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가 아니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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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 전 정의당 의원
정부가 미국의 거듭된 압박에 밀려 중동 호르무즈해협에 해상초계기(P-8A 포세이돈)와 군수지원함(AOE-II 소양급), 기뢰 제거를 하는 소해함 등 이른바 ‘비전투 전력’을 파견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실무 현지조사단을 아랍에미리트(UAE) 미 공군기지와 바레인 미 해군기지로 급파해 기항지와 비행 여건을 점검하는 등 사실상 파병 수순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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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의 기억을 소환한다. 한-미 동맹의 결속을 다지고 북핵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파병 검토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본질부터 결과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의 논리로 지금의 수렁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위험천만한 역사적 자기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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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군사 행동의 정당성과 법적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2003년 이라크 파병은 명분 논란이 극심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1483호·1511호)라는 최소한의 다자주의적 외피를 갖췄다. 또 미 의회의 공식 승인을 거친 전쟁이었다. 반면 지금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유엔 결의는커녕 미 의회의 정식 선전포고나 무력사용승인(AUMF)조차 거치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특수군사작전’에 불과하다. 게다가 미국이 치른 어떤 전쟁과도 달리 미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파병은 국제법적 근거가 전무한 불법적 군사 행동의 전위대로 국군을 내모는 일이다.
둘째, ‘국제연합군’이 아닌 ‘한국 홀로 참전’이다.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등 14개국 이상의 다국적군이 함께 전선에 섰다. 그러나 지금 세계 주요국들은 트럼프의 무모한 군사 모험주의에 단호히 선을 긋고 있다. 유럽연합(EU) 핵심국들은 미군의 지휘를 거부한 채 순수 상선 호송만을 위한 ‘아스피데스 작전’을 독자적으로 펴고 있으며, 일본조차 등을 돌렸다. 전세계가 거부한 전장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트럼프의 거친 압박에 굴복해 홀로 미군 옆에 서는 꼴이다. 중견국가로서 우리가 수십년간 쌓아 올린 외교적 위신과 도덕적 자산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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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비전투 지원’이라는 것은 군사를 모르는 자들의 관념적 허상이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 전후 재건과 민사 작전 등 안정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지금 호르무즈는 엄연히 주권국가인 이란 정규군과 정예 혁명수비대(IRGC)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실전 교전 구역이다. 현대 복합전에서 홀로 단독 작전을 펼 수 있는 군수지원함이나 초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초계기가 수집한 해상 레이더와 음향 데이터는 즉각 미 해군 타격자산으로 넘어가며, 군수지원함은 미 함대에 기름과 포탄을 대주는 합동작전 전력이다. 미군 지휘통제 체계에 편입되는 순간 우리는 교전 당사국이 된다. 이란 본토 해안선과 케슘섬 등 전략 도서에 촘촘히 깔린 지대함 순항미사일과 자폭 드론, 기뢰의 조준선은 미군뿐만 아니라 매년 수백척씩 호르무즈를 드나드는 우리 유조선과 상선을 향하게 된다. 국가의 에너지 생명선 전체가 인질로 잡히는 자살골이다.
넷째, 동맹의 품격과 청구서의 차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조지 부시 대통령의 요청은 정중한 협의의 틀을 갖추었지만, 트럼프의 요구는 사실상 안보 협박이다. 주한미군을 들먹이고 연합훈련을 흔들며 들이미는 청구서에 군수함 한척을 보낸다고 미국이 고마워하겠는가? 이미 군사장비 가동률이 바닥난 미 해군·공군의 현실을 볼 때, 이는 한국 끌어들이기, 이른바 ‘발 담그기’ 전술이다. 첫발을 들이는 순간 구축함, 소해함, 특수전 전력을 내놓으라는 제2, 제3의 청구서가 줄을 이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해도 트럼프가 대미 관세 협상이나 투자 압박에서 한국에 호의를 베풀 리 만무하다. 이는 동맹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트럼프 개인의 망가진 위신을 살려주기 위한 ‘조공 파병’에 불과하다. 호르무즈해협은 출구가 없는 ‘영원한 전쟁’의 늪이다. 지지율 정체와 내정의 난제를 겪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정치·군사적 무게가 결코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같은 역사적 명분을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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