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저격범은 혼자였나···52년 전 진실 좇는 ‘암살자(들)’
영화 <암살자(들)>에서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1974년 8월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축사를 읽던 중 객석의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며 총을 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맞지 않았으나, 함께 자리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끝내 숨졌다.
체포된 범인은 23세 재일 한국인 문세광.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포섭된 문세광이 북한 공작지도원으로부터 저격 지령을 받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세광은 그해 말 사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정부 당국이 지목한 배후의 진위를 둘러싼 논쟁이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허진호 감독의 신작 영화 <암살자(들)>은 영부인 피격·사망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두고 불거진 각종 의문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남산의 부장들>(2020·우민호 감독)에서 10·26 사태를,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2023·김성수 감독)에서 12·12 군사반란을 그리는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스크린에 옮겨 온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신작이기도 하다.
앞선 두 영화가 실존 인물들의 권력 관계 지형도를 최대한 재연하려고 했다면, 명확하지 않은 의혹을 소재로 하는 <암살자(들)>은 시대성을 띈 가상의 인물들을 내세운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이들, 경찰과 기자다.
경축식 현장 경호를 담당했던 형사 ‘철구’(유해진)는 영부인 사망 후 해직 당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진상을 쫓는다. 검열원이 신문사에 드나들던 시기, 신문사 동성일보 사회부 부장 ‘재환’(박해일)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은 정부 당국의 조사 결과에 의문을 가지며 취재를 이어간다.
영화 <암살자(들)>에서 서울 중부경찰서 경감 철구(유해진)와 신문사의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막내 취재 기자 영일(이민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추적 스릴러로 시작하는 영화는 숨가쁘게 전개된다. 지난 10일 만난 배우 박해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허진호 감독(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른 호흡”이다. 주로 1960~70년대에 건축된 건물과 공간을 찾아 촬영한 덕에 그 시대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국립극장 및 신문사 내부의 풍경이 몰입을 더한다. 주연 배우 유해진·박해일·이민호의 호연은 물론, 크고 작은 조연마다 ‘아는 배우’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배우 정우성, 박정민, 심은경, 박해준, 신현빈, 박성훈, 엄태웅 등이 깜짝 출연한다.
검열이 횡행하던 독재 정권에서 진실 보도의 틈을 노리던 그 시절 기자들의 이야기 비중이 크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속보 상황에서 공중전화와 전보로 소통하던 편집국 묘사가 실감난다. 영화는 1974년 실제 동아일보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항해 발표했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극에 끌어들인다.
독립된 사건을 잇는 연결고리가 다소 헐거우나, 사회부장 재환 역을 맡은 박해일의 연기가 이를 보완한다. 재환은 정의로운 마음과 이성적인 판단이 공존하는 인물로, 독재 정권의 검열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에 무작정 달려들기만 하지 않는다. 박해일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역할이 영화에서 기승전결을 가진 캐릭터로 다뤄지는 일이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해왔던 소재나 역할을 비껴가는 것을 좋아하기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암살자(들)>에서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암살자(들)>의 동성일보 편집국 모습.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저격범에게 공범 혹은 배후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누구 혹은 어디일까. ‘들’이라는 복수형을 괄호 처리 한 제목처럼 <암살자(들)>은 의혹에 답을 내리지 않는다. 허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관련 책자를 참조하면서도 “어느 하나가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가설로 생각하며 균형을 잡았다”고 했다. 점점이 흩어진 의문점을 한 궤로 꿴 ‘팩션’(역사적 사실에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이야기)을 만듦에 있어 그는 “영화를 보고 나서 어디까지가 (감독의) 상상일지, 실제 사건과 영화가 얼마만큼의 연관성이 있을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을 뿐, 주인공들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 앞에 무력한 개인이다. 영화는 진실을 은폐하고 시민들의 알 권리를 묵살하던 그 시절 독재 정권의 모습을 드러낸다. 허 감독은 “1970년대는 지금은 상상이 안 가는 거대한 국가 폭력이 있던 시기였다”며 “그 시대의 폭력성을 영화에서도 보여주려고 했다”고 했다. 23일 개봉. 131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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