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상상력이 필요한,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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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가 더 나을 것 같아요. 기술이 지배하는 것이 어때서요? 그게 왜 나쁘죠?” 과학저술가 정인경은 이렇게 묻는 이공계 대학생을 강의실에서 더러 만난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그 기술은 누가 만든 것이죠?”라고 되묻는다. 우리에게는 우문현답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겠으나, 그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균열을 내고자 하는 생각들의 집체 같은 태도이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은 인간 사회의 대립항 혹은 독립적 실체라는 생각. 객관적이고 결정론적이라는 생각. 그것(만)으로 얼마든지 사회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
그는 그간 고등학생용 과학사 교과서를 두차례 집필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람은 과학 공부를 왜 할까” 하는 문제의식은 더 깊어졌다. 그래서 이 화두를 본격적으로 궁구하는 책을 썼으니, 그 결과 성인과 청소년이 함께 볼 수 있고 짧게 쓴 과학사 통사이면서도 우리는 과학사를 왜 하는가 하는 메타적 질문이 지배하는 독특한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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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언뜻 전형적인 과학사 교과서의 순서를 따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비판적·저항적 사고로 과학적 사고의 기틀을 닦았던 시대에서 시작해, 과학 지식이 실증과 검증으로 독자성과 보편성을 확보한 유럽 과학혁명의 시대를 거치면, 어느새 가장 신뢰받는 인식 체계가 된 과학이 정치·경제와 상호작용하며 폐해 또한 극명히 드러내는 현대에 다다른다. 전형적이지 않은 면은 이 과정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어째서 그들은 그런 과학을 했나” 하고 묻는다는 점이다. 그가 찾아내는 답은 매번 같다. 그들이 그런 과학으로써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도로 발전된 과학이라도 늘 옳거나 올바르게 쓰이진 않는다. 책에 소개된 에너지 보존법칙의 사례를 보자. 이 과학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을라고? 하지만 그 법칙을 발견한 19세기 사람들은 인간도 한가지 목적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다른 기능에 쓸 에너지가 부족해진다는 해석을 끌어냈다. 그러니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하면 신경 에너지가 뇌에서 다 소진되어 출산 같은 기능에 쓰일 수 없을 테고, 따라서 여성은 전문적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이론이 이해의 한계와 적극적 오용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논리로 이용된 사례다. 현대의 우리는 이런 사례를 차고 넘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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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과학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과학기술도 발전시키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쓰이게 할 수 있을까. 그 답으로 민주주의를 꺼내는 것이 저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다론 아제모을루(대런 아세모글루)는 민주주의가 기술 진보와 그로 인한 이득 공유 둘 다에 기여한다는 가설을 실증 근거로 주장하며, 대표적 사례로 다름 아닌 한국을 들었다.
저자는 이에 동의하며, 과학의 상업화가 극심해진 작금에 우리가 이른바 ‘공익과학’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에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학자 실라 재서노프의 말을 빌리면, “기술의 미래가 민주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것. 저자를 비롯한 과학기술학자들의 이런 논증이 기술 앞에 갈수록 무력해지는 독자를 얼마나 설득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토론을 제시하는 과학기술학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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