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주행에 최적”…유럽이 작은 전기차에 빠진 이유
2026 파리모터쇼가 열린 지난 12~13일(현지시간) 길거리에서 만난 파리 시내 경형 사륜차들의 모습. 파리|오동욱 기자
초소형 자동차는 주차장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프랑스 파리의 노상 주차장에는 일반 승용차를 세우기 어려운 틈마다 초소형 차들이 ‘쐐기돌’처럼 들어서 있었다. 지난 12~18일(현지시간)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서 열린 ‘파리모터쇼 2026’에서도 이런 도심의 주행·주차 여건에 맞춘 초소형 전기차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빠르고 멀리 달리기보다 출퇴근이나 동네 상점을 오가는 데 초점을 맞춘 차들이었다.
25일 유럽 현지 매체 가제타델로스포르트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내 초소형 차의 신규 등록은 6만775대로 2019년보다 125% 늘었다. 초소형 차에 대한 수요는 귀여운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도심 주행속도는 낮고 이동 거리는 짧지만, 부족한 주차 공간에 맞는 실용성에, 전동화에 따른 유지비 절감 기대와 청소년 운전자 시장이 더해져 수요를 키웠다.
특히 도심 주행·주차 환경이 결정적이었다. 좁은 골목과 빠듯한 주차 공간 사이로 학교나 일터를 오가는 데는 고속 주행 성능이나 장거리 주행능력은 필요 없다. 프랑스 파리가 일부 고속화 도로 등을 제외한 대부분 도로에서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신 주차 등 일상 요소들이 중요해진다. 몸집이 큰 차들은 주차 장소를 찾기 위해 도심을 한참 빙빙 돌아야 하지만, 작은 차들은 이런 번거로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초소형 차 ‘마이크로리노’를 전시한 마이크로모빌리티시스템 관계자는 “마이크로리노는 일반 주차면의 3분의 1 정도만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차의 길이는 약 2.5m로 일반적인 세단의 절반 수준이다.
제도적 기반도 초소형 차량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최고속도 시속 45㎞, 운전자 포함 2인승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차(voiture sans permis·무면허차)에 대해서는 경형 사륜차 면허(AM면허)만 있어도 만 14세부터 운전할 수 있게 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서쪽에 있는 플랑쉬르센 인근 까르푸 주유소에 적힌 유류가 정보. 일반 휘발유가 ℓ당 2.253유로(약 3349원), 경유가 2.399유로(약 3567원)에 판매되고 있다. 파리|오동욱 기자
초소형 차들이 동력원으로 주로 전기를 쓰는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13일 프랑스 플랑쉬르센 인근 까르푸 주유소는 일반 휘발유를 ℓ당 2.253유로(약 3349원), 경유를 2.399유로(약 3567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격이면 연료탱크가 35ℓ인 기아 모닝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는 데 약 11만7000원이 든다. 반면 배터리 용량 10.5~15㎾h인 마이크로리노는 프랑스 전기요금(㎾h당 약 0.2유로)을 적용하면 완충 비용이 3100~4500원 정도다.
차값이 저렴한 것도 요인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원가의 40%를 차지하는데, 초소형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은 15㎾h를 넘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EU 순수전기 승용차의 평균 배터리 용량을 약 70㎾h라고 봤다.
국내에서도 작은 차의 쓰임새를 다시 살펴볼 만한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해 비사업용 자동차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30.8㎞였다. 올해 1~9월 경차 신규 등록은 6만3925대로 전년 동기보다 16.6% 늘었다. 모닝은 1만9226대로 59.5% 증가했고, 레이는 3만7911대가 등록돼 국내 승용차 판매 순위 8위에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차 등록은 약 20.8% 감소했다. 짧은 일상 이동에 필요한 차를 찾는 수요와 고유가·차량 가격 부담이 맞물리면서 작은 차의 경쟁력이 다시 주목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국내 경차 판매 증가가 초소형 전기차의 성공 가능성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는 일반 승용차와 구분되는 경형 사륜차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국내는 일반 승용차로 분류되는 모닝·레이·캐스퍼 등 경차가 중심이다. 초소형 전기차 시장을 키우려면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 충전 편의성, 관련 제도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작은 차가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유럽에 본사를 둔 한 수입차 관계자는 “당장 큰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차부터 시작해 성인이 되면 조금 더 큰 차로 옮겨가는 구매 여정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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