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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26, 2026

007 본드카부터 김도기 그랜저까지…스크린이 만든 자동차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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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의 오랜 역사에서 자동차는 언제나 서사의 속도와 분위기를 조율하는 중요한 파트너였다. 때로는 거친 배기음으로 추격전의 심장박동을 끌어올리고, 때로는 주인공의 고독과 결의를 대변하는 분신이 돼 시대를 풍미했다. 스크린 속 강렬한 존재감 하나로 벼랑 끝에 섰던 브랜드의 운명을 통째로 뒤바꾼 사례도 적지 않다.

1대 제임스 본드 역할을 했던 배우 숀 커너리가 1964년 007 시리즈의 첫 작품인 <골드핑거> 촬영 당시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5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1대 제임스 본드 역할을 했던 배우 숀 커너리가 1964년 007 시리즈의 첫 작품인 <골드핑거> 촬영 당시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5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그 시초는 단연 ‘007 시리즈’의 애스턴 마틴이다. 1964년 영화 <007 골드핑거>에 처음 등장한 은빛 ‘애스턴 마틴 DB5’는 기관총과 방탄 철판, 회전식 번호판, 조수석 사출 장치까지 탑재하며 전 세계 대중문화사에 ‘본드카’라는 불멸의 고유명사를 새겼다. 최첨단 특수 장비로 무장한 이 은빛 쿠페는 스파이 액션의 문법을 바꿨을 뿐 아니라, 애스턴 마틴을 상징하는 글로벌 럭셔리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DB5의 인기는 장난감으로도 만들어져 DB5 모형이 출시 첫해 1965년에만 250만개가 팔렸다.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의 노란색 쉐보레 카마로 역시 스크린이 자동차의 이미지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 속 범블비로 등장한 카마로는 강렬한 캐릭터와 결합하며 젊은 세대에게 존재감을 각인했고, 2009년 부활한 신형 카마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회사가 파산하면서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드로리안 DMC-12’가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날개 달린 타임머신으로 변신해 인기를 끈 것 또한 영화적 상상력과 자동차가 빚어낸 마법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이 1973년식 브리사 택시를 타고 봉쇄된 광주로 들어가기 위해 군인과 대화하는 모습.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이 1973년식 브리사 택시를 타고 봉쇄된 광주로 들어가기 위해 군인과 대화하는 모습. 쇼박스 제공

국내 대중문화 속 자동차 역시 굴곡진 현대사의 궤적을 함께 그리며 진화해 왔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진실을 독일 기자와 함께 온몸으로 실어 날랐던 초록색 ‘기아 브리사’가 대표적이다. 평범한 소시민의 눈물과 역사의 무게를 증언한 브리사는 영화 흥행을 계기로 다시 한국 자동차 산업사의 문화유산으로 주목받았고, 기아는 연구소에 보관하던 차량을 복원해 헤리티지 모델로 공개했다.

과거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 대형 세단이 조직폭력배나 부패한 권력자의 위압적인 ‘검은 세단’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SBS 드라마 <모범택시> 시리즈에서는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역할이 달라졌다.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억울한 피해자들을 돕고 악당을 처단하는 다크히어로 김도기(이제훈 분)의 특수 개조 작전차로 등장하면서다. 범죄 집단의 차량을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장애물을 돌파하는 무지개 운수의 모범택시는 구형 모델에서 출발해 최근 시즌3에서는 7세대 ‘디 올 뉴 그랜저’로 진화하며, 성공한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국민 세단에 통쾌한 영웅의 서사와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덧입혔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 3>에 나오는 현대자동차 디 올 뉴 그랜저. SBS 갈무리

SBS 드라마 <모범택시 3>에 나오는 현대자동차 디 올 뉴 그랜저. SBS 갈무리

스크린을 질주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욕망의 상징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시대를 기록하는 증인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였다. 자동차가 등장한 장면마다 그 시대 대중이 차에 부여한 의미가 함께 새겨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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