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춘추정병시대]‘어떤 목마름’에 혼술바 찾는 사람들···지역 청년들 “연결되고, 교류하고 싶으니까요”
지난 14일 충북 제천의 한 칵테일바에서 처음 만난 조리직 공무원 강준호(왼쪽)와 대학원생 윤수연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효상 기자
혼자 술을 마시더라도 혼자이고 싶지 않은 청년들은 요즘 혼술바에 간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 인구 12만명의 충북 제천에도 혼술바가 있다. 최근 유행하는 혼술바처럼 디귿(ㄷ)자 모양의 테이블을 두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구조는 아니다. 그렇지만 제천에도 혼술바가 필요한 청년이 있고, 이곳이 그들의 혼술바가 됐다.
평일인 지난 14일 저녁, 구도심 청전동 거리에는 쌀쌀한 바람만 오갔다. 어두운 거리에 옅은 불빛을 밝힌 칵테일바 웨스턴 빌리지도 아직 한산했다. 사장 박태준(33·가명)은 언제 손님이 많은지 묻자 “많지 않다”고 웃으며, “그래도 저녁 10~11시 사이에 가장 많다”고 말했다.
강준호(34·가명)는 이날 웨스턴 빌리지를 처음 찾은 손님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조리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준호는 2년 전 나고 자란 제천으로 돌아왔다. 가족이 있는 고향인데도 이대로는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친한 친구들은 준호가 대학을 청주로 갔던 것처럼 모두 제천을 떠났다.
준호는 사람에 대한 목마름을 느낀다. 그래서 두 개의 동아리와 청년센터가 운영하는 원데이 클래스에도 적극 참여한다. 이날도 느슨하게나마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혼술바에 왔다. 결혼이라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지만, 소개받을 곳도 없다 보니 “영영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느낀다.
지역은 연결의 밀도가 다르다. 청년이 떠나는 지역에 남아 있는 이들은 종종 외딴섬이 된다.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서울 청년들이 71%로 가장 높았다. 반면 지방 중소도시 청년들은 47%에 그쳤다. 경남 출신 김예은(26·가명)은 “지역은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부족하니까 사람을 만날 기회도 너무 적다”고 말했다.
지역을 막론하고 이 시대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어떤 서투름도 있다.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으로 인해 그 나이 때 거쳐야 할 의례들이 생략됐다. 대학 신입생 때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이채원(24·가명)은 교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사람을 사귈 기회를 놓쳤다.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73명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 중 35명이 ‘관계·교류’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후 11시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김성민(24·가명)에게 혼술바는 만남의 광장이다. 강원도 원주의 집을 떠나 제천에서 정육식당 일을 배우는 성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밤 10시까지 일한다. 누군가와 교류할 시간도 공간도 부족하다. 타지에서 와 공단 등에 취직한 청년들도 이곳을 찾는다. 제천 전체로 봐도 새벽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이다.
1999년 제천에 자리 잡은 웨스턴 빌리지는 태준이 지난해 말 인수하기 전까지 폐업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 역시 이곳에서 ‘혼술’하던 손님이었다. 태준은 “이것마저 없어지면 제천이 시가 아니라 ‘군’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날 혼술바에선 공무원, 정육식당 직원, 대학원생 등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던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과 취업, 매출 등 저마다 가진 불안도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이날 처음 만난 준호와 대학원생 윤수연(26·가명)은 제천에서 아는 사람이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골인 성민은 태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대신 카운터를 지켰다. “이 친구 조주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는 태준의 말에 성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내일 출근해야 하는 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자리 참 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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