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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0, 2026

“저는 음악으로 사람과 문화를 잇는 피아니스트”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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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선 슈필라움 대표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 오금선 제공
오금선 슈필라움 대표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 오금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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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뭘까. ‘일하는 사람’은 무슨 뜻일까. ‘일하는 사람의 초상’이라는 명패를 건 인터뷰 시리즈 기사를 쓰기 위해 연락했을 때 오금선 슈필라움 대표는 조금 주저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 저도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인터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 대표는 어떤 각도로 바라보고 글을 써도 그럴싸한 원고가 나올 인물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공해도 ‘얘기가 된다.’ 이야깃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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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일본식 이름 없이 ‘오금선’이라는 이름을 써왔지만 한국어는 서툴다. 일본에서는 그녀를 한국인으로 보고, 한국에서는 그녀를 일본인으로 본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워 센조쿠가쿠엔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의 베를린한스아이슬러 음대로 유학을 갔다. 독일에서 10년 가까이 살았고, 한국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 남자를 따라 2011년 서울에 왔다. 학자인 남편이 2013년 대구의 공공연구기관에 자리를 얻자, 오 대표도 낯선 도시 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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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로 두 아들을 키우며 간간이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피아노 교습을 했다. 그러다 대구·경북에 사는 일본 여성들의 그림책 독서 모임을 알게 됐고, 몇몇 어머니들이 오 대표에게 노래를 지도해달라고 했다. 함께 노래하던 이들은 2017년 일본의 한 민간단체로부터 한·일 교류 음악회를 함께 열자는 요청을 받고 정식으로 합창단을 결성했다. 대구·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 재한일본인여성 합창단 이름은 ‘이코이.’ 일본어로 휴식, 쉼이라는 뜻이다.

오 대표는 2018년에는 한·일 음악교류단체 ‘슈필라움’을, 2022년에는 청소년 연주단체 ‘유스스타 앙상블’을 세웠다. 이코이합창단, 슈필라움, 유스스타 앙상블 모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오 대표가 보내온 세 단체의 활동 내역은 한 해도 빠짐없이 각종 연주회와 대회, 행사 일정으로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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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선 슈필라움 대표. 오금선 제공
오금선 슈필라움 대표. 오금선 제공

슈필라움은 피아니스트 하시다 나미코와 함께 일본 오사카에서 올해 2월에는 한·일 피아노교류 음악회를, 이달에는 한·일 가곡 콘서트를 열었다. 올해 6월에는 대구에서 ‘고향의 봄 100주년’ 가곡 콘서트를 열었다. ‘고향의 봄’, ‘가고파’ 등 귀에 익은 한국 가곡과 함께 ‘바다’, ‘꽃은 핀다’ 등 일본 가곡도 한국 관객에게 소개했다. 오사카에서 연 한·일 가곡 콘서트에서는 바리톤 송민태, 소프라노 오타니 시호 등과 함께 한국 가곡들을 일본 관객에게 들려줬다. 유료 공연이었다. 이코이합창단은 지난달 대구에서 열린 제1회 전국다문화어울림 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같은 대회에서 유스스타 앙상블은 특별상을 받았다.

지면은 한정돼 있는데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은 인터뷰 대상을 만나면 인터뷰어는 고민에 빠진다. 어떤 측면을 택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라는 각도를 택하면 오 대표에게 이런 주제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경계인으로서의 경험, 한·일 양국에서 반응이 좋았던 상대 국가의 가곡,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혐한에 대한 생각 등. 로컬 문화운동가라는 각도를 택하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지역 음악인들은 공연 기회에 얼마나 목말라 있나, 지역 음악계 저변은 어떻고 어떤 인프라가 부족한가, 대구시는 얼마나 지원을 해주나.

나는 ‘일’이 뭔지를 물었다. 이 시리즈 명패가 ‘일하는 사람의 초상’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그 질문을 고민하는 중이어서 그렇기도 했다. 고단한 생계 노동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신 해주고, 기본소득을 받아 밥벌이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면, 그때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일이 남게 될까?

자신이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오 대표가 말한 이유는 벌어들이는 수익이 많지 않아서다. “레슨비 등으로 스튜디오 임대료와 제 활동비는 댈 수 있지만 돈이 모이지는 않는 수준”이라고 한다. 자신도 일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 직업 전선에 선 이들에게 실례가 되는 것 아닐까 염려한다. 그녀는 자기 활동에 긍지와 콤플렉스를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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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지만 바쁜 티는 내지 않으려 해요. ‘생계가 걸린 문제도 아닌데 그냥 편하게 하면 되잖아’라며 취미 생활로 보시는 분도 계시니까요. 남편이 소득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는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고, 사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요.”

오 대표의 아이들도 ‘엄마는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일’에는 고단한 대목이 있다. 좋아서 키우는 나무이건 아니건 간에,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벌레를 잡아야 보람과 의미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올해 6월 대구에서 열린 ‘고향의 봄 100주년’ 가곡 콘서트에서 오금선 대표가 해설을 하는 모습. 오금선 제공
올해 6월 대구에서 열린 ‘고향의 봄 100주년’ 가곡 콘서트에서 오금선 대표가 해설을 하는 모습. 오금선 제공

이코이합창단, 슈필라움, 유스스타 앙상블에 직원은 따로 없다. 어느 단체에서는 음악감독, 어느 단체에서는 대표라는 직함을 맡았지만 오 대표의 직무 범위는 굉장히 넓다. 이코이합창단에서는 단원들이 업무를 분담하지만, 슈필라움과 유스스타 앙상블에서는 오 대표가 잡무까지 도맡는다. 기획서 쓰기, 레퍼토리 선정, 출연자 섭외, 공연장 대관, 공연용 슬라이드 및 동영상 제작, 팸플릿 제작, 연습, 지휘, 반주 녹음, 촬영, 공연 스태프 관리, 큐시트 작성, 리허설, 무대 조명 확인, 티켓 부스 설치, 출연비 정산, 지원기관에 제출할 보고서 작성…. 뒤풀이를 할 식당도 직접 예약하고, 가곡 가사도 직접 번역한다. 자신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 행사에서는 의자도 나르고 피아노 뚜껑도 닫는다.

“대구에도 공연기획사는 많이 있고, 공연 진행을 대행해주는 업체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내 일은 내가 한다’는 마인드여서요. 공연 대행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그럴 여유도 없고, 자체 기획 공연은 하지만 제가 전문 기획자는 아니거든요.”

그 많은 직무 중 가장 정성을 들이는 작업은 뭐냐고 물으니 “연습”이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연주를 자신이 만들고 있다고, 그 연주를 위해 연습을 한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일인 셈이었다.

오 대표는 스스로 그다지 추진력이 있거나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2시간 반 넘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줄곧 조용하고 겸손한 자세였다. 그래서 몇몇 질문들에 대한 답은 심심했다. 슈필라움을 이끌며 힘든 적이 없었고, 남편은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며, 대구는 문화 활동을 하기에 아주 좋은 도시라는 식이었다. 20대 후반까지 피아노 연주만 해온, 저렇게 차분한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공연 기획이라는 험한 사업을 벌이게 된 걸까. 그것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20년 가까이 피아노 연주와 연습을 하다가 첫아이를 임신하며 그만두게 됐죠. 아예 손도 안 댄 건 아니지만 그냥 취미생활 수준으로 쳤어요. 집에 있는 피아노를 혼자 치거나 남의 발표회에서 반주를 하는 정도로요. 남편은 아직 학생이었고 저는 24시간 아이 옆에 있어야 했고요. 언젠가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겠지, 하고 생각만 했어요.”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받거나 음반을 내는 친구들의 활동을 보면서 부러움에 휩싸이는 날도 있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다. ‘내가 뛰어들 세계가 아니었나 보다’ 하는 생각도 했다. 한국에 가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렇게 해라’라고 허락했지만, 센조쿠가쿠엔 음대의 은사님은 아쉬워했다. 오 대표는 “그때는 남편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짧게 설명했다.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고 슈필라움 활동도 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추진력이 된 것 아닐까 나는 짐작해봤다.

“제대로 연습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에 가든 집에 피아노를 뒀어요. 그래야 마음이 놓였어요. 그랜드피아노를 둘 수는 없으니까 업라이트 피아노를 뒀죠. ‘언제든 치고 싶을 때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나 봐요. 그렇게 연주를 하지 않은 기간이 8년, 길게 잡으면 10년 정도 돼요.”

올해 7월 대구에서 열린 슈필라움 작은 음악회 무대에 이코이합창단(오른쪽)과 유스스타 앙상블이 함께 올랐다. 오금선 제공
올해 7월 대구에서 열린 슈필라움 작은 음악회 무대에 이코이합창단(오른쪽)과 유스스타 앙상블이 함께 올랐다. 오금선 제공

남편이 직장을 옮겨 대구를 떠나게 되면 슈필라움도 그만둘 텐가? 아니라고, 어디서든 계속하겠다고 한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기 힘으로 해낸 곳, 그렇게 된 계기가 슈필라움이라서 ‘슈필라움 대표’라는 명칭은 당당하게 쓰고 싶다고 했다. 이코이합창단과 유스스타 앙상블도 자신을 필요로 하면 연습 시간에 대구로 찾아와서 단원들을 지도하겠다고 한다.

좋다, 직함은 ‘슈필라움 대표’로 하자, 그러면 당신의 직함이 아닌 직업은 무엇인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나. 공연기획자라고 하면 될까. 내가 물었고 오 대표는 그 질문이 어렵다고 했다. 자신이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 같다며. 며칠 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제 일은 연주, 기획, 교류, 이렇게 세가지가 핵심인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저를 기획자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제 마지막 자존심인 거 같아요. 제 직업을 ‘뭐뭐를 하는 기획자’,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문장을 기획자라는 단어가 아니라 피아니스트라는 단어로 끝내고 싶어요. ‘마음을 전하는 피아니스트, 음악을 통해 사람과 문화를 잇는 피아니스트’, 이렇게요.”

자신의 기반은 피아노이고, 자신의 정체성은 피아니스트이며, 슈필라움은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연주로만 먹고사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어도 충분히 피아니스트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전업 피아니스트가 아닌 데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았다는 느낌이에요.”

정말 음악으로 마음이 전해지나. 피아노를 엄청나게 완벽하게 잘 치는 로봇이 공연장마다, 집집마다 보급되면 어떻게 하나. 이 질문에 그녀는 웃었다.

“연주자 사이에도, 연주자와 관객들 사이에도 마음은 전해져요. 한·일 청소년 음악교류회를 처음 열고서 제가 너무 감동을 받아서 이건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로봇 연주자… 글쎄요. 저는 저의 의미를 가지고 저의 음악을 해요. 로봇의 연주도, 다른 사람의 연주도 상관없어요.”

장강명 l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 김새섬 대표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www.gmeum.com)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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