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서 죽은 시인들, 이제 당신의 ‘응답’을 기다린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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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숫자가 아니다. 나는 삶, 행복, 자유, 아이들 웃음소리, 바다, 커피, 글쓰기, 파이루즈(아랍계 전설적 가수), 그리고 기쁨을 주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고 말해주지 않는 한, 내 죽음이 스쳐 지나가는 뉴스 중 하나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 나의 꿈 중 하나는 내 책과 글이 전 세계를 누비는 것, 펜에 날개가 달려 여권 도장이나 비자 거부에 막히지 않는 것이다. (…) 내 가장 큰 꿈은… 폭탄이 떨어진 모든 자리에 꽃을 심고, 부서진 모든 벽에 우리의 자유를 그려 넣으며, 전쟁이 우리를 내버려 두어 우리가 마침내 우리의 삶을 단 한 번이라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고 학생도 가르쳤던 팔레스타인인 누르 알딘 하자즈가 2023년 10월28일 남긴 일기다. 그는 당해 12월3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졌다. 1996년 1월 가자지구 출생 하자즈가 살았다면 올해 서른살이 되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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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또 다른 글이 2025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가자지구 시인 선집 ‘가자: 죽음 전 삶이 있는가?’에 수록되어 있다.
“가자는 전멸하고 있다. 매일 저녁 생명이 저물고, 이튿날 다신 떠오르지 않는다. 내일은 나의 죽음이 보도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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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선집과 닮은꼴로 지난해 이맘때 국내 출간된 책이 ‘팔레스타인 시선집’이다. 2023년 12월6일 가자지구에서 숨진 작가 리파아트 아르이르(1979년생,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로 시집은 시작된다. 2024년 1월 한겨레 보도로 국내 처음 알려진 시인이자 시다.
아르이르와 함께 이미 유명을 달리한 작가가 ‘팔레스타인 시선집’에 또 있다. “너와 어린것들에게 피난을 허하노라”라고 간구하는 히바 아부나다(1991~2023). 2023년 10월 가자지구 남부로 피신하던 중 남긴 메모가 팔레스타인 작가의 글을 수집, 배포하고 발생하는 수익을 가자지구로 환원하려는 단체(‘가자로의 통로’)에서 확인된다. 공습이 시작된 10월7일의 아침 6시54분부터 20일 숨지기 몇시간 전이었을 오후 4시52분까지 21꼭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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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미국이 시온주의 세력을 지원하려고 항공모함을 보내려 한다. 좋아, 우리가 해방되면 그 항공모함은 바다 위 떠다니는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던 아부나다는, 9일 “이전의 모든 전쟁에서 적의 공격엔 일정의 패턴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패턴도 없다. 모든 곳이 폭격을 당하고, 이전의 모든 전쟁들이 이 전쟁에 압축해 있다”고 글의 표정을 바꾼다. 쥐어짠 웃음이 사라지고, 논리도 다 마른 뒤 남는 게 무엇이랴. 19일 아부나다는 팔레스타인 대학교가 있는 중·상층 주거 지역으로 지난 공습에서 열외됐던 알자흐라를 가리키며 “도시 전체가 순교하고 있다. 고층 건물 하나하나가 무너지고 있다. 오 하나님, 오 하나님!”이라 썼고, 20일 오후 “우리는 어디에서 쓰러지게 될지 알게 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약속은 참되나이다”라고 썼다. 마지막이었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은 ‘제노사이드’(유엔 인권이사회 독립 조사위원회의 판단)였다. 그러나 충분히 들었던가, 알았던가. “지도에 의해. 지도를 벗어나. 모르는 골목. 모르는 학교. 모르는 병원이. 벗어남에 갇혀. 모르는 봉쇄. 모르겠어. 모르는 공습. 모르는 포격. 파편이. 통곡이. 있다. 지도로부터 소격되어. 잿더미. 모르는 잿더미. 모름에 휩쓸려. 모를 수 없는”(신해욱, ‘중첩 지구’) 가자의 파다한 죽음들.
“모르는 침묵”의 부조리와 비극을 자책하듯 한국 시인 등이 시를 지어 모았으니, 이번 국내 출간된 ‘(팔레스타인을 위한/향한) 응답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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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나다도 하자즈도 당초 글엔 시 아닌 것이 많다. 피난 일기가 시가 되고, 죽은 시인이 환생하는 원리를 알지 못하므로, 시인 김혜순의 ‘응답’을 따라가 볼 뿐이다. ‘히바 아부나다에 대한 추모’를 아예 부제로 삼은 시 ‘미러볼 행성’이다.
“너에게는 기도를 삼키고 기도를 게우는 시간/ 너에게는 시간의 굽이마다 상처가 벌어져 외치는 시간// 공중에 떠도는 죽은 아이의 슬픔에 떠는 혀/ 네 입속에 들어오는 죽은 아이의 그 혀// 무기가 된 하늘과/ 무덤이 된 집에서//…// 이 시를 쓰는 나에게는 불현듯/ 작은 혀 하나가 내 입안에서 펄떡거리고// 안의 너와 밖의 나, 밖의 너와 안의 나/ 거기의 여기 있고 여기의 거기 있는 너”
아부나다의 기도는 이미 죽은 자들의 기도였고, 내일 살 자들의 기도다. 이국의 기도가 여기 복화술로 구사된다. 진부하게는 ‘공명’ 내지 ‘연대’로 부를 만한데, 파장은 진부할 수 없다. “메아리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말의 깊이도 있”고, “끝내 사라지게 하며 나타나는 시”(김현, ‘팔레스타인에 사는 시’)도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시선집’엔 이미 망명했거나 국외에서 태어난 작가들도 두루 포함되어 있다. 1995년 요르단 암만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부모의 아이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시인 누르 힌디도 그중 하나다.
“식민자들은 꽃에 관한 시를 쓴다/ 난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진 아이들이/ 곧장 들꽃이 되어버렸다고 대꾸한다/…/ 죽음을 은유로 쓰는 건 귀신이 소리에 연연한다고 생각하는 시인이나 할 짓이야/…/ 나도 언젠간 꽃이 우리 것인 양 꽃에 대한 시를 쓸게”
수록된 시의 제목은 ‘씨발 작법 같은 소리하네, 내 민족이 죽어가는 와중에’다. 말마따나 ‘절멸’ 앞 생사의 신분차가 없고, 시와 산문의 문법차가 없고, 절규와 침묵, 슬픔과 저주의 격차가 없다. ‘응답의 시’에서도 쓰였듯, “피를 뿌리면 피가 자라고 눈물을 뿌리면 눈물이 자라는 곳”이 아닌가. “총을 심으면 총이 자라고 분노를 심으면 분노가 자라지. 기도를 심으면 기도가 자라고 꿈을 심으면 꿈이 자라지. 죽은 사람을 묻으면 산 사람이 자라고”(강성은, ‘지붕 없는 집’). 진은영 시인의 말처럼 “한 곳에서 승인된 폭력은 전염병처럼 모든 곳으로 옮겨” 갈 터, 시의 촉수로 오늘 저들의 ‘지붕 없는 집’이 내일 우리의 ‘지붕 없는 세계’가 될지 모른다.
‘응답의 시’엔 시인 외 소설가 김숨, 2025년 한국인 최초로 가자지구 구호선단에 합류했다가 이스라엘군에 해상 나포된 활동가 해초까지 모두 47명이 참여했다. ‘(팔레스타인을 위한/향한) 응답의 시’는 이제 독자들의 응답을 기다린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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