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지만 외롭긴 싫으니까”…10평 작업실서 피어난 8인 작가 연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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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작가란, 피땀 눈물 쏙 뽑는 창작의 고통을 오롯이 견디며 고독을 벗 삼아 불면의 밤을 보내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칸막이 없는 널찍한 테이블을 갖춘 공동작업실 ‘정글살롱’에선, 8명의 작가가 오늘도 ‘정’답게 모여 ‘글’을 쓴다. 아동문학, 시, 소설, 에세이, 교양서 등 장르도 다르고 생활리듬이나 작업방식도 저마다인 작가들은 2023년 문을 연 정글살롱에서 “고립되지 않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일하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흠뻑 누렸다.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를 담아 ‘혼자서 일하지만 외롭긴 싫으니까’(책장속북스)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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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살롱 이야기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집 안에 갇힌 채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느라 폐인이 되다시피 한 정문정 작가가 코앞에 닥친 원고 마감의 압박을 지렛대 삼아 집 근처 북카페로 탈출을 감행하면서 시작됐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북카페에 갈 때마다 천지혜 작가와 고수리 작가를 마주쳤는데, 각자 작업에 몰두하며 간간이 눈인사를 나누다 어느새 차 한잔하며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 짧은 대화가 일상의 활력이 되고, “외롭고 고된 글쓰기 노동을 한결 견딜 만하게”(정문정) 만들어줬다. 1년이 지나고 “친숙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와의 느슨한 친교가 주는 효능감”(고수리)을 맛본 작가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북카페가 강남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만 해도 외로운 거예요. 고민끝에 ‘내가 작업실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했고, 지혜님과 수리님에게 물으니 단박에 ‘좋다’고 했어요.”(정문정) 발품을 판 끝에 10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하고, 널찍한 테이블을 들였다. 이 테이블이 정글살롱의 핵심 자산인데, 평일엔 작업에 몰두한 작가들의 예민한 촉수와 팽팽한 신경줄을 넉넉히 품어주고 쉼표 같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열린 책상’이 되고, 주말엔 독서모임 등을 위해 정글살롱을 빌린 이들을 위한 ‘다용도 테이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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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셋이 쓰기엔 좀 넓은데다 임대료 부담도 덜 겸 소셜미디어에 함께할 작가를 찾는 공지를 올렸다. “프리랜서로 혼자 오래 일하며 지친 나머지 ‘어디든 좀 다른 곳으로 나 자신을 데려가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하던” 황유진 작가, “10년 동안 집에서 혼자 소설을 썼음에도 어느 날 문득 방 안에서 또 온종일 글을 써야 한다는 데 숨이 턱 막힌” 김세희 작가가 합류했다. “홀로 고립됐다는 느낌에 불현듯 사로잡혀 다른 작가들이 궁금하고 만나고 싶어진” 신효원 작가, “사람에 상처받아 혼자를 택했는데 웬일인지 꽉 막힌 채 작업이 좀처럼 풀리지 않던” 김지연 작가가 정글살롱 파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초등교사인 이현아 작가는 방학 때 잠깐 공간을 이용할 생각으로 찾았다가 한 식구가 됐다.
모이고 보니 모두가 ‘엄마’였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치여 정작 작가로서 본업을 놓치기 일쑤고,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아이와의 한정적인 대화가 소통의 전부나 다름없는 엄마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어른스러운 소통에 목말랐던 여성 작가 8명이 정글살롱에 모였다.
작가들은 자신의 일정과 생활리듬에 따라 자유롭게 정글살롱을 오간다. 매일 출근하듯 오는 이도 있고, 한달에 서너번 들르는 이도 있다. 이용 횟수에 상관없이 운영비는 매월 똑같이 나눠 낸다. 정글살롱이 ‘공간’이기보다 “서로 기대어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커뮤니티”인 까닭이다. 작가들이 부담하는 건 ‘이용료’가 아니라 ‘회비’다.
한달에 한번 독서모임이 열리면 8명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책 한권을 정해서 읽고 의견을 나누는 보통의 독서모임과 달리, 지난 한달간 읽은 책들 중에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각자 한권씩 골라 소개한다. “저마다 관심사와 취향이 다르니까 혼자는 안 읽었을 법한 책들을 다른 작가들을 통해 알게 되고, 그게 작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정문정 작가는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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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일하던 작가들이 함께하면 또 어떤 장점이 있을까. 천지혜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르면 꼭 다른 작가들에게 들려준다. “작가들이 재밌을 것 같다고 골라준 이야기를 발전시켜요. 제가 쓰는 장르소설은 대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작가님들의 반응을 자양분 삼아 이야기의 가지를 만들어나가죠.”
장편소설을 쓰는 김세희 작가는 동료들 덕분에 상대적으로 긴 작업 기간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을 벗었다. “나는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밖에서 보면 1~2년 동안 아무런 결과물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런 상황과 시선이 많이 괴로웠어요. 정글살롱에 오면 제가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 있어요. 그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황유진 작가는 닫힌 문을 열고 한발짝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스스로 늘 한계를 짓곤 했어요. 저처럼 에세이를 쓰던 작가들이 소설을 쓰고 동화도 쓴다는 말을 들으면 공연히 부아가 났죠. ‘나는 그런 거 못 해, 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러다 정글살롱에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작가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요즘은 동시를 쓰고 있어요. 우리는 혼자일 때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본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 쌓은 벽에 갇혔을 때 동료들이 밖에서 똑똑 두드리며 ‘너 괜찮니?’, ‘잘 있니?’ 물어봐 주면 ‘저기 나가는 문이 있구나’ 알게 되죠. 그러니 저한테 정글살롱은 ‘용기’인 셈이에요.” 아동문학 분야 도전을 고민하던 이현아 작가 역시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분투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보고 ‘여기서 함께한다면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성공적인 첫걸음을 뗐다.
내향적이고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일수록 변화와 깨달음이 컸다. 신효원 작가는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함께 간다는 느낌을 주는 공동체가 내게도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지극히 내향적이라 사람들과 섞이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던” 김세희 작가는 “지나고 보니 내향적인 사람에게 ‘느슨한 연결’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김지연 작가는 정글살롱을 “작가들의 자조 모임”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목표와 성장을 계속 지켜보면서 그걸 함께 해낼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여럿이 함께하는데, 얼굴 붉힐 일은 없었을까? 예를 들면, 나보다 글 잘 쓰고 유명하고 잘나가는 동료를 보며 은근히 질투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정문정 작가는 “누구는 진도를 쭉쭉 빼는데 나는 한번 발동 걸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깨작깨작 몇 페이지 못 쓰는 것 같아 속상한 경우가 간혹 있지만, 서로 장르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물이나 성과를 곧장 비교하긴 어렵다”며 “책을 낸 후에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의 성공 비결’을 묻는 분들이 많은데, 겪어보니 비슷한 사람들보다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황유진 작가는 심지어 “이전에 책 많이 내고 북토크 자주 하고 강연도 하는 작가들에게 막연히 갖고 있던 부러움과 질투 비슷한 감정이 정글살롱에 와서 스르르 사라졌다”는데, “얼마나 치열하게 쓰는지, 강연 한번 하려고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두 눈으로 보고 나니 대단하다,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나아가 이런 경험을 통해 “공동체 생활에는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속도가 얼마인지 아는 게 중요해요. 옆 사람이 아무리 자기 속도로 달려간다고 해도 내 속도가 거기에 맞지 않으면 나는 당연히 걸려서 넘어지거든요. 남들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고 해서 덩달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휘청거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했을 때 일상과 창작을 균형 있게 지속해나갈 수 있는가’ 계속 점검하고 돌아보려고 해요.”
정글살롱의 생활반장(공식 직함은 부운영장)인 고수리 작가는 지난 3년간 “문을 닫지 않고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 같은, 몸에 밴 습관 실수를 그때그때 기분 나쁘지 않게 지적함으로써 해묵은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법을 익혔다. 성공하는 커뮤니티가 갖춰야 할 핵심 스킬이다.

정글살롱엔 위계가 없다.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며 존중한다. 더욱 중요한 건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는 태도”인데, “상대를 평가하거나 가르치거나 훈계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고수리 작가는 설명한다. 진심 어린 존중이 있는 커뮤니티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공격받거나 상처받을까 봐 눈치 보고 위축되는 일 없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단, 건강한 눈치는 좀 필요한데, 신효원 작가는 이를 ‘다정한 민감함’이라고 부른다. “작가들은 작업에 몰두하면 아무래도 민감하고 뾰족해지기도 하거든요. 서로에게 관심을 갖되 상대방의 상태를 민감하게 알아채서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거나 적절한 거리를 두는 지혜가 필요해요.”

정글살롱처럼 느슨한 연결과 따뜻한 연대로 외로움과 고립의 시대를 건너고픈 이들에게 정문정 작가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끼리 독서모임부터 시작해보라”고 독려한다. “자발적으로 모이는 경험에 중독되기 시작하면 언젠가 좀더 큰일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글살롱의 파란 문을 여는 열쇠는 결국 ‘용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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