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만든 ‘텍스트힙’, 단순한 유행 아닌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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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팔리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나는 책을 살 테니, 너는 어서 내놓아라’ 하시는 것만 같아요. 저도 서둘러 책을 팔고 구경에 나서려고 합니다.”
딸세포 출판사 김은화 대표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9종의 책을 행사장에 가져온 정은문고도 일찌감치 책을 ‘완판’했다.
9일 서울 종로구 서울 혜화 좋은공연안내센터 다목적홀에서 ‘제1회 페미니즘 책축제’가 열렸다. 페미니즘 책을 중심으로 한 도서전으로,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부설 언니네작은도서관이 주최했다. 2006년부터 매년 ‘서울여성문화축제’를 열어온 이 단체는 올해 처음 연 책 축제에 ‘제1회’라는 숫자를 매겼다. 앞으로도 해마다 행사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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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출판사는 느린서재, 동녘, 딸세포, 봄알람, 사계절, 여이연, 이매진, 정은문고, 접촉면, 파시클, 펨텍톡, 현실문화연구까지 12곳. 두루미책방, 마바사: 북스피리언스+책방사춘기, 밝은책방, 언니네작은도서관, 그리고 책방 알로록까지 5개 독립서점과 단체도 부스로 참여했다. “공간의 한계 때문에 참가를 요청한 출판사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최쪽은 밝혔다. 티켓을 미리 산 사전 등록자 250여명을 포함해 400명 가까운 관람객들이 ‘페미니즘 도서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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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전수진(22), 이화연(19)씨는 주최쪽이 마련한 ‘올해의 페미니즘 책 추천’ 전시 코너에서 작게 탄성을 질렀다. 두 사람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의미있는 책인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교양인) 초판본을 추천 코너에서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동) 움직임 속에 여성의 읽고 쓰기가 단순히 소비문화의 측면에서 폄하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싹이 텄다. 서울여성회 윤미영 사무처장(영등포여성회장)은 “출판시장과 도서전을 이끄는 주역이 여성들이고, 출판계를 여성이 떠받치고 있는 이때 ‘텍스트힙’ 현상을 자본주의적이고 일시적인 소비 유행으로만 치부하는 데 의문을 품었다. 새로운 사유와 담론의 장을 열기 위해 페미니즘 책 축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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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서전의 슬로건은 “여자가 읽는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로,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조이한, 김정근 옮김, 절판)에서 뽑은 글귀다. 윤 처장은 “여성의 읽기라는 행위가 적극적인 저항의 의미를 띤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서 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인 ‘여성이 만든 변화, 텍스트힙과 페미니즘’ 토크쇼에는 150여명의 청중이 참여헀다. 연사로 나선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텍스트힙’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강조했다. 그는 “출판계에 ‘팬덤’이 생기고 있는데, 팬덤의 요체는 ‘사랑’이고 사랑이 결국 이길 거라는 믿음과 ‘텍스트힙’의 결합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정치적 힘과 연결돼 있다. 진짜 ‘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진단했다. 손 평론가는 지난 10년 ‘페미니즘 리부트’는 다양한 페미니즘의 존재와 페미니즘 ‘내부’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이와 함께 “내가 경험한 ‘주변성’을 바탕으로 다른 주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손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이라고 말했다.
서울여성회는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10년 동안 젠더 폭력과 여성폭력에 맞서온 여성들의 싸움, 연대, 증언을 담은 책 ‘그날 강남역에서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도 이날 함께 선보였다. 이 책에는 전국 각지 페미니스트들과의 교류, 백래시와 탈정치화에 맞서는 대학생들의 이야기 등을 수록했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은 “페미니즘이 공격받고 백래시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어떤 책들이 우리를 키워왔는지 함께 추천하고 돌아보고 힘을 돋우는 차원에서 오늘의 만남이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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