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목숨 걸고 왔으면 악착같이 살라고 하죠”···탈북민 동행사가 탈북민에 전하는 ‘따뜻한 돌봄’
김지아 서울시 북한이탈주민 1인가구 이웃동행사가 지난 2일 양천구의 한 교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인하 기자
“따끔하게 말하죠. 여기서 잘 살아보려고 목숨 걸고 탈북한 거 아닙니까, 죽을 각오로 나왔으면 이렇게 고립돼 살지 말고 남한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으라고요.”
서울 양천구의 한 교회에서 지난 2일 만난 김지아 이웃동행사(58)는 “예상보다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탈출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집 안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동행사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통을 들어주고, 내가 걸어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며 “총살과 생체실험 위험에도 잘 살아보려고 남한으로 온 사람들 아니냐”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1인가구 이웃동행’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하나센터와 신변보호담당관이 추천한 고립위기 북한이탈주민 40가구를 이웃동행사가 2인 1조로 방문해 생활 전반을 살피는 사업이다. 시범사업은 이달 우선 마무리됐다.
이 사업 핵심은 대상자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데 있다. 그들이 왜 고립됐으며 무엇을 해결해 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까지를 살피는 데 초점을 뒀다. 이 때문에 북한 출신·남한 출신 이웃동행사 각 1명이 함께 다니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탈북민이 탈북민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전국 처음이다.
김 동행사도 북한이탈주민이다. 한 고위직 가족의 탈북을 돕다 적발돼 중국으로 도망친 후 2003년 한국으로 넘어왔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공안에 잡혀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감옥생활은 긴 후유증을 남겼다. 간은 알코올 중독자처럼 굳었고, 암 수술을 2번 받았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그는 국제사이버대학원을 다니며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북에서 하던 일을 살려 회사도 다녔다.
“(고립위기 분들은) 처음에는 만남 자체를 거부하거나 ‘나는 북한에서 잘 살았다’며 거짓말부터 늘어놓습니다. 마음 속을 안 내놔요.”
이웃동행사들은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김 동행사는 “문자를 보내고 이틀 정도 기다리기도 했다”며 “약속 시각 직전에 취소하면 ‘과일을 좀 사 왔는데 집 문고리에 걸어만 놓고 가겠습니다’라고 하면 그제야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립 북한이탈주민의 집 안은 난장판이기 일쑤였다.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거나 신문지 등으로 창문을 모두 막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게 한 일도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거죠.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감시받았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니 창문을 모두 막아버리고, 어둠은 견디지 못해 집안 불은 환하게 켜놓고 사는 겁니다.”
이웃동행사들은 고립된 북한이탈주민 1가구당 최소 9번씩 방문했다. 1회 방문당 2시간가량만 머물면 되지만, 이 원칙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김 동행사는 “같이 장을 봐서 밥을 해 먹고, 함께 병원도 다니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날 때도 있다”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인데, 어떻게 그 시간이 아깝다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서울시 북한이탈주민 1인가구 이웃동행사가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과일을 고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이들의 정성은 작은 변화로 이어졌다. 음식을 맛깔나게 잘하는 한 대상자는 북한 언감자떡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 돌렸다. 남한에 온 지 20여 년이 된 한 대상자는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 함께 나들이도 다녀왔다. 최근 컴퓨터를 배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대상자도 생겼다.
김 동행사는 “그들도 남한에 도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여기서 살아가며 남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며 “이웃동행 사업이 계속 이어져 많은 탈북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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