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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7, 2026

스페인에 이런 곳이 있었네···문명의 교차로 ‘엑스트레마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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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메리다 로마 극장에서 한밤중 공연이 열리고 있다.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스페인 메리다 로마 극장에서 한밤중 공연이 열리고 있다.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로마가 길을 내고, 이슬람이 성벽을 덧입히고, 가톨릭이 문화를 일궜다. 2000년에 걸친 시간이 한 도시, 때로는 한 건물 안에 겹쳐 있는 곳. 스페인 서남부 엑스트레마두라다. 스페인 여행을 떠올리면 흔히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 마드리드의 미술관, 톨레도의 중세 골목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스페인을 만든 여러 문명의 뿌리를 만나고 싶다면, 시선을 남서쪽으로 돌려야 한다. 로마 제국의 도시, 이슬람의 요새, 기독교 왕국의 성당, 르네상스 귀족의 궁전, 유대인 공동체의 골목, 그리고 대항해시대 신대륙으로 건너간 정복자들의 고향까지 스페인의 진면목이 펼쳐지는 곳. 엑스트레마두라에서 스페인의 역사를 마주했다.

2000년 전 로마가 고스란히 묻힌 곳, 메리다

“진짜 스페인을 알고 싶다면, 여기로 와야 해요.” 스페인의 가을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던 지난달, 엑스트레마두라 주도 메리다에서 만난 문화 가이드 마르코 망굿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명소가 아닌,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스페인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명의 유래를 두고는 여러 설이 있다. 라틴어 ‘엑스트레마 도리이(Extrema Dorii)’, 즉 두에로강 너머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중세 기독교 왕국과 이슬람 세력이 맞닿은 접경 지역을 가리키던 명칭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대표적이다. 어느 쪽이든 이 땅의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는 이름보다 그곳에 남은 흔적에 있다. 로마의 극장과 다리, 이슬람 시대의 요새, 중세 기독교 건축물이 한 지역 안에 공존하며 스페인 역사의 여러 장면을 보여준다.

스페인 메리다 극장.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스페인 메리다 극장.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이번 여정은 엑스트레마두라 자치주의 수도 메리다에서 북쪽으로 카세레스, 몬프라궤, 플라센시아, 에르바스, 트루히요를 거쳐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루트를 동선으로 삼았다. 서로 전혀 다른 도시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이전 시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흔적을 남기며 세월을 쌓았다.

메리다는 마드리드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3~4시간가량 걸리는 도시다. 바다호스와 카세레스 두 주로 이뤄진 엑스트레마두라에서 메리다는 자치주 정부와 의회가 자리한 행정 중심지다. 하지만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행정적 위상만이 아니다. 기원전 25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식민도시로 건설된 메리다에는 약 2000년 전 로마의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스페인에 이런 곳이 있었네···문명의 교차로 ‘엑스트레마두라’
메리다 로마 신전.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메리다 로마 신전.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메리다 여행의 장점은 주요 유적이 도심에 모여 있어 걸어서 둘러보기 좋다는 점이었다. 1~2시간 산책하듯 마을을 걷다 보면 로마 극장과 원형경기장, 전차 경주가 열렸던 키르쿠스와 신전, 과디아나강을 가로지르는 로마 다리 등을 차례로 만난다. 유네스코는 1993년 메리다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공공건축물뿐 아니라 상하수도 시설 등 고대 도시의 기반 시설이 폭넓게 남아 있어 당시의 도시 구조와 생활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로마 극장은 메리다의 역사를 실감하게 했다. 오랜 세월 땅 속에 있다가 20세기 초 발굴을 통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 전 지상에 남아 있던 관람석 일부를 주민들이 ‘일곱 개의 의자’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망굿은 “로마극장은 고대 로마 시대 이후 오랜 세월 방치되고 흙에 덮여 있었다”면서 “약 100년 전 발굴에 착수하면서 거대한 규모가 드러났고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땅을 파기만 하면 로마 유적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로마 극장은 음악회와 연극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의 무대로 쓰이며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로마 시대상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로마 극장 인근에 있는 국립 로마미술관에 들러보면 좋다. 로마 시대의 조각, 비문, 모자이크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메리다 로마 다리。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메리다 로마 다리。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고대 로마->이슬람 진출->기독교 재정복…중세 스페인을 걷다

다음 날 메리다에서 북쪽으로 향했다. 메리다와 카세레스, 플라센시아를 잇는 길은 ‘비아 데 라 플라타(Vía de la Plata·은의 길)’로 불린다.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반도의 남북을 연결하기 위해 닦은 주요 도로로, 이후 이슬람 세력의 진출과 기독교 왕국의 재정복 과정에서도 중요한 통로로 쓰였다. 길은 그대로 남았지만, 그 위를 오간 사람과 문명은 시대마다 달라졌다.

카세레스。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카세레스。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카세레스에 도착하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메리다가 로마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도시라면 카세레스는 로마 이후의 시간을 보여주는 곳이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돌로 된 좁은 골목과 중세 건물들이 이어진다. 높은 현대식 건물 대신 성벽, 탑, 귀족의 저택과 궁전, 성당이 서로 맞붙어 있다.

카세레스 구시가지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로마, 이슬람, 북유럽 고딕,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이 한 도시 안에 겹쳐 있는 독특한 도시로 평가했다. 특히 이슬람 시대의 탑이 약 30개 남아 있으며, 알모하드 왕조 시기에 기존 성벽을 보강하고 방어탑을 세운 흔적도 확인된다. 망굿은 “이후 기독교 세력이 도시를 장악하면서 이슬람 흔적을 지우고 가톨릭 양식 건축물을 세웠다”며 로마 시대 성벽에 이슬람이 보강한 구조물, 그리고 다시 가톨릭이 세운 성당과 저택들을 소개했다.

카세레스。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카세레스。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흥미로운 점은 고대의 성벽과 중세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상업시설이 확장된 도시의 형태였다. 성벽 안에서는 중세의 골목을 걷고, 성문을 나서면 상점과 식당이 늘어선 오늘의 도시를 만난다. 주말이면 구시가지와 광장, 식당과 바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낮에는 골목과 유적을 둘러보던 이들이 저녁에는 식탁과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밤이 깊도록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축제와 각종 행사가 더해져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이곳에서 역사는 유리 진열장 속에 갇힌 과거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일상과 함께 이어지고 있었다.

카세레스。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카세레스。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수천 년의 풍경, 오늘도 살아 있는 도시

몬프라궤.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몬프라궤.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일정이 여유롭다면 카세레스에서 플라센시아로 향하는 길에 몬프라궤에 들르면 좋다. 이곳에서는 스페인 땅의 오랜 시간을 가늠하게 된다. 앞선 도시들이 사람이 만든 역사였다면 몬프라궤에서는 사람이 들어가기 전부터 존재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타호강과 티에타르강이 흐르는 계곡과 바위 절벽, 참나무 숲과 데헤사(참나무와 목초지가 어우러진 방목지)가 이어진다. 200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몬프라궤는 지중해성 숲과 관목지, 데헤사, 바위지대가 어우러져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몬프라궤를 걷다 만난 사슴. 이윤정 기자

몬프라궤를 걷다 만난 사슴. 이윤정 기자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곳이 왜 자연을 보기 위해 찾는 곳인지 알 수 있다. 검은독수리와 흰꼬리수리류를 비롯한 대형 맹금류가 서식하고, 검은황새와 이베리아제국수리 같은 보호종도 관찰된다. 몬프라궤와 플라센시아 일정을 함께 한 가이드 알바로 카사노바는 탐조 망원경으로 검은 독수리 가족 무리를 보여주며 “특히 검은독수리는 몬프라궤를 대표하는 새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선사시대 흔적도 엿볼 수 있다. 몬프라궤 일대에서는 선사시대 암각화부터 로마 이전의 정착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이 지역에 물과 숲, 사냥감 등 인간이 정착하거나 이동하기에 필요한 자원이 풍부했던 것이다. 도시를 떠났다고 역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풍경 자체가 역사의 무대였다.

몬프라궤 독수리.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몬프라궤 독수리.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몬프라궤에서 북쪽으로 차를 달려 40분 남짓이면 중세 도시 플라센시아에 닿는다. 카세레스가 중세의 골목과 귀족 저택이 어우러진 도시라면, 플라센시아는 성벽 안에 대성당, 궁전, 시민들의 일상이 공존하는 곳이다. 플라센시아는 12세기 카스티야의 알폰소 8세가 1186년 세운 도시다. 당시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곳의 위치였다.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반도 남쪽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시기, 전략적 위치에 도시를 세우고 주민을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했다. 오늘날에도 성벽과 성문, 중세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플라센시아 전경. 엑스트레마두라관관청

플라센시아 전경. 엑스트레마두라관관청

플라센시아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두 개의 대성당이었다.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이 나란히 붙어 있다. 구 대성당은 13세기에 공사를 시작해 15세기까지 건축이 이어졌는데, 플라센시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1498년 바로 옆에 새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카사노바는 “그런데 사실 성당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니다”라며 “새 성당을 짓다가 재정 부족으로 구 대성당의 절반을 남긴 채로 두 성당이 공존하는 모양이 됐다”고 설명했다.

플라센시아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이 연결되는 내부 통로. 두 성당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양식을 볼 수 있다 이윤정 기자

플라센시아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이 연결되는 내부 통로. 두 성당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양식을 볼 수 있다 이윤정 기자

실제로 두 성당은 회랑을 통해 내부에서도 연결된다. 새 성당을 짓는 과정에서 구 성당 전체가 철거되지 않은 채 두 건물이 맞닿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 양식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13세기부터 지어진 구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양식으로, 둥근 아치의 정문과 비교적 절제된 장식이 특징이다. 반면 신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높은 천장과 기둥 구조에 르네상스의 화려한 장식을 더했다.

플라센시아. 엑스트레마두라관관청

플라센시아. 엑스트레마두라관관청

플라센시아의 특별함은 수백 년 된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대성당에서는 결혼식이 열렸고, 작은 성당에서는 갓난아기의 세례식이 진행됐다. 성당 앞에서는 예식을 마친 사람들에게 축하와 환호가 쏟아졌다. 골목을 돌아 광장으로 나가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행사와 플리마켓이 열렸다. 중세의 성벽은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도시의 중심을 지켜온 삶의 무대였다.

오래된 도시, 느린 시간, 대화의 온기

에르바스 전경. 이윤정 기자

에르바스 전경. 이윤정 기자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길에는 에르바스에 들렀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좁고 가파른 골목에는 흙과 밤나무 목재로 지은 전통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은 13세기부터 유대인 공동체가 자리 잡았던 마을이다. 중세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유대인이 함께 살아갔지만 종교를 둘러싼 갈등과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1492년 가톨릭 공동왕이 유대인에게 개종하거나 스페인을 떠나도록 명령한 뒤에도 일부는 개종해 남았고, 여러 지역에 옛 공동체의 흔적이 이어졌다. 에르바스 역시 유대인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골목과 집에 남은 곳이다. 화려한 궁전이나 거대한 유적은 없지만, 한때 이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 오늘까지 보존돼 있다.

에르바스 전통 가옥. 이윤정 기자

에르바스 전통 가옥. 이윤정 기자

여행의 종착지 트루히요에서는 시선이 다시 대서양 너머로 향했다. 마요르 광장에는 페루로 진출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기마상이 서 있고, 주변으로는 15~16세기에 지어진 귀족 저택과 교회가 늘어서 있다. 트루히요는 피사로를 비롯해 아메리카 대륙 정복에 나선 인물들의 고향이다. 로마의 도시와 이슬람의 성벽, 유대인 공동체의 골목을 거쳐 마주한 것은 스페인 역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엑스트레마두라의 역사는 이베리아반도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대항해시대,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신대륙으로 향하면서 세계사의 흐름에도 흔적을 남겼다.

트루히요 프란시스코 피사로 기마상.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트루히요 프란시스코 피사로 기마상.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그런데, 엑스트레마두라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돌로 만든 유적보다 정과 여유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오후 8시가 넘어 시작되는 저녁 식사, 음식을 다 먹고도 한참 이어지는 대화, 한낮의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시에스타에는 느긋한 삶의 리듬이 배어 있었다. 망굿은 “스페인에서 식사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식사를 마친 뒤에도 식탁에 남아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 소브레메사(sobremesa) 문화가 있다”고 했다. 직역하면 ‘식사 후에’라는 뜻이다. 배를 채우는 것만큼 서로의 마음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엑스트레마두라를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은 여운은 수백 년을 버틴 성벽과 건축물만이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도 좀처럼 끝나지 않던 대화, 그 느긋한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기였다.

에르바스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 이윤정 기자

에르바스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 이윤정 기자

<여행 정보>

시차: 스페인 본토는 한국보다 여름철에 7시간, 겨울철에는 8시간 늦다.

날씨: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비가 잦아진다.

화폐: 유로(€). 카드 결제가 편리하다.

가는 법: 인천에서 마드리드까지 직항으로 약 15시간이 걸린다. 마드리드에서 메리다까지는 기차로 약 3시간 50분 걸린다. 기차는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메리다행을 이용한다. 카세레스·플라센시아·에르바스·트루히요와 몬프라궤까지 함께 여행한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치즈 테이스팅, 와이러니 체험도 할 만 하다. 엑스트레마두라관광청 홈페이지(www.turismoextremadura.com)에서 여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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