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5·18 백래시를 멈춰라
지난 24일 방영된 SBS 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주인공 ‘계수정’(김지원)과 동료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피해자를 찾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 518번 버스에 탑승한다. 유튜브 캡처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최소한 합의된 기억인 줄 알았습니다. 근래 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를 놓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5·18 민주화운동은 50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논쟁하고 다퉈야 하는 대상이 된 듯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아팠던 역사를 바라보는 일에도 합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점선면은 5·18이 마주한 백래시를 이야기해 봅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후유증, 끝나지 않았다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6화는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를 소재로 다룹니다. 극에는 5·18 당시 머리에 총알 파편이 박힌 오상범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요. 오상범은 부상 후유증으로 40년이 넘게 통증과 환각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헬기사격으로 형을 잃기도 했고요. 그 죄책감과 트라우마 때문인지, 환각으로 생전 형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고통은 아직도 우리 현실 중에 존재합니다. 5·18 유공자들은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 부상 후유증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제대로 직업활동을 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그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5·18 유공자들도 다수입니다. 2011년 경향신문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5·18 유공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 과정에서 입은 상처와 고문 후유증, 생활고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줄 제도적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 유공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 할 판이다.’
기사에 나온 유공자 김모씨는 5·18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목에 계엄군의 총을 맞았습니다. 척추 마비라는 큰 부상을 입었고요. 진통제와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웠습니다. <닥터X> 속 오상범도 평생 엄청난 양의 진통제를 복용해 온 것으로 나옵니다. 제초제를 마시고, 목을 매서… 5·18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 고통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지난 24일 방영된 SBS 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에 등장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오상범’(오른쪽·하성광)은 머리에 총알이 박힌 탓에 5·18 때 죽은 형의 환상을 본다. 유튜브 캡처
그뿐인가요. 5·18 당시 계엄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뒤늦게나마 목소리를 낸 이들도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2024년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시리즈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다뤘어요. 1980년 5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잡혀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 증언한 김선옥씨는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김씨를 시작으로 다른 피해자들도 나서게 됐고요.
그렇게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인터뷰에 나선 이남순씨는 2023년 12월이 돼서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서 피해를 인정받았습니다. 이씨는 “이렇게 되는 데 40년이 넘게 걸렸다. 참 오래도 걸렸다”고 했어요. 이씨의 피해가 인정된 게 고작 3년도 안 된 일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완전히 마무리된 역사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겁니다.
5·18 민주화운동, 아직도 합의된 기억이 되지 못했다
이런 현실과는 관계 없이, 5·18을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려오는 요즘입니다. <닥터X> 방영을 중단해 달라는 청원인은 “5·18은 여야의 시각차 등 일부 부문에서 정치적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며 “좌우의 견해도 일정 부분 다른 엄연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주장했어요. 주연 배우 김지원씨 SNS에는 악플이 달리고 있습니다.
광주 시민들이 거대한 국가폭력을 겪었고, 그로 인한 피해를 여전히 목격할 수 있는데도 5·18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합의된 역사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겁니다. 1995년 5·18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1997년에는 매해 5월 18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는데도요.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이 미래통합당이던 2020년, 당을 이끌던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울먹였을 때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말이 미래통합당에서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같은 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요. 정치가 작동했다면 여야가 대승적으로 원포인트 개헌에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기회는 물건너갔고, 안타깝게도 이후 정치 여건은 더욱 악화되기만 했어요.
혹자는 말합니다. 이제 5·18이라는 과거에 그만 사로잡혀야 한다고요. 광주도 피해자 서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요. 전향적인 말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5·18 민주화운동이 1980년 그해부터 지금까지 한순간이라도 백래시 없이 온전히 받아들여진 때가 있었는지를 끝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잊을 만하면 5·18 폭동설, 북한군 개입설이 고개를 들고 ‘추념을 강요한다’는 반발이 나와요.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책임이 큰 정치권 인물은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일 겁니다. 이 의원은 <닥터X>와 관련해서 “5·18이 특정 진영이나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그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나온 말들을 보면 과연 5·18을 받아들일 의지는 있었던 것인지, 특정 지역의 전유를 문제삼는 것이 앞뒤가 맞는 것인지를 묻게 됩니다.
2020년, 당 원내대표로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광주에 갔던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5·18 유공자를 공개하라는 주장은 5·18을 폄훼하는 진영의 대표적 요구인데요. 이진숙 의원이 명단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데 주 의원이 동조한 겁니다.
5·18은 언제가 돼야 이론의 여지 없는, 흔들리지 않는 공고한 역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도 모두가 한뜻으로 기억하는 가치나 역사를 하나쯤은 가져봤으면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충분히 그렇게 될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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