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범 몰려 ‘옥사 아닌 처형’…이름마저 잘못 새겨진 ‘백두산함’ 채시돌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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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증거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채수홍(79)씨는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들여온 인수단 중 한명이었던 고 채시돌(1912~1950) 소령의 아들이다. 백두산함을 몰고 귀국한 채 소령은 6·25전쟁 직전 사상범으로 몰려 구금된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 채씨는 13일 한겨레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달라”며 오랜 세월 묻어둔 호소를 쏟아냈다.
경기 부천 출신인 채 소령은 일제강점기 일본 상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대만을 오가는 여객선 기관장으로 근무했다. 해방 직후 작은 배를 구해 가족과 동포 20여명을 배에 태워 귀국했다. 숙련된 해양 인력이 극히 드물던 당시 그의 경력은 귀중한 자산이었다. 1946년 10월28일, 채 소령은 창군기 해군에 소령으로 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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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해군에 인재만큼이나 절실했던 것은 전투함이었다. 손원일 초대 해군총참모장을 필두로 장교와 수병, 가족들은 물론 정부 성금까지 모아 6만달러의 함정 구매 자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사들인 4척 중 1호 함이 바로 백두산함이다. 백두산함은 1950년 6월25일 밤 부산 앞바다로 침투하던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대한해협 해전’의 주역이기도 하다.
채 소령은 1949년 10월 손원일 제독과 함께 미국에 파견된 14명의 백두산함 인수단 중 한명이었다. 채수홍씨는 “백두산함 정도의 큰 배를 운영해본 이가 많지 않아, 아버지가 사실상 기관장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며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승조원들이 힘들어하자, 바다 경험이 많았던 아버지가 직접 밥을 해서 승조원들을 먹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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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 끝에 백두산함을 몰고 1950년 4월10일 진해 해군기지에 입항했으나, 영광은 사흘 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4월13일, 채 소령은 사상범으로 헌병대에 체포됐다.

아들 채씨가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를 통해 확보한 군 내부 문건을 보면, 진해 헌병대에 구금됐던 채 소령은 전세가 급박해진 1950년 7월30일 마산형무소로 이감된 뒤, ‘옥사’한 것으로 적혀 있다. 진해 헌병대장 서정은 소령이 1950년 8월9일 헌병사령관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사상범 채시돌은 구금 중 7월30일께 시국 긴박한 상태에 마산형무소에 이감하였던바, 사망하였기에 보고한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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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족들은 채 소령이 옥사가 아닌 ‘처형’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익위 조사 과정에서 군이 채 소령의 처형 가능성을 인정한 문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1960년 10월14일, 해군본부 박인준 해군 중령은 채 소령의 사망 원인에 대해 기존 보고서의 ‘병사(옥중)’ 대신, “사상피의(이호영 사건)도 연루돼 처형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보고했다.

‘이호영 사건’은 이른바 ‘해안의용군(해상인민군) 사건’으로, 1948년 반란군으로 몰린 해군 30여명이 마산형무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 발발 직후 집단처형된 사건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채 소령의 마지막 행적과 겹친다. 2024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해상인민군 사건 가담자로 몰린 이상규 소령이 조작된 범죄사실로 인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는 사후에도 온전히 대우받지 못했다. 경남 창원 해군사관학교에 보존된 백두산함 돛(마스트) 앞 기념 석판에는 그의 이름이 ‘채시돌’이 아닌 ‘최희돌’로 잘못 새겨진 채 방치됐다. 해군 관계자는 “2008년 권익위 시정 권고에 따라 오기된 부분을 수정(덧새김)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덧새김 부위가 탈락해 석판을 새로 제작·설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2014년 국방부 조사를 통해 채 소령의 사망 구분이 ‘일반사망’에서 ‘순직’으로 정정됐다. 하지만 명예 회복을 위한 진실 규명은 여전히 미완이다. 2기 진실화해위의 활동 종료로 중단됐던 조사는, 3기 진실화해위가 미처리 사건 2111건을 우선 처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재개의 불씨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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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숙청당한 군인들에 관해 연구해온 신기철씨는 “민간인 피해와 달리, 전후 억울하게 숙청당한 군인들에 대해선 아무런 조처가 이뤄진 게 없다. 피해 군인들을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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