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 시의 세계]어두운 구석
물건을 넣어두려고
빈 서랍을 청소하고 있었다.
거기엔 별게 없었다-
죽은 파리 한 마리, 거뭇한 동전 한 닢,
시침핀 하나, 뒤쪽 구석의
먼지.
핀을 집으려고
손가락을 오그렸을 때
시 하나가 내게 왔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한 단어 한 단어 나타났다.
그게 어떻게 서랍 속에 들어갔을까?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내가 거기 넣어두었던가,
보관해 두려고?
그건 파리의 것이었나?
그가 어느 외로운 높이에서
이 부스러기들의 놀이터 위로 그걸 떨어뜨렸나,
난데없이 찾아온
자기 자신의 죽음을? - 메리 루플(1952~)
한국 독자에게는 <나의 사유 재산> <가장 별난 것> 등의 산문집으로 먼저 알려진 메리 루플의 시집 <던스>(안태운 옮김)가 번역돼 나왔다. ‘dunce’는 ‘바보(스러움)’라는 뜻인데, 루플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일단 바보예요. 그리고 제 나이가 되니 바보가 되는 게 두렵지 않은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조금은 어리숙하게 늙고 사라져가도 좋다고 등을 다독여주는 것 같은 시집이다. 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시인의 일상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오래 바라보거나 돌보는 모습이다. 이 시에서처럼 빈 서랍을 청소한다든지 낡은 책의 문장들을 지우거나 오려내는 이레이저 작업을 하면서 시인은 주변의 사물과 교감한다. 그 존재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이와 호기심으로도 말년의 나날은 충분하다. 빈 서랍의 어두운 구석엔 “죽은 파리 한 마리, 거뭇한 동전 한 닢,/ 시침핀 하나, 뒤쪽 구석의/ 먼지”가 전부다. 그런데 손가락을 오그리는 순간, 시가 홀연히 나타난다. 시는 어디서 왔을까. “내가 거기 넣어두었던가, 보관해 두려고?” “그건 파리의 것이었나?” 두 의문문에 이탤릭체로 표기된 ‘나’와 ‘파리’는 “이 부스러기들의 놀이터”에서 모호한 동반자가 된다. 그 순간 시는 어두운 구석에서, 오랜 망각과 죽음에서 깨어나 문득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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