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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10, 2026

인간이 멸종한다면, 누가 우리를 애도할까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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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사(NASA)의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 개념도. 2004년 지구를 떠나 15년간 화성을 누볐다. 신간 ‘슬픈 행성’에서 저자들은 오퍼튜니티의 이야기로 존재의 소멸과 멸종이 주는 슬픔에 대해 운을 뗀다. 나사 누리집
미국 나사(NASA)의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 개념도. 2004년 지구를 떠나 15년간 화성을 누볐다. 신간 ‘슬픈 행성’에서 저자들은 오퍼튜니티의 이야기로 존재의 소멸과 멸종이 주는 슬픔에 대해 운을 뗀다. 나사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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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먼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불가해한 슬픔에 사로잡힌 일이 있는가. 그 슬픔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몰라 그저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가. 슬픔은 어쩌면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는 별 지구를 위한 회한일 수 있고, 인간의 욕망을 위해 우주로 나아갔던 떠돌이 개 라이카와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의 소멸에 대한 애도일 수 있다. 우리 인류의 유일한 집인 “창백한 푸른 점”이 “광막한 우주적 어둠 속에 놓인 고독한 점 하나에 불과”(칼 세이건)함을 인식한 데서 오는 외로움의 표현일 수 있고, 그저 “언젠가 다가올 소멸을 무력하게 기다리고 있는 우주 자체”의 멜랑콜리일 수 있다. 어쨌거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우주에서는 아무도 당신의 울음을 듣지 못한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홍보 문구인 “우주에서는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를 비튼 위의 문장은 신간 ‘슬픈 행성’의 첫 챕터 이름이다. ‘생태 슬픔’이나 ‘기후 불안’, ‘솔라스탤지어’(환경이 변하면서 느끼는 상실감) 등 기후위기 시대에 기민한 이들이 겪는 슬픔의 증상들로부터 출발한 질문은 이 별에 사는 인류가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비애감에 가닿는다. 슬픔에 관한 한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행성적 슬픔이라는 이 기묘한 느낌 자체가, 애초에 이 행성이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지표인 걸까?” “인간 멸종 뒤에 남아 우리를 애도해 줄 존재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다시 강조하지만, 우주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울음을 듣지 못한다. 우리를 위해 울어 줄 존재는 없다. 어쩌면 슬픔은 그 간극에서 올지 모른다는 게 사유의 실마리다.

미국 진보적 사회과학과 대륙철학의 오랜 거점인 뉴욕 뉴스쿨에서 각각 비평이론과 철학을 연구하는 저자 도미닉 페트먼과 유진 새커가 함께 집필한 이 책은 소재도, 글을 꾸려가는 방식도 독창적이다. 저자들은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느끼는 이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화성 탐사 로봇이 그랬듯 고샅고샅 탐사한다. 두 사람이 뉴스쿨에서 함께 진행해 온 동명의 강의에서 출발한 책은 16개의 ‘시퀀스’ 아래 2~3쪽짜리 짧은 에세이 189꼭지를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임박한 파국 앞에서 표출되는 우리의 정동을 “선형적이고 총체적인 논변 하나”로 담아내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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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쪽의 적지 않은 분량에는 니체와 투르게네프, 바이런, 에밀 시오랑과 데이빗 보위부터 ‘삼체’의 작가 류츠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문학과 예술, 철학 텍스트가 스쳐 가지만 결코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별을 둘러싼 가스(기체)와 먼지만큼이나 가볍고 유동적이다. 책 자체가 슬픔을 둘러싼 거대한 연쇄 질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저자들은 결론을 유보하고 거듭 묻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 비애에 가장 민감한 것일까?” “우리가 운 좋게 케플러-442b(1100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지구보다 거주 가능 지수가 높은 행성)에서 태어났다면 좀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왜 나는 계속 울고 있는 걸까?”

슬픈 행성 l 도미닉 페트먼·유진 새커 지음, 해도연 옮김, 문학수첩, 3만원
슬픈 행성 l 도미닉 페트먼·유진 새커 지음, 해도연 옮김, 문학수첩, 3만원

질문들 앞에서 독자는 적어도 이 우주적이고 실존적인 비애의 본질에 대해 몇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단기적으론 무력감에 가깝다. “지구는 이렇게나 푸른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요.” 보위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홍수·폭염·태풍 등 멸종의 징후가 닥쳐오기까지 ‘여기’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아름답고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집이자 보금자리”로 대할 수 있던 지구를 “에어비앤비에서 빌린 숙소처럼” 망가뜨렸다. 그 결과 인류는 짧은 유한성을 더욱 재촉하며 스스로를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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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심오하게는 종말 문학에서 반복된 “최후의 삶”, “마지막 인간”에 대한 인류의 불안이 뒤따른다. 1816년 발표된 바이런의 서사시 ‘어둠’에서 종말을 맞은 최후의 인간들은 “장롓불에 장작을 던지며” “광기와 불안의 눈으로” 하늘을 본다. “죽은 세상 위에 올려진 관덮개”를 본다. “인간이 사라진 행성 지구의 기묘하고 멜랑콜리한 감정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슬픔”, 그 슬픔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지구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 위기’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그저 우리 멸종의 위기일 뿐이라는 걸….

거기에서 ‘행성적 슬픔’의 또 다른 속성이 침출한다. 우리 인류는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의 소멸 앞에서도 슬픔을 느꼈지만, 우리가 멸종할 때엔 누구도 애도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멸종은 다른 어떤 생명체도 다가와서 슬퍼하지 않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멸종이 될 것”이라고 책은 예감한다. “우리의 장례식에는 찾아올 이가 없다. 그저 우연히 지켜보던 나무들과 벌레, 무심한 하늘만이 있을 뿐이다. AI(에이아이) 역사가가 찾아오기라도 할까?” 종말과 그로 인한 슬픔에 대해 적은 묵시록에서 저자들이 보여주는 이런 유머 감각은 책의 강력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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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난삽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많은 인용과 참조 속에서도 책이 방향성을 잃지 않은 것은 이 행성적 슬픔을 포스트휴머니즘(인간을 세상의 중심이자 기준으로 놓는 생각을 의심하는 철학적 흐름)의 관점에서 거리를 두고 분석하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 자체에 내재된 본질적인 슬픔”을 인정한다면, “생명력 없이 차갑고 무기력한 우주를 떠다니는 행성들”보다 “피가 치솟는 격정과 지나치게 예민한 영혼에게 방해”받는 우주를 그 자체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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