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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2, 2026

[주말의 취향]벚꽃처럼 피는 비눗방울, 조개무늬 그리는 기계…기술과 우연이 완성한 ‘자연 이후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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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시티 아트스페이스에 전시된 A.A.무라카미의 ‘뉴 스프링’.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파라다이스시티 아트스페이스에 전시된 A.A.무라카미의 ‘뉴 스프링’.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주말의 취향]벚꽃처럼 피는 비눗방울, 조개무늬 그리는 기계…기술과 우연이 완성한 ‘자연 이후의 자연’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이 6m가 넘는 하얀 나무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부드럽게 휘어진 24개 가지 끝에서 꽃망울처럼 비눗방울이 천천히 부풀어 오릅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방울은 한두 번 통통 튀기도 하고, 서로 포개지기도 합니다. 손을 대면 톡 터져 안개만 피어오릅니다. 아티스트 듀오 A.A.무라카미의 ‘뉴 스프링(New Spring)’입니다. 기계가 쉼 없이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지만, 어느 방울도 같은 방식으로 생겨나고 사라지진 않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와 데이미언 허스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곳곳에 펼쳐 놓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아트스페이스에서 개막한 A.A.무라카미의 한국 첫 개인전 ‘뉴 네이처(New Nature)’입니다.

A.A.무라카미는 일본 출신 아즈사 무라카미와 영국 출신 알렉산더 그로브스로 이뤄진 부부 작가 듀오입니다. 그로브스는 순수미술을, 무라카미는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을 설명하는 핵심어는 ‘에페머럴 테크(Ephemeral Tech)’입니다. ‘에페머럴’은 잠깐 존재하다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두 작가는 안개와 비눗방울, 플라스마처럼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물질에 직접 개발한 기술을 결합해 자연처럼 움직이는 현상을 만듭니다.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기술이 작품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자연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했습니다. “기술은 막후에 있고, 관객은 예술만 경험하고 갔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A.A.무라카미의  ‘비욘드 더 호라이즌’.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A.A.무라카미의 ‘비욘드 더 호라이즌’.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A.A.무라카미의  ‘비욘드 더 호라이즌’.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A.A.무라카미의 ‘비욘드 더 호라이즌’.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전시 주제는 ‘자연 이후의 자연(Nature after Nature)’입니다. ‘뉴 스프링’은 일본의 벚꽃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입니다. 벚꽃이 절정에 이른 뒤 곧 흩어지듯, 탐스럽게 맺힌 방울도 이내 사라집니다. 이러한 ‘덧없음’의 미학에는 두 사람이 2020년 일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 가까이서 접한 자연관도 배어 있습니다. 이 찰나의 장면 뒤에는 집요한 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방울이 곧바로 터지지 않고 바닥에서 잠시 머무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작가들은 수많은 실험으로 비눗물의 탄성을 조절하고 방울과 궁합이 맞는 카펫을 골랐습니다. 그래도 방울이 떨어지는 방향과 서로 달라붙는 모양, 터지는 순간까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전시장의 분위기는 고요합니다. ‘비욘드 더 호라이즌(Beyond the Horizon)’에서 은은한 달빛을 받은 듯한 자갈밭 위로 안개를 품은 거대한 비눗방울이 떠오릅니다. 빛을 머금은 방울이 허공을 건너다 터지면 구름처럼 흩어집니다. 그로브스는 이 공간을 밤의 고요한 정원에 비유했습니다. 장치는 같은 움직임을 되풀이하지만 공기의 흐름에 따라 방울의 모양과 궤적은 매번 달라져 초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A.A.무라카미의  ‘머드 페인팅: 천 겹의 위장 시리즈’.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A.A.무라카미의 ‘머드 페인팅: 천 겹의 위장 시리즈’.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A.A.무라카미의  ‘머드 페인팅: 천 겹의 위장 시리즈’.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A.A.무라카미의 ‘머드 페인팅: 천 겹의 위장 시리즈’.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이어지는 공간은 붉은빛으로 가득한데요. 바닥에는 진흙이 넓게 깔려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머드 페인팅: 천 겹의 위장 시리즈’가 펼쳐진 공간입니다. 출발점은 두 사람이 된장국을 먹다 눈여겨본 바지락 껍질이었습니다. 같은 종인데도 하나하나 다른 무늬가 어떻게 생기는지 파고든 이들은 껍질의 성장 원리를 생물학적 알고리즘으로 해석해 컴퓨터 코드로 옮겼습니다.

전시장 중앙의 자율형 페인팅 머신은 이 코드를 따라 화폭 위를 움직이며 진흙을 섞어 만든 물감으로 패턴을 한 겹씩 쌓습니다. 조개껍질의 무늬가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원리를 기계의 움직임으로 옮긴 것입니다. 아즈사는 이를 기계가 온전히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의 개입과 온기가 더해져 완성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의 ‘새로운 자연’은 단순히 기계로 재현한 자연이라기보다 기술이 마련한 조건 안에서 물질과 공기, 우연이 함께 완성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각 작품이 방 하나를 통째로 채우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변화하는 공간 안에 머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로브스는 “이미 수많은 시간을 스크린에 빼앗기고 있다”며 화면 밖에서도 그만큼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전시는 2027년 2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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