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우유로 셰레페!”…튀르키예에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음식의 세계②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으로 선정된 우를라의 베엔딕 아비. 조리된 다양한 튀르키예 가정식을 골라서 맛볼 수 있다.
에게해에서는 올리브오일이 주인공이다
이스탄불에서 메제를 먹으며 ‘튀르키예 음식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면, 우를라에 도착해서는 다시 생각을 고쳐야 했다.
이즈미르주 우를라의 튀르키예 가정식 레스토랑 베엔딕 아비(Beğendik Abi)에서는 고기보다 제철 채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올리브유에 익힌 아티초크와 포도잎으로 속재료를 감싼 사르마, 애호박과 가지에 속을 채운 돌마, 부드럽게 익힌 양고기까지 소박하지만 재료의 맛이 선명한 음식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음식의 이름은 몰라도 된다. 마음에 드는 것을 콕콕 고르면 접시에 담아준다. 미쉐린 가이드가 빕 구르망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뒷마당에 올리브나무가 있는 이 식당에서는 라벨도 붙이지 않은 올리브오일과 병에 담은 아티초크도 팔고 있었다. 음식과 재료의 거리가 가까웠다. 이런 풍경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미쉐린 가이드 역시 우를라를 비옥한 포도밭과 농산물을 품은 지역으로 설명하면서, 이곳의 토양과 기후가 지역 음식에 영감을 준다고 소개한다. 1ℓ 대용량만 판매하는 터라 ‘맛집’의 올리브오일을 사 오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데니즐리 차믈르크 지역에 자리한 디 엠포리아 호텔의 조식. 카이막과 벌꿀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아침 식탁에 튀르키예가 있다
길거나 짧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유난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갈비에 된장찌개라거나,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 말이다. 튀르키예 현지 가이드 규벤씨에게 외국 가면 생각나는 튀르키예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빵, 올리브, 치즈 그리고 홍차가 먹고 싶어요.”
호텔 조식에 치즈는 기본으로 다섯 가지 이상은 제공됐다. 이즈미르 캐노피 바이 힐튼 보몬티의 치즈 섹션.
뭔가 대단한 ‘솔푸드’를 기대했는데, 예상외로 소박한 대답에 조금 맥이 빠졌다. 하지만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건 며칠 동안 마주한 호텔 ‘조식’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튀르키예 음식문화를 이해하기 가장 쉬운 곳은 호텔 조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튀르키예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를 일컫는 카흐발트(kahvaltı)는 치즈·올리브·토마토·오이·빵·잼·달걀 등을 여러 접시에 펼쳐놓고 함께 먹는 형태가 대표적이고, 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텔에서 접한 조식 역시 ‘하루 중 가장 푸짐하게 먹는 끼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성이 어마어마했다. 호텔의 규모와 상관없이 치즈와 올리브는 다섯 손가락을 넘길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나왔다. 요거트도 기본 세 종류가 넘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카이막도 빼놓을 수 없다. 우유의 지방을 굳혀 크림처럼 만든 카이막은 보통 꿀과 함께 먹는데, 두 군데 호텔에서는 아예 벌집 한 판을 내걸어두고 있었다.
요거트, 치즈뿐만 아니라 올리브에 진심인 아침 상을 내놓았던 릭소소 페라 이스탄불 호텔의 조식.
케밥은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외식 메뉴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숯불에 구워내거나 고기를 양념에 재워두는 등 과정 자체가 집에서 하기는 번거로운 탓이다. 규벤씨는 대표적인 가정식으로 렌틸콩 수프를 꼽았다. 지역별로 익숙한 채소를 넣어 끓이기도 한다. 우를라에서는 당근을 비롯한 뿌리채소가 듬뿍 들어간 렌틸콩 수프를 먹었는데, 지독한 감기도 금세 떨칠 수 있을 것 같이 푸근하고 든든한 맛이었다.
지역에서 재배되는 채소를 듬뿍 넣어 끓인 베엔딕 아비의 렌틸콩 수프. 대표적인 가정식이다.
튀르키예라면 ‘터키시 딜라이트’라 불리는 로쿰이나 바클라바 등 극강의 단맛을 자랑하는 디저트를 빼놓을 수 없다. 반면 주식에서 단맛이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케밥이나 라마준, 코코레치처럼 매콤한 향신료가 들어가는 요리도 있지만, 대부분의 요리는 슴슴했다. ‘메인 요리’로 아무 양념도 끼얹지 않은 생선구이가 드레싱도 뿌리지 않은 루콜라와 함께 나왔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먹다 보니 그 심심한 맛이 또 익숙해졌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에게해 음식은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사용하고 채소를 부드럽게 익힌 요리가 많았다. 규벤씨는 “고기를 많이 먹는 동쪽 지역에 비해 에게해 지역인 서쪽 사람들이 생선도 즐겨 먹으며 더 건강하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디저트 라쿰과 바클라바. 극강의 단맛을 자랑한다. 하지만 디저트 외 식사에서는 단맛을 찾기 힘들었다.
‘사자의 우유’ 라키에 도전?
튀르키예 여행을 준비하면서 1970년대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순수 박물관>을 봤다.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 원작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극중 남자 주인공 케말은 내내 라키를 마시는데, 프랑스 유학파인 약혼녀 시벨은 와인만 마셨다. 술 취향조차 다른 두 사람의 엔딩이 좋지 않음을 예감했다면, 지나친 술꾼 위주의 판단인 걸까.
라키는 포도에서 얻은 증류주에 아니스 씨앗의 향을 입혀 다시 증류하는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증류주다. 투명한 라키에 물을 섞으면 아니스 성분 때문에 술이 뽀얗게 변한다. 이 우윳빛 외관 때문에 라키에는 ‘사자의 우유(Aslan sütü)’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니스 특유의 향은 비누나 방향제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개성이 강하다. 그 향의 장벽을 넘어서면 고기와 생선 요리를 먹고 남은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쾌감을 즐길 수 있다. 라키는 차가운 물을 섞어 마시는데, 보통 1:1의 비율로 섞는다고 한다. 튀르키에 관광청은 멜론과 흰 치즈와 잘 어울린다고 추천한다.
투명한 라키에 물을 섞으면 우윳빛으로 변한다(사진 오른쪽). 기리틀리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였던 농어. 소스나 강한 양념 없이 본연의 맛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
규벤씨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튀르키예 와인도 꽤 괜찮다”고 전했다. 실제로 튀르키예의 와인 역사는 놀랄 만큼 오래됐다. 튀르키예 관광청은 아나톨리아에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의 역사를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히타이트와 프리기아 등 고대 아나톨리아 문명에서 포도주 문화가 발전했고, 서부 아나톨리아에서는 고대 그리스 세계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우를라·에게해 지역, 카파도키아, 트라키아, 보즈자아다, 메소포타미아 등이 주요 와인 산지로 꼽힌다.
시린제 마을의 과일 와인. 시음 인심이 좋으니, 마셔보고 골라도 된다.
이즈미르 셀추크에서 약 8㎞ 떨어진 산간 마을로, 포도밭과 과수원이 함께 발달한 시린제 마을은 과일을 발효해 만든 와인으로 유명하다. 딸기, 체리, 오디 등 다양한 과일로 만들어 일반적인 드라이 와인보다 달콤하고 향이 선명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시음 인심이 후하니 직접 맛을 보고 고르면 된다.
데니즐리 지역에서 ‘파묵칼레’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을 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파묵칼레 와인은 해발 750~850m의 고원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만들며, 토착 품종과 시라즈·메를로·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국제 품종을 함께 다룬다고 한다.
건배는 “셰레페(Şerefe)”라고 외치면 된다.
데니즐리의 카사 비앙카 호텔에 있는 쾨즈 오작바시(Koz Ocakbası)의 1인분 과일 디저트. 한 가족이 먹어도 될 만큼 푸짐하다.
테이블 치운다는 건, 어서 가라는 뜻?
튀르키예에서 며칠간 식사를 하며 낯설었던 것은 음식보다 식탁을 정리하는 타이밍이었다. 정찬 코스요리가 아님에도, 음식이 새로 나올 때마다 앞에 놓인 접시와 커트러리를 치우고 새것으로 바꿔주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빈 접시를 치우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는 신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튀르키예에서는 다음 음식을 맞이하기 위한 식탁 정리로 받아들이면 된다.
규벤씨는 “세계적으로 중국 음식 다음으로 튀르키예를 꼽을 정도로 음식의 종류가 많다”며 튀르키예 사람들이야말로 ‘먹는 것에 진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오래된 전쟁과 이동의 역사에서 찾았다. “예전에는 전쟁에 한 번 나가면 먼 길을 떠나야 했고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잘 먹어두는 것이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처럼 음식을 넉넉히 준비하고 함께 나누는 습관은 튀르키예의 역사와 생활문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운 옥수수와 군밤을 파는 풍경이 어쩐지 익숙하다.
튀르키예의 음식문화에서 ‘함께 만들어 함께 먹는’ 전통도 빼놓을 수 없다. 결혼식이나 종교 행사 때 거대한 솥에 밀과 고기를 넣어 푹 끓여 만드는 케슈케크(keşkek)가 대표적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든 뒤 손님들에게 나눠 먹는 이 전통은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공동체를 묶는 행위라는 점에서, 튀르키예의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정서는 식탁에서 쉽게 드러난다. 규벤 씨는 “튀르키예 사람들이 손님을 초대하면 배가 불러 더는 먹지 못하겠다고 할 때까지 음식을 낸다”고 말했다. 차와 커피를 권하는 일에도 단순한 음료 대접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물처럼 마시는 차(çay)를 내놓을 때도 환대는 계속된다. 잔이 조금만 비어도 다시 차를 따라준다. 여기서 팁 하나. 차를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찻숟가락을 잔 위에 가로로 올려놓으면 된다고 한다.
튀르키예의 풍성한 식탁에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고 환대를 표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음식을 넉넉히 내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에서 한국과 튀르키예의 닮은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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