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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6, 2026

농부 손 잡은 청년 부부, 건강한 땅콩으로 고소한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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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성농협 땅콩가공사업소가 주목하는 땅콩 새싹. 박미향 선임기자
최근 대성농협 땅콩가공사업소가 주목하는 땅콩 새싹. 박미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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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땅콩’이란 말이 있다. 지루한 시간을 달래는 주전부리로 땅콩이 제격이란 말이다. 겉껍질과 속껍질 까는 재미에 고소한 맛까지 더해지면 손이 계속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밥상의 주연은 아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데 “꼭 (밥상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35살 청년 송찬영 반석산업 대표다. 송씨와 함께 일하는 아내 박승아 이사는 29살이다. 두 사람은 경기도 의정부와 서울이 고향이다. 이들은 연고도 없는 전북 고창군에서 땅콩버터를 만든다. 송 대표는 “국내 판매처엔 수입 땅콩버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땅콩 100%로 만든 땅콩버터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 먹거리”라고 강조한다. 땅콩 수확이 한창이던 지난달 2일 고창의 반석산업에서 이들을 만났다.

대성농협 누리집에서 파는 고창 지역 ‘볶음 땅콩’. 알이 굵고 고소하다. 고창은 국내 주요 땅콩 생산지다. 박미향 선임기자
대성농협 누리집에서 파는 고창 지역 ‘볶음 땅콩’. 알이 굵고 고소하다. 고창은 국내 주요 땅콩 생산지다. 박미향 선임기자

이들은 땅콩으로 지역 농부들과 관계를 맺으며 고창의 인구 소멸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했다고 자부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당신들은) 고창 사람들인가?’였어요.” 박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고창 주민들은 지난 6년간 고창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이들을 궁금해했다. 지역민들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창이 고향도 아닌 젊은이들이었다. 송 대표는 농촌을 일터로 선택한 이유로 “불편한 게 없는 요즘 세상인데 농촌은 불편한 게 많아 보였다”며 “학창 시절 배운 것을 사회에서 실천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창과 서울을 오가며 고창 땅콩으로 여러 사업을 펼치고, 지역 상생을 모색하는 송찬영 반석산업 대표(오른쪽)와 그의 아내 박승아 반석산업 이사. 박미향 선임기자
고창과 서울을 오가며 고창 땅콩으로 여러 사업을 펼치고, 지역 상생을 모색하는 송찬영 반석산업 대표(오른쪽)와 그의 아내 박승아 반석산업 이사. 박미향 선임기자

경제학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했던 송 대표가 처음부터 땅콩버터를 만든 건 아니었다. 계기가 있었다. “공작기계를 만들다 고창에 귀농한 외삼촌이 농기계를 만드시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죠.” 송 대표는 2020년 7월 반석산업을 열고 농기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고창 특산물인 땅콩에 특화된 탈곡기와 탈피기 개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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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우 농부의 땅콩밭에서 송 대표가 개발한 기계로 땅콩을 거둬들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박미향 선임기자
조병우 농부의 땅콩밭에서 송 대표가 개발한 기계로 땅콩을 거둬들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박미향 선임기자
대성농협이 수매한 고창 땅콩들. 박미향 선임기자
대성농협이 수매한 고창 땅콩들. 박미향 선임기자

고창은 국내 땅콩 주 생산지 가운데 하나다. 반석산업 자료를 보면, 고창이 속한 전북특별자치도에서 국내 땅콩 수확량의 25%가 나온다. 이 가운데 고창군 생산량이 4분의 1을 차지한다. 9월 중순부터 11월 초가 수확기다. “(우리 농기계가 개발되기 전인) 예전에는 밭에서 땅콩 줄기를 뽑아 올리면 손으로 흙을 다 털어내고 탈피도 일일이 손으로 다 해야 했죠.” 땅콩 줄기 하나당 땅콩 수백개가 달렸는데,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고랑마다 박혀 있는 땅콩 줄기를 캐내는 일도 중노동이다. 이 수고에 농사를 작파하는 이도 생겼다. 농부 대부분은 60살 이상 고령자다. 그가 개발한 땅콩 탈곡기와 탈피기는 농부들에게 요긴했다. 농부 조병우(66)씨는 “(송 대표의) 기계에 넣으면 흙도 다 털려 나오고,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품을 개발했다고 사업이 곧 순풍을 탄 건 아니었다. 송 대표는 대성농협(고창군 성송면)의 정동익(48) 땅콩가공사업소장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대성농협은 국내 땅콩을 사고파는 대표 농협 지점이다. 지난해엔 계약 재배한 땅콩을 포함해 1천톤 이상을 사들였다. 고창 지역 농부들은 대성농협의 ‘최저 가격 보장제’ 덕분에 생산량 증가로 인한 가격 대폭락을 겪지 않는다. 땅콩가공사업소는 국산 땅콩으로 화장품, 차 등 각종 가공품을 개발하는 업체에 원료 지원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볶음 땅콩’을 포함해 땅콩류 등이 대성농협 누리집을 통해 팔린다. 이 가운데 ‘볶음 땅콩’은 글로벌 유통업체 코스트코에서 주문할 정도로 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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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농협에 (농기계) 전량 납품을 약속받고 개발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송 대표가 회상했다. 7~8개월 걸렸단다. 농협은 송 대표가 개발한 기계로 농부들의 고충이 해결되면 질 좋은 땅콩이 더 많이 생산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초반 고장이 잦았는데, 수확은 1년에 한번뿐이라 기계를 충분히 시험 가동해볼 시간이 부족했다. 기계가 안정된 지금은 하루 9917㎡(3천평) 규모 땅에서 땅콩을 거뜬히 수확할 수 있게 됐다. 송 대표는 소형 자동 땅콩 탈피기도 개발했다. 그의 소형 탈피기를 가정에서 쓰는 이들도 있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다.

수확기에 밭에서 뽑아 올린 땅콩 줄기. 박미향 선임기자
수확기에 밭에서 뽑아 올린 땅콩 줄기. 박미향 선임기자

정부 부처의 크고 작은 창업 대회에서 상도 휩쓸었다. 송씨는 “대회에서 배운 게 많다”며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관계도 생겼고, 아프리카에 농기계 수출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 성공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각종 창업 대회 문을 꼭 두드리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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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살며 주민들과 접점도 넓혀갔다. 송 대표는 청년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농구 등 운동도 함께했다. 농부들과 얘기를 나누고 지역 소식에 귀 기울였다. “농부들과 소통이 아직도 어렵긴 하지만, 한번 연을 맺으면 가능성이 무한대인 데가 농촌입니다.”

박 이사는 패션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다가 반석산업에 합류했다. 그는 “땅콩 알레르기에 대한 뉴스를 보고 몸에 이로운 땅콩버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 먹거리는 건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브랜드 ‘옳곡’(OLHGOK)을 만들었다. ‘바르고 옳은 곡식’이란 의미다. “고창 서리태, 참깨, 현미 등 고창 농부들이 생산한 곡식을 판 게 도움이 되었죠. 맘카페 등을 살펴보면서 ‘100% 국산 땅콩버터’의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그는 식품 제조 공장을 찾아다니며 땅콩버터 개발에 힘을 쏟았다. 2022년 5월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쇼핑 채널에 ‘옳곡’ 땅콩버터가 얼굴을 내밀었다. 출시 4개월이 지난 그해 9월 맘카페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0g 기준 소비자가는 1만2900원. 당시 국산 땅콩 1㎏에 2만~3만원 하던 때다. 송 대표는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매출 이익이 거의 없었죠.” 박 이사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산 사람들이 ‘왜 기름이 떠요?’ ‘이 물은 뭐예요?’란 질문을 많이 했는데, 이젠 다들 아세요.” 첨가제를 넣지 않고 오직 땅콩만 갈아 만든 땅콩버터는 시간이 지나면 기름이 뜬다. 200g 기준 누적 판매량은 현재 130만병이다.

고창 땅콩으로 만든 다채로운 상품. 땅콩버터. 땅콩 화장품, 땅콩 새싹 차, 새싹 땅콩 칩 등이다. 박미향 선임기자
고창 땅콩으로 만든 다채로운 상품. 땅콩버터. 땅콩 화장품, 땅콩 새싹 차, 새싹 땅콩 칩 등이다. 박미향 선임기자

송 대표는 밸류체인(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전달하기까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강조했다. “농기계를 통해 땅콩 생산량을 높이고, 그 땅콩을 저희가 사들여 가공품으로 만들어 파는 방식이 구축됐고요. 그 안에서 농부들이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완성된 거죠.” 농가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며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셈이다.

이들 부부는 고창 땅콩을 버터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땅콩약과를 개발하고, 최근에는 땅콩 새싹을 활용한 먹거리와 땅콩 껍질을 깔 때 나오는 땅콩 가루 등을 활용한 아이스크림도 개발 중이다. 송 대표는 “케이(K)푸드 트렌드를 더한 땅콩 제품을 수출해 우리 먹거리 세계화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국내에서 주로 미국·중국산 땅콩 소비가 많고 우리 땅콩 자급률은 25%밖에 안 되는데, 신선한 우리 땅콩으로 승부해 시장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땅콩은 시간이 지날수록 산패가 빨리 진행되는 먹거리여서 우리 땅에서 나는 신선한 땅콩이 좋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소망은 하나다. “국산 땅콩으로 사업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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