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아니야?” “식탁보인 줄”…젊은이들의 ‘이유 있는’ 파자마 패션
레이스 달린 헐렁한 블라우스, 잠옷 같은 줄무늬 셔츠, 허리에 끈만 달린 헐렁한 바지. 요즘 젊은 층의 여름 패션을 보고 있으면 “잠옷 입고 나온 것 아니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맞는 말에 가깝다. 2026년 여름 글로벌 패션계에서는 잠옷에서 영감을 얻은 옷을 그대로 일상복으로 입는 ‘파자마 드레싱(pajama dressing)’이 핵심 트렌드로 떠올랐다.
미국 패션지 하퍼스바자는 최근 ‘잠옷 상의가 침실 밖으로 나오고 있다’며 파자마풍 셔츠를 이번 시즌의 대표 아이템으로 꼽았다.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에 대비색 파이핑이나 줄무늬, 꽃무늬를 넣은 잠옷 느낌 셔츠를 청바지나 정장 바지와 매치하는 방식이다. 미국 보그 역시 올여름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잠옷 같은 허리 조임끈이 있는 드로스트링 팬츠를 소개하며 ‘가장 편안한 여름 필수품’이라고 평가했다.
레이스 식탁보가 옷이 됐다…‘도일리 톱’의 등장
자라 SNS 갈무리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해외 매체들에서 ‘도일리 톱(doily tops)’으로 소개된 스타일이다. 도일리는 과거 식탁이나 찻잔 아래에 깔던 레이스 뜨개 장식용 천을 말한다. 섬세한 레이스와 자수, 헐렁한 실루엣을 활용한 베이비돌풍 상의가 잠옷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하얀 레이스와 펀칭 자수, 얇은 면 소재의 넉넉한 상의는 얼핏 보면 집에서 입는 잠옷이나 나이트웨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바지나 카프리 팬츠, 린넨 스커트와 함께 입으면 여름 휴양지풍의 느슨하고 낭만적인 옷차림으로 바뀐다. 하퍼스바자는 2026년 여름 아이렛(구멍을 낸 자수·펀칭) 소재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며, 더위를 견디기 좋은 통기성과 섬세한 장식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흐름은 일부 ‘특이한 옷’에만 그치지 않는다. 2026년 봄·여름 패션쇼에서도 잠옷의 줄무늬와 박시한 실루엣, 복서 쇼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소재가 잇따라 등장했다. 보그는 올해 봄 패션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로 잠옷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파자마풍 스타일’을 꼽았다. 잠옷 같은 부드러운 소재와 헐렁한 실루엣을 일상복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보그는 이를 ‘필로우 토크(Pillow Talk)’, 즉 침실에서 영감을 얻어 잠옷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스타일로 표현했다.
“뭘 입어도 덥다”…폭염이 바꾼 옷의 기준
SNS 갈무리
왜 하필 지금 잠옷일까.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더위다. 옷을 갖춰 입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되는 폭염 속에서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몸에 달라붙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며, 입는 데 복잡한 고민이 필요 없는 옷이다.
보그는 최근 ‘열파 시대의 여름 옷차림’을 다루면서 극심한 더위가 이제 일시적인 불편을 넘어 계절마다 옷을 고르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퍼스바자 역시 잠옷풍 셔츠가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소재를 활용해 더운 날씨에 적합하다는 점을 인기 이유로 들었다.
한국의 젊은 층 패션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보인다. 몸에 딱 붙는 청바지 대신 허리에 끈이나 밴드를 넣은 와이드 팬츠, 속옷처럼 가벼운 캐미솔에 얇은 셔츠를 걸치는 차림, 레이스와 자수가 들어간 넉넉한 블라우스가 여름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섞인다. 중요한 것은 실제 잠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잠옷의 ‘편안함’을 일상복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코로나가 없앤 ‘집옷과 밖옷의 경계’
변화의 시작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집과 직장,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오가는 기존의 옷차림 규칙에서 한동안 벗어났다. 위는 갖춰 입고 아래는 편한 옷을 입는 식의 ‘화면용 패션’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보그는 당시 이미 ‘낮에 입는 잠옷과 밤에 입는 잠옷’이라는 농담이 유행할 정도로 집옷과 외출복의 경계가 흐려졌다고 짚었다.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 번 낮아진 편안함의 기준은 쉽게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른바 ‘애슬레저’가 운동복을 거리로 끌고 나왔다면, 파자마 드레싱은 한 걸음 더 나간 흐름이다. 운동을 한 뒤 바로 나온 것처럼 보이는 옷이 아니라 처음부터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외출 가능한 모습으로 설계된 옷을 찾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은 이를 “겉보기에는 단정하지만 실제로는 잠옷만큼 편한 ‘시크릿 파자마’풀”이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것은 잠옷처럼 보이는 옷이 진짜 아무렇게나 입은 옷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파자마 드레싱의 핵심은 ‘방금 침대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되,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편안한 상의에는 구조적인 바지나 스커트를 맞추고, 헐렁한 바지에는 가방과 신발, 액세서리로 외출복의 느낌을 더한다. 하퍼스바자는 잠옷풍 상의를 입을 때 재킷이나 정장 바지처럼 보다 구조적인 아이템을 함께 매치해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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