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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10, 2026

아버지의 귀환, ‘말의 규율’ 다시 세울까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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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 마시모 레칼카티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2016)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 마시모 레칼카티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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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인문산책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가장 당혹스러운 대목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 이야기다. 책 제목이 오디세우스 이야기인데, 앞부분은 텔레마코스가 떠난 여행 이야기로 수놓아졌다. 성질 급하면 건너뛰어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안 된다. 그런데, 왜 호메로스는 이 이야기를 맨 앞에 놓았을까? 신화적 관점에서 보면 ‘숨기는 자’라는 뜻의 칼립소에 사로잡힌 오디세우스를 다시 귀향하게 하려면 제의적 여행이 필요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 있다.

신화 세계로 들어가 뒤흔들어야 인간의 이야기가 다시 펼쳐진다. 이런 해석은 오디세우스를 고향 이타카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파이아케스족의 스케리아섬을 분노한 포세이돈이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 버린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열린 신화 세계는 반드시 닫혀야 하는 법이다. 이타카로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복수전을 펼치는 텔레마코스 이야기는 쉽게 이해된다. 그야말로 불초소생이라, 아비보다 나은 자식은 없는 법이다. 그러면 자식은 언제 아비보다 나을 수 있나? 자식이 아비가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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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코스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궁금하다면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이 큰 도움이 된다. 지은이는 라캉의 말을 빌려 오늘의 시대는 아버지가 ‘증발’되었다고 진단한다.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위기이며, 개인적이며 공동체적 차원에서 이상적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이 크게 저하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전제 아래 지은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네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오이디푸스는 세대 간의 분쟁과 투쟁을 상징하며, 아버지를 아들의 자유에 대한 갈증을 억압하는 훼방꾼으로 여긴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충동의 비이성적 힘을 찬양한다. 주체, 책임감, 계율, 거세, 상실은 아버지처럼 추방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나르키소스는 아이가 우상이 되어버리고 부자지간의 투쟁과 분쟁은 사라졌다고 본다. 부모의 역할과 과제는 자식들의 경험에서 장애물, 금지된 것 따위를 제외하는 것이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귀환과 정의 실현을 요구한다. 구혼자 무리의 배은망덕한 쾌락과 파괴된 집을 대체하는 ‘또 다른 것’을 바라는 욕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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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모든 문명의 기초는 즉각적인 쾌락과 그것의 자아 충족적 기능의 포기를 종용하는 ‘말의 계율’이라 주장한다. 말의 계율이 통하지 않는 삶은 전적으로 동물적인, 두서없는, 즉각적인 쾌락에 몰두하는, 본능이 지배하는 삶일 뿐이다. 아비가 없는 틈을 타 궁정을 지배한 구혼자 무리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텔레마코스는 무엇을 바라겠는가? 아버지가 돌아와 ‘말의 계율’이 확립되길 간절히 소망했을 터다.

귀환한 아버지는 과연 “치명적 쾌락의 파괴적 혼돈”을 겪는 난장판을 평정하고 말의 규율을 세울 수 있을까? 걷잡을 수없는 쾌락 충동에 제동을 걸고 사회계약과 공동체의 삶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 아버지 증발의 시대에 젊은 세대는 비록 나르키소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혔지만, 무의식적으로는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를 안고 있을 터다. 텔레마코스는 정의가 실현된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돈과 권력이라는 칼립소에 사로잡혀 귀향을 포기하였는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는 절망할 도리밖에 없으니, 아비가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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