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40) '세계 보건 사령탑'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

말라리아 연구자에서 코로나19 방역 지휘자로…WHO 첫 아프리카 출신 수장
중국 편향 시비·티그라이 내전 논란 속 두 번째 임기…재정위기 돌파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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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61)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제기구 수장 가운데 한 명이 됐다.
그는 2020년 3월 11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을 '팬데믹'으로 규정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3년여 동안 코로나19 대응의 전면에 서서 국가 간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의 모습은 팬데믹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그러나 세계 방역을 지휘한 그에게 찬사만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초기 대응 과정에서 중국 정부에 지나치게 우호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WHO의 늑장 대응론이 불거질 때마다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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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가운데)이 지난 5월 31일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 환자 치료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테워드로스는 1965년 당시 에티오피아 영토였던 아스마라에서 태어났다. 아스마라는 1993년 독립한 에리트레아의 수도가 됐다.
그의 집안은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 뿌리를 둔 티그라이계다.
티그라이인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약 6%에 불과하지만,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이 1991년 군사정권 붕괴 이후 집권연합의 핵심 세력으로 2018년까지 중앙정치를 주도했다.
테워드로스는 훗날 TPLF가 주도한 집권연합 정부에서 보건장관과 외교장관을 지냈다. 이런 정치적 배경은 그의 성장 기반이 됐지만, 내전이 벌어진 뒤에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의 불씨가 됐다.
그가 보건 전문가의 길을 택한 데는 어린 시절 서너 살이던 남동생을 잃은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남동생이 어떤 병을 앓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홍역 같은 예방 가능한 질병이었을 것이라며,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회고했다.
그는 이 경험을 누구나 형편과 거주지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WHO 사무총장에 오른 뒤 '보편적 건강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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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이 2020년 3월 11일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포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스마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테워드로스는 1986년 에티오피아 보건부에 들어가 공중보건 전문가로 일했다. 이후 영국 런던대에서 감염병 면역학 석사학위를, 노팅엄대에서 지역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에서는 티그라이 지역의 댐 건설이 말라리아 전파에 미치는 영향과 방제 방안을 연구했다. 질병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환경과 생활 여건, 보건행정이 맞물린 공중보건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그는 티그라이주 보건국장을 거쳐 2005년 TPLF가 주도한 에티오피아 집권연합 정부의 보건장관에 오르며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했다.
보건장관으로 재직한 7년 동안 농촌과 빈곤층을 위한 기초 보건체계 확충에 힘썼다. 전국에 수만 명의 보건지도원을 배치하고 보건소를 늘려 예방접종과 모자보건, 말라리아·결핵 치료 서비스를 일선 마을로 확대했다.
그 결과 에티오피아의 말라리아·에이즈 및 모자보건 분야 주요 지표가 개선됐고, 테워드로스는 국제 보건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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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이 2020년 7월 제네바 WHO 본부에서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외교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테워드로스는 국제무대에서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2017년 5월 WHO 사무총장에 선출돼 그해 7월 취임하면서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 WHO 수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모든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보편적 건강보장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2018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에볼라가 유행했을 때는 무장세력의 공격이 이어지는 분쟁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해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시험한 것은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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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왼쪽)이 2022년 2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왕이 당시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WHO는 2020년 1월 30일 코로나19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테워드로스는 각국에 "검사하고, 검사하고, 또 검사하라"고 촉구하며 방역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신이 개발된 뒤에는 저소득 국가도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제 공동구매 체계인 코백스를 통한 공평한 배분을 추진했다. 백신을 선점한 부유한 국가들을 향해서는 '백신 민족주의'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팬데믹 초기에 중국의 방역 대응과 정보 공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발언은 중국 편향 논란을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WHO가 중국 중심적으로 움직인다며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탈퇴를 통보했다.
테워드로스는 WHO가 중국의 통제를 받는다는 주장을 부인하며 코로나19를 정치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맞섰다.
이 논란은 회원국에 자료 공개를 강제하거나 제재할 권한이 없는 WHO의 구조적 한계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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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WHO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을 표현한 PG [연합뉴스 자료 일러스트]
테워드로스가 코로나19 대응을 이끄는 동안 에티오피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졌다.
2020년 11월 아비 아머드 총리가 이끄는 연방정부와 TPLF 사이에 시작된 전쟁은 2022년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 이어졌다. 테워드로스도 티그라이계인 데다 TPLF 주도의 집권연합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이력으로 정치적 공방에 휘말렸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그가 WHO 수장의 지위를 이용해 TPLF를 지원한다고 주장했고, 테워드로스는 어느 편도 들지 않았으며 오직 평화를 원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봉쇄된 티그라이 주민들이 의약품과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을 거듭 비판했다.
국제사회가 티그라이의 참상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그 배경에 인종적 편견이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인도주의적 호소라는 평가와 국제기구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잃었다는 비판을 동시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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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의 재선이 결정된 2022년 5월 제75차 세계보건총회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테워드로스는 2022년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5년 임기를 시작했다.
WHO는 이듬해 5월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미래의 팬데믹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국제협정 마련에 나섰다.
WHO 회원국들은 3년여의 협상 끝에 2025년 5월 의료 물자와 백신의 공평한 공급, 국가 간 정보 공유와 협력 강화를 골자로 한 팬데믹 협정을 채택했다. 그러나 병원체 공유와 그에 따른 이익 배분을 규정하는 핵심 부속서 협상이 끝나지 않아 서명과 비준 절차는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WHO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도 험난해졌다.
최대 공여국이던 미국이 2026년 1월 공식 탈퇴하면서 WHO는 예산과 사업을 축소하고 전체 인력의 약 4분의 1을 줄여야 하는 재정 위기를 맞았다.
전쟁으로 의료진과 병원이 공격받고 기후변화와 신종 감염병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WHO는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테워드로스는 2027년 마지막 임기를 마친다.
그에 대한 평가는 코로나19 대응의 공과뿐만 아니라 팬데믹의 교훈을 지속 가능한 국제협력 체제로 정착시키고, 분열된 세계에서 WHO의 신뢰와 역량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parksj@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03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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