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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5, 2026

부산의 대안공간 ‘공간 힘’, 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비평 거점으로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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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있는 대안공간 ‘공간 힘’은 서울 미술계에도 건강한 진보 미술 공간으로서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다. 2026년 8월29일 ‘공간 힘’에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비인간’ 출간(이비, 2026)을 계기로 역자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공간 힘’ 제공
부산에 있는 대안공간 ‘공간 힘’은 서울 미술계에도 건강한 진보 미술 공간으로서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다. 2026년 8월29일 ‘공간 힘’에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비인간’ 출간(이비, 2026)을 계기로 역자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공간 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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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프리즈 주간이 다가오고 2026년에는 부산·광주 등 비엔날레 개막까지 겹치면서 미술계가 떠들썩하다. 이 와중에 서울을 떠나 부산에 있는 대안공간 ‘공간 힘’에 북토크를 위해 최근 다녀왔다. 그런데 ‘공간 힘’의 운영진과 토크 참여자들, 전시와 공간의 생김새까지 홍콩의 대안공간 ‘파라사이트’(Para Site)의 인상과 매우 유사했다.

홍콩은 2021년 엠플러스(M+)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중국의 막강한 구매력을 바라보고 크리스티와 소더비경매, 바젤아트페어 그리고 가고시안갤러리(Gagosian Gallery)를 비롯한 서구의 메이저 갤러리까지 세계 미술 자본이 총출동해 조성해놓은 상업적 미술계만 있었다. 상업 공간 외에 미술 관계자가 방문할 만한 곳은 대안공간인 파라사이트와 아시아 미술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정도가 전부였다.

홍콩 ‘파라사이트’와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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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사이트는 1996년 작가들이 설립했고 작가들과 기획자를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상업 화랑이나 보수적 미술 기관이 다루기 힘든 실험적 작업이나 담론 중심의 전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기획을 선보였다. 2005년 전문 큐레이터 체제가 도입되고 2011년 디렉터로 선임된 루마니아 출신의 코스민 코스티나스가 탈식민주의, 젠더, 아시아의 이주 역사, 전염병 등 비판적이고 시의성 있는 주제의 기획 전시들을 선보이며 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비평적 중심지로 도약했다.

이번에 방문한 ‘공간 힘’은 국제적 큐레이터가 아니라 부산 지역의 작가들과 기획자가 운영하는데, 서울 미술계에도 건강한 진보 미술공간으로서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진 곳이다. 낡은 4층 건물에서 지하는 전시실, 2층은 작가들의 작업실, 4층은 사무 및 세미나 공간으로 3개층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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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에는 참여를 신청한 분들 외에 관계자만 대여섯 명이 더 있었는데, 작가와 기획자가 운영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미술인들의 참새방앗간 구실을 하는 듯이 보였다. 실제 2층 작업실은 작업공간이 필요한 작가들에게 열린 곳이라고 했다. 토크에 참여한 신청자도 대부분 작가였는데 적극적으로 질문하거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에서 이 공간의 활기찬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지역 작가 중심의 전시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워크숍, 비평 워크숍, 큐레이토리얼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작가와 평론·기획자를 양성한다. 이따금 북토크나 초청강연, 세미나 등을 열어 동시대 담론의 지형을 충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역의 디렉터가 동시대 어젠다를 지역에 밀착시켜 밀도 있게 작품과 전시로 연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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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의 정착 이후 상업화된 미술계에서 부산의 대안공간 ‘공간 힘’이 지향하는 진보적 지역성과 진지하게 연구하고 사고하는 태도는 희소자원이다. 2026년 9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프리즈 서울’의 정착 이후 상업화된 미술계에서 부산의 대안공간 ‘공간 힘’이 지향하는 진보적 지역성과 진지하게 연구하고 사고하는 태도는 희소자원이다. 2026년 9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토크를 한 날이 마침 부산비엔날레 개막일(2026년 8월29일)이어서 개막 퍼포먼스 두 편을 뒤늦게 관람했는데 놀랍게도 관람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다음날 찾은 전시장에서도 부딪히는 사람 셋 중 한 명은 외국인이었다. 전시작품보다 전시장을 채운 수많은 외국인에게 더 눈이 갔다. 비엔날레를 찾은 이 많은 국외 미술계 인사들, 외국 기획자와 작가들이 ‘공간 힘’의 과거 전시와 활동을 접하고 협력한다면 부산 지역에 관해 좀더 심도 있는 이해 속에 기획과 작업이 가능할 듯싶었다.

파라사이트는 세계 미술자본이 총동원된, 상업화된 홍콩 미술계에서 역설적으로 희소가치가 있었다. ‘프리즈 서울’의 정착 이후, 미술시장 중심의 흥청망청한 축제 분위기에 부응해서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에 집중하는 국내 미술관들, 비영리에서 상업화 쪽으로 기울어진 서울의 대안공간들, 그리고 지역성을 강조하면서도 글로벌한 매너리즘에 빠진 비엔날레 미술까지 한국 미술계는 과거 홍콩 미술계의 분위기를 닮았다. 이런 이유로 지금 우리 미술계에서 ‘공간 힘’이 지향하는 진보적 지역성, 진지하게 연구하고 사고하는 태도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든 희소자원이다.

넓고 화려한 공간에서 세계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작품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비평적 반향을 얻을 수는 없다.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할 때 예술은 예술이기를 그만두고 소비상품으로 전락한다. 반면 기본에 충실하게 주변을 연구하고 조사해 진정성 있게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발언하고 그런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한다면, 아무리 지하의 비좁은 공간이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술가들이 힘 보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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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와 검열이 강화되면서 파라사이트마저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어쩌면 파라사이트가 했던 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비평적·담론적 거점으로서의 기능을 ‘공간 힘’이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예술하는 사람들이 ‘공간 힘’에 힘을 보태야만 한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이승현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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