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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1, 2026

생활화학제품 소비자의 안전한 일상 지킨다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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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28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와 가족,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28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와 가족,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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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용 | 위해성평가 연구원

2015년,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혹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화학제품 위해성평가 연구를 함께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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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미세먼지와 나노물질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위해성을 연구하고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 전화 한통이 내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놓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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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아프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가습기에 넣어 사용하는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시장에 나왔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았으며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이니 당연히 안전하겠지’라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우리 사회는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깨달았다.

그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당시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기관에서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평가하고,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항균·살균·소독 기능을 위해 쓰이는 ‘살생물물질’과 이를 이용한 제품의 안전 관리가 내 주된 업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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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GPT)에 “이 기사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생성해주세요”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GPT)에 “이 기사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생성해주세요”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제품에는 생각보다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 살균제, 섬유제품, 필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제품에 사용된 화학물질이 사람에게 얼마나 노출되는지, 어떤 유해성이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문제가 있는 제품은 시장에 나오기 전에 걸러낼 수 있도록 기준과 제도를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이 일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안전기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시험 자료를 검토하고,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찾아본다. 제품에 어떤 물질을 어느 농도까지 허용할지, 어떤 정보를 표시하게 할지, 기업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안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지를 놓고 연구자와 정부 담당자, 기업 관계자가 오랜 시간 논의한다. 때로는 제품에 들어갈 문장 하나, 숫자 하나를 정하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기준이 만들어졌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물질과 새로운 제품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항균’ ‘살균’ ‘99.9% 제거’처럼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표현도 계속 생겨난다. 그 주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인지, 소비자가 실제보다 더 안전하거나 효과적인 제품으로 오해하지는 않을지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의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트에서 세정제를 고르거나, 집에서 탈취제를 뿌리거나, 항균 기능이 있다는 제품을 쓸 때, 그 뒤에 어떤 안전기준과 평가 과정이 있는지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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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오늘도 화학물질의 이름과 수많은 독성 자료를 들여다보고, 노출량을 계산하고, 해외의 규정을 찾아보고, 기준을 만들고 또 고쳐 나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희생을 남겼다. 그 사건 이후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품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는 예전보다 많이 만들어지고 강화되었다. 하지만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 안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위험을 찾아내고, 과학적 근거를 쌓고, 현실에 맞게 제도를 계속 보완해 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2015년 미국에서 받은 한통의 전화로 시작된 인연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지금도 나는 생활 속 화학제품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연구한다. 내가 검토한 자료 하나, 내가 참여해 만든 기준 하나가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제품을 집어 들고 사용하는 평범한 일상. 그 평범함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잘 보이지 않는 위험을 찾아 마트에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화학제품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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