을 이어가려 한다.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을 확인할 때까지 가겠다고 했다.
직접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은 강씨만이 아니다. 조사 결과와 진행 상황을 충분히 설명받지 못한 다른 유족들도 소방과 경찰 등으로 분야를 나눠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해왔다. 지난 8월11일에는 일부 유족이 자료 열람을 거부하고 조사를 미뤄왔다며 송두환 특조위원장과 박진 사무처장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유족들은 참사 당시의 대응뿐 아니라 이를 밝히는 조사 과정에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조위는 참사 4주기를 앞둔 지난 20일에야 피해자들의 참사 기록물 열람을 지원하는 내부 규칙을 의결했다. 이마저도 사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유족들 반발을 샀다. 강씨는 “더이상 특조위에 기대가 없지만 일은 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족에게 조사 상황을 설명하고 자료 접근과 조사 참여를 보장토록 요구하며 특조위가 제 역할을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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