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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5, 2026

“작가는 손도 안 댔습니다”···대리인이 그린 그림이 ‘진품’? 개념미술 선구자 솔 르윗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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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에서 그를 상징하는 작업인 ‘월 드로잉’이 그려진 전시장 모습.   배문규 기자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에서 그를 상징하는 작업인 ‘월 드로잉’이 그려진 전시장 모습. 배문규 기자

‘월 드로잉 #786A: 꼭짓점과 변에서 시작되는 두 가지 원호의 조합들’. 검은 벽이 칠판처럼 놓였다. 오른쪽에는 정사각형의 꼭짓점과 변에서 출발하는 원호 여덟 종류가 1~8번으로 제시돼 있다. 서로 다른 두 원호를 짝지으면 28가지. 표의 조합대로 흰 선들이 교차해 거대한 화면에 리듬을 만든다. 낙서처럼 보이지만 모두 규칙의 결과다.

‘월 드로잉 #396 A-D: 인디아 잉크와 컬러 잉크 워시로 그린 검정 오각별, 노랑 육각별, 빨강 칠각별, 파랑 팔각별’. 네 별은 각각 한 원의 둘레에 꼭짓점이 닿도록 그리되 그 수를 다섯 개에서 여덟 개까지 하나씩 늘렸다. 검정·노랑·빨강·파랑이 차례로 대응해 형태의 변화가 색면의 변주로도 이어진다.

미국 개념미술의 선구자·미니멀리즘 대표 작가 솔 르윗(1928~2007)은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고 선언했다. 작가가 만든 지시문에 따라 다른 사람이 실행해 만들 수 있는 ‘월 드로잉’ 시리즈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선과 격자, 정육면체 같은 기하학적 요소에 규칙을 부여하고 이를 반복·변주해 하나의 아이디어가 여러 형태로 구현되는 과정을 탐구해 왔다. 르윗의 이름은 국내에서도 친숙한 편인데, 양혜규는 르윗의 작품을 블라인드로 재해석하는 ‘솔 르윗 뒤집기’ 연작을 선보였다.

르윗의 작품 세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규모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는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에서다. 월 드로잉 13점과 구조물·회화·사진·판화 등 르윗의 초기 구조물부터 후기 색채 작업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월 드로잉 #786A: 꼭짓점과 변에서 시작되는 두 가지 원호의 조합들’의 구성도(오른쪽)와 구현된 그림의 모습.    배문규 기자

‘월 드로잉 #786A: 꼭짓점과 변에서 시작되는 두 가지 원호의 조합들’의 구성도(오른쪽)와 구현된 그림의 모습. 배문규 기자

‘월 드로잉 #396 A-D: 인디아 잉크와 컬러 잉크 워시로 그린 검정 오각별, 노랑 육각별, 빨강 칠각별, 파랑 팔각별’.   배문규 기자

‘월 드로잉 #396 A-D: 인디아 잉크와 컬러 잉크 워시로 그린 검정 오각별, 노랑 육각별, 빨강 칠각별, 파랑 팔각별’. 배문규 기자

건축가 사무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르윗은 입체 작업을 ‘조각’ 대신 ‘구조물’이라 불렀다. 구상과 실행을 분리하는 방식도 설계와 시공을 나누는 건축을 연상시킨다.

월 드로잉은 작가가 선과 형태, 색을 배열하는 규칙을 정하고, 실행자가 지시문과 도면에 따라 벽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그림은 전시 뒤 지워져도 다른 공간에서 다시 만들 수 있다. 이번에는 솔 르윗 재단에서 온 전문 실행자 7명과 국내 미술 전공생 23명이 8월 5~27일 작업했다. 이름도 작품 옆에 적혔다.

정육면체 구조물은 이 원리를 입체로 옮긴다. 굵은 흰색 막대가 바닥을 따라 뻗다가 직각으로 솟고, 허공에서 다시 꺾인다. ㄴ자, ㄷ자꼴로 남은 선 사이로 네모난 형상이 어른거린다. ‘미완결의 열린 정육면체 6/20’과 ‘7/16’이다. 르윗은 정육면체의 모서리 12개 중 일부를 없애고, 회전했을 때 같은 형태를 뺀 122가지 구성을 제시했다. ‘6/20’은 모서리 여섯 개를 남긴 스무 번째 구성이다. 연작은 정해진 규칙에서 형태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컬러 잉크 워시는 규칙을 색의 겹침으로 확장한다. 르윗은 1970년대 말 이탈리아 스폴레토로 거처를 옮겨 중세·르네상스 프레스코처럼 색과 벽이 한 표면을 이루는 데 주목했다. ‘월 드로잉 #784’에서 색이 스민 흔적은 오래된 벽화의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기울어진 두 다면체는 빨강·노랑·파랑·회색 잉크를 천에 묻혀 정해진 순서로 여러 겹 올려 그렸다. 회화적인 화면 역시 지시문의 결과다.

솔 르윗 정육면체 구조물이 설치된 전시 전경.   배문규 기자

솔 르윗 정육면체 구조물이 설치된 전시 전경. 배문규 기자

솔 르윗 전시 모습.   배문규 기자

솔 르윗 전시 모습. 배문규 기자

솔 르윗의 ‘월 드로잉 #784 컬러 잉크 워시가 중첩된 두 개의 기울어진 형태’.   배문규 기자

솔 르윗의 ‘월 드로잉 #784 컬러 잉크 워시가 중첩된 두 개의 기울어진 형태’. 배문규 기자

솔 르윗의 후기 작업인 ‘얼룩점 #3’(2000)과 ‘월 드로잉 #882B 선들의 띠’(1998)의 모습.  배문규 기자

솔 르윗의 후기 작업인 ‘얼룩점 #3’(2000)과 ‘월 드로잉 #882B 선들의 띠’(1998)의 모습. 배문규 기자

르윗에게 작품의 핵심은 개별 형상보다 그것을 낳는 생각과 규칙에 있었다. 아이디어가 형태를 얻는 과정을 작품으로 삼은 것이다. 작가의 역할과 원본의 의미로도 질문을 확장했다. 다만 실행은 여러 사람에게 열려 있어도 공인된 작품의 진위와 소유는 인증서가 보증한다. 이러한 개방성과 소유의 긴장은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르윗은 소유의 문턱을 낮추려 이번 전시에 나온 ‘런던 지도’(1977)의 가격을 100달러로 정했지만, 연작의 다른 작품이 2023년 크리스티에서 1만1340파운드(약 2000만원)에 팔렸다.

완성된 결과만 보면 ‘이게 뭐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작품과 지시문·도면을 오가며 제작 과정을 역추적하는 일은 뜻밖에 흥미롭다. 그 과정은 개념미술과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유용한 안내가 된다. 솔 르윗은 썼다. “개념미술은 아이디어가 좋을 때만 좋다.” 전시는 내년 2월28일까지.

197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월 드로잉 #66’을 작업하는 솔 르윗의 모습. (C) 2026 The LeWitt Estate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197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월 드로잉 #66’을 작업하는 솔 르윗의 모습. (C) 2026 The LeWitt Estate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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