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개인 땅에 지은 산불 임시주택, “나가라” 통보에···이재민들, 추석 코앞 떠돌이 신세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1리 임시주택 단지에 지난 9일 산불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임시조립주택이 줄지어 서 있다. 이 단지는 사유지 임대계약이 이달 말 끝나면서 남아 있는 6가구가 다른 임시주택 단지로 옮겨야 한다. 김현수 기자
“산불로 집도 잃었는데 인제 와서 또 다른 곳으로 나가야 할 판이니더.”
산불 이재민 김모씨(60)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1리 임시주택에 살고 있다. 9일 만난 그는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새집을 지을 충분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
묵계1리에는 지난해 3월 대형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조립주택 14채가 있다. 8가구는 소실된 집터에 새집을 지어 떠났고, 6가구가 27㎡ 남짓한 임시주택에 남아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지원금으로 1억원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새집을 지을 수가 없다”며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대출을 받거나 자식 도움으로 집을 지었지만 여기 남은 사람들은 그럴 형편도 못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남은 6가구는 이달 중으로 살고 있는 임시주택을 떠나야 한다. 임시주택이 들어선 땅의 임대계약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곳은 안동시가 개인 토지를 빌려 조성했다. 임대 계약 기간은 1년이었다. 토지 소유주들은 시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원상 복구를 요구했다. 이들은 인근 옆마을로 주거지를 옮긴다.
김씨는 “옆 마을이라고 해도 차를 타야 다닐 수 있는 거리”라며 “농사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논밭에 나가야 하는데 이제 농사짓기도 어려워졌다. 1년 만에 다시 이사해야 하니 죽을 노릇”이라고 말했다.
10일 안동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6월 산불 이재민들이 사용하는 임시조립주택 사용기간을 2027년 상반기까지 1년 더 연장했다. 아직 새집을 짓지 못한 이재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
문제는 임시주택 사용기간과 별개로 임시주택이 들어선 사유지의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점이다. 안동지역 임시주택 단지 85곳 중 75곳은 개인 소유 부지에 조성됐다. 사유지마다 임대료 지급 여부와 계약기간이 달라 시는 현재 토지 소유주들과 계약 연장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
안동시가 지난해에만 임시주택 부지 임대료로 지급한 금액은 4억7114만원이다. 유상임차한 토지는 13만9929㎡로, 올해 임대료는 전년보다 평균 12% 올랐다. 부지 사용계약 연장이 되지 않은 곳의 이재민들은 임대계약이 유지되는 다른 임시주택 단지로 옮겨야 한다. 안동시는 이사비용 등으로 1억67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여러 사정으로 임대계약을 종료하겠다고 알려오는 토지 소유주들이 적지 않다”며 “직접 찾아가 계약 연장을 요청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 괴산리에서 지난 3월 발생한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가 발화지점 일대 야산에 검게 퍼져 있다. 문재원 기자
1년 만에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할 처지에 놓이면서 이재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정항우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장은 “재해로 집을 잃고 임시주택에 머무는 이재민들의 거처를 1년짜리 계약으로 마련한 게 말이 되느냐”며 “일단 처리하고 보자는 식의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주택이 전소된 이재민에게는 가구당 1억~1억2000만원이 지급됐지만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공사비 추가 마련이 어려운 주민들은 새 집을 짓기도 쉽지 않다.
안동을 포함한 경북 산불 피해 5개 시·군에는 모두 184개의 이재민 집단부지가 조성돼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안동이 85곳으로 가장 많고 의성 36곳, 영덕 33곳, 청송 22곳, 영양 8곳이다. 안동을 제외한 다른 시·군에도 사유지에 조성된 임시주택 단지가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불 직후 임시주택에 입주한 주민은 총 2531가구이며, 현재도 1898가구가 임시주택에 머물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현재 5개 시·군 집단부지 가운데 사유지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이재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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