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우호관계 노력’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별세…향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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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한일 신시대’ 선언 등으로 양국 관계 개선에 힘썼던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2일 별세했다. 향년 90.
26일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등 일본 언론들은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지난 22일 별세해 직계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장례가 치러졌다”고 밝혔다. 1936년 도쿄에서 태어난 후쿠다 전 총리는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에 이어 일본 첫 ‘부자 총리’로 잘 알려졌다.
그는 1959년 와세다대학 제1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석유기업인 ‘마루젠 석유’(현 코스모 에너지홀딩스)에 입사해 17년간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했다. 40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권에 첫발을 디뎠다. 아버지 후쿠다가 총리에 취임한 뒤에는 총리 정무 담당 비서관으로 경력을 쌓았다. 1990년 중의원 선거 때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인 군마현에 출마해 처음 당선됐다. 이후 7선 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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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요시로 정부 때였던 2000년 관방장관으로 처음 각료가 됐다. 모리 총리의 실언이나 잘못을 자주 해명하면서 스스로를 ‘해명 장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치적 능력을 인정받아 이듬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로 바뀐 뒤에도 관방장관에 유임돼 2004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후에는 자민당 내에서 아베 신조, 아소 다로 등 쟁쟁한 정치인들과 함께 ‘포스트 고이즈미’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2007년 9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사임으로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됐고, 이어 국회 총리지명선거를 거쳐 제91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세습정치가 강한 일본에서도 부자 총리가 탄생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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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자민당이 중의원(하원)을 장악했지만, 참의원(상원)에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민주당을 이끌던 오자와 이치로 대표와 대연립을 추진했지만 야당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취임 1년만인 2008년 9월 사임하면서 정치적 경쟁자였던 아소 다로에게 총리 자리를 넘겼다.
그는 일본 정부 대변인이자 ‘총리의 입’ 구실을 하는 관방장관 시절부터 풍자와 유머 넘치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총리 사퇴 기자회견 때 ‘총리의 기자회견이 유체이탈 화법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신과는 다릅니다”라고 답변한 게 그해 ‘신조어·유행어 상위 10위’ 안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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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시절 한국과는 우호 관계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재계 주요 인사 100여 명과 함께 참석했다. 취임식 직후 청와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고, 두 달 뒤인 4월 이 전 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하면서 셔틀외교를 재개했다. 두 정상은 과거사보다 미래의 비전을 중시하는 ‘한·일 신시대’를 열고,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데도 합의했다.
그는 총리 재임 기간 동안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정치·외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문제가 된다면 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2008년 일본 정부가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영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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