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되자, 우리도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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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오랜만에 레코드숍에서 비틀스의 ‘러버 솔’(Rubber Soul) 2026년 리믹스·리마스터 앨범을 구매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인공지능(AI) 음원의 홍수 속에서 살아 있는 진짜 음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럴수록 고전, 클래식은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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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날씨, 가을 오전 햇살이 내리쬐는 레코드숍에서 왜인지 비틀스의 앨범은 몇번이고 내 눈길을 되돌렸다. 등굣길 샴푸 냄새나던 그 아이처럼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1965년에 발매된 이 앨범이 왜 아직까지 회자되고, 다시 리믹스와 리마스터링을 거쳐 발매되며 나의 마음과 계좌를 사로잡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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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턴테이블 위에 엘피(LP)를 올려놓고 카트리지 바늘이 소리골을 읽으니, 그 시절 청년이었던 비틀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60년이 넘도록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것. 분명 예전에 다 들어본 곡들이지만, 세월이 지나 다시 들어보니 멜로디와 가사가 심장 속에 더 깊게 박혀 온다. 이것이 고전이구나!
클래식이란 무엇일까?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격조 높은 공간에서 연미복을 입고 연주하고 노래해야만 클래식일까? 고풍스러운 액자에 걸려 있거나 두꺼운 양장본으로 출판되어야 고전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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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고전이라 부르는 예술들도 처음부터 고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베토벤은 당대의 음악적 관습을 깨뜨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했고,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어 오페라가 권위를 누리던 시대에 독일어로도 오페라를 만들었다. 화려한 연주로 인기를 누렸던 프란츠 리스트는 관객에게 자신의 옆모습이 잘 보이도록 피아노를 배치하고, 독주회 자체를 하나의 공연 문화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록스타였던 셈이다.
그 시대에도 새로운 음악은 누군가에게 낯설고, 시끄럽고, 불편했을 것이다. 어떤 음악은 기존의 질서를 흔들었고, 어떤 예술은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었다. 오늘날 근엄한 얼굴로 감상하는 고전들이 한때는 뜨겁고 발칙한 현재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어쩌면 클래식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새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흐 역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9년 후, 스무 살의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지휘하면서 다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흐는 자신의 음악이 수백년 뒤에도 연주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클래식은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등단도 하지 않은 작가나 음악가, 예술가들이 거울을 보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난 200년 뒤에 고흐나 바흐가 될 상이야.’
그런데 클래식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백년 뒤에도 사랑받을 작품을 만들겠다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감정과 자유로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고전이 된 예술가들도 자신이 수백년 뒤 교과서에 실릴 것을 목표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살던 시대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랑하고, 반항하고, 놀았을 것이다. 클래식이 되는 비결은 클래식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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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이란 참으로 인간적인 욕망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위대한 예술가도, 왕도, 영웅도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과 그림과 문학은 시간을 건너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언젠가 지구가 자전을 멈추고 태양의 불이 꺼진다고 해도, 고전이 된 예술이 남긴 울림의 주파수 같은 것은 우주의 어느 공간을 유영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정말 죽을 때까지 놀고 싶다. 아니, 죽은 후에라도 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이 되어야 한다. 죽어서 클래식이 되자는 건 아니다. 볼링공을 던지고 나서도 우리는 핀을 쓰러뜨릴 잠시 후를 상상하며 자세를 유지한다. 이미 공은 손을 떠났지만, 몸은 여전히 그 방향을 향하고 있다. 클래식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먼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의 자세를 바로잡게 되는 것. 백년 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도 멋진 일이겠지만, 오늘의 내가 나에게 솔직한 것이 먼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클래식이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갈 때, 그 아름다운 빛깔과 울림은 영롱한 시공간을 초월하여 클래식이 되어갈 것이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오래도록 사랑받는 클래식이고 싶다. 내가 나를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생 아닌가. 세월이 흐를수록 조금씩 깊어지되, 재미까지 잃어버리지는 말자. 잘 숙성된 클래식이 되자.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새로운 사람. 그리고 가능하다면 죽어서도 신나게 놀 수 있는 사람. 그 정도면 제법 멋진 로큰롤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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