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흘러야 일상이 흐른다…막힌 배관 뚫는 5년차 배관공 [6411의 목소리]

광고

황종태 | 배관공
5년차 배관공이다. 물이 안 나오거나 갑자기 적게 나오는 곳, 싱크대와 세면대 배관이 막히거나 수전에서 물이 새는 곳, 겨울철 계량기가 동파되거나 배관이 언 곳 등 사람들이 곤란을 겪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배관 일은 흔히 더럽고 힘든 일로 여겨진다. 실제로 하수구를 석션기로 뚫다 보면 냄새도 심하고, 오물도 튀고, 옷에 기름때도 묻는다. 이번 여름 같은 폭염 속에서 배관을 뚫는 일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에어컨도 환기구도 없는, 바람 한점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작업하다 보면 5분 만에 작업복 전체가 땀범벅이 된다. 겨울에는 영하 20도의 야외에서 스팀 해빙기로 수도관을 한시간 넘게 녹여낸 적도 있다. 땅바닥 아래 얼어붙은 계량기를 수리하느라 연립주택 바닥에 거꾸로 엎드려 씨름할 때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광고
하지만 배관 내시경으로 막힌 원인을 찾는 일은 보람차다. 분당 수천번 회전하는 플렉스샤프트 체인을 넣어 굳은 기름 덩어리를 제거한 뒤 물이 쑥 빠져나갈 때면 내 속부터 시원해진다. 고객들도 기뻐한다. 어느 집에서는 물이 나오자 엄마와 두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만세를 부른 적도 있다. 신혼여행으로 집을 일주일간 비웠던 한 부부는 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을 내 손에 쥐여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일은 주로 ‘숨고’(숨은 고수) 같은 플랫폼으로 구한다. 고객이 필요한 서비스를 올리면 여러 사업자가 견적을 보내고, 고객은 가격과 프로필, 평점과 리뷰를 비교해 한 사람을 선택한다. 매장을 얻거나 전단지를 돌리지 않아도 일감을 구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견적을 보낼 때마다 비용이 든다. 고객이 내 견적을 클릭하는 순간, 수도 수리나 교체는 건당 2200원 정도, 배관 막힘은 4400원 정도가 내 캐시에서 차감된다. 10명의 배관공이 견적을 보내도 선택받는 사람은 1명뿐이니, 고객이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는 일을 얻지 못한 채 수수료만 내야 한다. 수입의 15~20% 정도를 플랫폼 수수료로 지출하는데, 최근에는 비용이 10%나 올랐다. 플랫폼이 독점적 지위를 가질수록 수수료는 더 올라갈 것이고, 그 부담은 결국 이용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광고
광고
견적비만 빠져나가고 일감을 얻지 못하는 날에는 공원이나 카페에서 유튜브로 다른 배관공의 작업 영상을 보거나 관심 분야를 공부한다. 초보 시절엔 온종일 견적을 넣고도 하루 한두건의 일감을 얻기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단골도 생기고 숙련도도 높아져 하루 2~3건 정도 작업한다. 이렇게라도 꾸준히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
물론 속상한 일도 있다. 세면대 수전과 팝업을 교체하느라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일했는데, 작업 중 바닥에 쇠 공구를 놓았다는 이유로 공사비를 주지 않으려던 고객이 있었다. 타일에 상처 하나 없이 작업을 마쳤는데도 불만이 이어져, 결국 “돈 안 받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허탈하게 돌아섰다. 고급 아파트에서 작업하던 언젠가는 청소 장비를 든 노동자와 공구통을 든 내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적이 있었다. 한 주민이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타려다 말고 맞은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였다. 한동안 마음이 씁쓸했다.
광고
그렇다고 내 일을 초라하게 여기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작업복에 묻은 먼지와 기름때는 오늘 하루 내가 일했다는 흔적이다. 하루라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밥을 해 먹고, 씻고, 화장실을 사용하는 기본적인 일상조차 어려워진다. 배관은 평소 건물 속에 숨어 있을 때는 아무도 그 존재를 신경 쓰지 않지만, 물이 나오지 않거나 빠지지 않을 때 상상 이상의 불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 고충을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대가를 받는 일은 가치 있다.
수전을 교체하고 나온 헌 수전의 묵직한 구리 덩어리들은 차 뒷자리에 모아두었다가 길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께 드리곤 한다. 할머니는 손수레 가득 폐지를 모으는 것보다 수전 하나가 더 값지다며 고마워하신다. 가끔 빵과 커피를 쥐여주시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내가 가진 기술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30년 가까이 정장을 입고 회계일을 하며 숫자 하나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러나 인생 2막에서 선택한 배관 일은 육체적으로 고될지언정 내적으로 만족도가 높다. 막힌 곳을 뚫어 물이 흐를 때 나는 통쾌하고, 난감해하던 이들은 안심한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내 삶은 충분하다.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