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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1, 2026

"등 전체 짙은 몽고점"…마산 부모 찾는 덴마크 입양인 김종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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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현

1985년 6월 마산 양덕동 대문 앞 노란 이불 싸여 발견된 갓난아기

"어머니 원망 안 해…내년에 두 아이와 한국 찾아 한 끼 먹는 게 꿈"

이미지 확대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 씨의 현재 모습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 씨의 현재 모습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친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 판단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 편히 지내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1985년 여름, 태어난 지 약 6개월 만에 고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입양인이 40대 가장이 돼 자기 뿌리와 친부모를 찾기 위해 간절한 손길을 내밀었다. 주인공은 덴마크에 거주하는 김 빈터르 예르겐센(한국명 김종민·41) 씨다.

31일 입양기관 등에 따르면 김씨는 1985년 6월 3일 오후 9시께 경상남도 마산시 양덕동 61-35번지(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한 주택 대문 앞에서 노란 이불에 싸인 채 발견됐다.

당시 양덕파출소 의뢰로 마산 애리원(당시 마산시 중앙동)에 맡겨진 그는 같은 해 6월 28일 홀트아동복지회로 인계됐다. 이후 경남과 서울 위탁가정을 거쳐 11월 19일 덴마크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김씨는 발견 당시 키 51.5cm, 몸무게 3.5kg으로 감기와 땀띠 증상이 있던 약한 아기였다.

서류에 적힌 '김종민'이라는 한글 이름은 친부모가 남긴 것이 아닌 보육 시설이나 복지회에서 임시로 지어준 이름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출생과 친부모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미지 확대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 씨의 출생 무렵 모습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 씨의 출생 무렵 모습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씨는 자신의 과거를 증언해 줄 결정적 단서로 유난히 넓고 짙었던 몽고점을 꼽았다.

그는 "서류에는 발목에 조금 있다고만 적혀 있을지 모르지만, 성장 과정의 사진을 보면 등 한가운데부터 엉덩이 아래까지 아주 짙은 푸른색이었다"며 "양쪽 발목과 위팔에도 반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갓난아기였던 저를 안아주셨던 어머니나 당시 돌봐주셨던 분이라면 이 특징을 분명 기억하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정체성을 가슴에 묻고 살던 김 씨가 본격적으로 가족을 찾기로 결심한 계기는 아버지가 돼 아이들을 품에 안은 순간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내 아이를 안았을 때, 아이의 얼굴에서 누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아이들 역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예요?'라고 자주 묻는데, 답해줄 수 없을 때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또 "뿌리를 찾아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책도 줄 수 없는 역사의 한 조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 확대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 씨가 현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무렵 모습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 씨가 현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무렵 모습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씨는 2025년 3월 방한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유전자(DNA) 검사를 했고, 해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도 기록 등록을 완료했으나 아직 원하는 소식은 얻지 못했다.

그는 내년 5월 11일, 아내와 두 자녀 등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처음 발견된 마산 양덕동 골목에 서서 "여기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말해주는 게 희망 사항이다.

김씨는 친부모와 당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당부의 말도 남겼다.

그는 "41년 동안 1985년 6월 이전의 삶은 텅 비어 있었다"며 "아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살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친모가 이제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제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께 소개해 드리고 다 함께 한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다"며 "가족의 사생활은 반드시 존중해 드릴 테니 편하신 방법으로 조용히 연락 달라"고 호소했다.

이미지 확대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맨 왼쪽) 씨와 두 자녀

덴마크 입양 한인 김종민(맨 왼쪽) 씨와 두 자녀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phae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31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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