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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7, 2026

[정리뉴스]접근금지 명령도, 스마트워치도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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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3월1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3월1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가정폭력, 스토킹 살인 등 관계성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997년 가정폭력처벌법 제정 이후 수차례 법과 제도가 정비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족이나 연인 사이 일”이라는 이유로 초기 개입이 지체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가해자를 신속히 떼어놓고 피해자를 지키겠다며 만든 현행 보호조치 체계의 무엇이 문제길래 이같은 범죄가 반복되는 걸까요. 이번 송파 존속살해·납치 사건과 제주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 드러난 보호 체계의 공백을 중심으로 짚어봤습니다.

현행법은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처벌법의 임시조치와 스토킹처벌법의 잠정조치가 대표적입니다. 두 조치 모두 사후 처벌이 아닌 ‘사전 예방’을 목표로 설계된 만큼 골격은 비슷합니다.

법원의 판단이 이뤄지기 전 신속하게 개입하는 게 핵심입니다. 두 조치 모두 피해자·동거인·가족의 주거 등 100m 이내 접근금지, 피해자·동거인·가족에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그리고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을 포함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가정폭력 임시조치는 ‘피해자 등의 주거로부터 퇴거’가 가능하다는 점과 잠정조치엔 있는 ‘가해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 불가하다는 점입니다.

이혼소송 중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중반 남성 A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혼소송 중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중반 남성 A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번 ‘송파 존속 살해·아내 납치’, ‘제주 스토킹 살해’ 사건 등에서 현행 보호조치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먼저 지속기간의 한계가 문제로 꼽힙니다. 현행법상 가정폭력 임시조치는 최장 6개월, 스토킹 잠정조치는 최장 9개월까지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혼 소송이나 형사재판은 보통 1~2년을 훌쩍 넘깁니다.

이경하 변호사는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 1~2년은 금방 지나가는데, 피해자 입장에서 6개월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라고 지적합니다. 지난해 9월 세종시에서는 스토킹 혐의로 재판을 받던 70대 남성이 잠정조치 만료 직후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하는 참변이 벌어졌습니다. 가해자와의 분리조치가 최장 10년인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물론이고 최대 2년인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의 보호 기간은 턱없이 짧습니다.

이러한 임시·잠정조치를 새로 신청하고 허가받는 사이 공백이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조치가 만료되기 전 연장 결정을 받지 못하면 소급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기간이 지나버리면 법원에 처음부터 다시 신청해야 하고, 법원은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합니다.

‘송파 존속 살해·아내 납치’ 사건이 단적인 예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임시조치는 지난달 30일 끝났지만, 경찰의 재신청은 엿새 뒤인 6일에 이뤄졌습니다. 법원이 “기존 처분이 만료돼 원점에서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결정을 내린 것은 범행(12일) 다음 날인 13일이었습니다. 며칠간의 행정적 공백이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신당역스토킹살인사건 1주기인 2023년 9월14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신당역스토킹살인사건 1주기인 2023년 9월14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가해자에 대한 감시 체계가 부족한 점은 더 치명적입니다. 가정폭력 임시조치에는 스토킹과 달리 가해자 전자장치 부착 처분이 없습니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다가와도 피해자가 스스로 알아채고 신고하지 않는 한 적발하기 어렵습니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는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가해자가 급습할 경우 스마트워치를 눌러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다. 가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제거한 뒤 살해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도 살해당한 피해자는 17명에 달합니다.

이는 수사 현장에서도 체감하는 한계입니다. 한 경찰은 “현행 임시조치엔 스토킹 가해자에게만 전자장치 부착할 수 있게 돼있어 아예 법으로 전자장치 부착을 의무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경찰도 “스마트워치 실효성은 모르겠다”며 “피의자에게 전자장치 부착을 할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하자’는 취지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3월16일 서울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스토킹 범죄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3월16일 서울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스토킹 범죄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문가들은 보호 체계의 패러다임을 ‘피해자 방어’에서 ‘가해자 통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가정폭력 임시조치에도 가해자 전자장치 부착을 도입하고, 보호 기간을 최소 1~2년 이상으로 늘리는 법 개정입니다. 최근 경찰청도 임시조치 전자장치 부착 도입과 가정폭력 가해자 대응 수준을 스토킹 수준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과 호주 일부 주에서 시행 중인 제도인 ‘의무체포제’도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을 때 경찰관의 재량이나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기대지 않고, 가해자를 현장에서 즉각 체포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통제하는 실효성 있는 보호 체계가 마련될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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