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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16, 2026

백인이 어느날 아침 깨어났다, 흑인으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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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계 영국 작가 모신 하미드(55)가 2024년 아랍 최대 문학 축제인 ‘에미레이트 항공 문학 축제’에서 대담하고 있다. 최근 국내 소개된 소설 ‘라스트 화이트맨’은 200쪽이 넘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왕은철 옮김, 민음사)도 그렇다. “절반만 읽기보다 두번 읽어주길 바란다”는 게 하미드의 희망이다. 앞서 국내 소개된 다른 2종의 소설은 절판된 상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파키스탄계 영국 작가 모신 하미드(55)가 2024년 아랍 최대 문학 축제인 ‘에미레이트 항공 문학 축제’에서 대담하고 있다. 최근 국내 소개된 소설 ‘라스트 화이트맨’은 200쪽이 넘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왕은철 옮김, 민음사)도 그렇다. “절반만 읽기보다 두번 읽어주길 바란다”는 게 하미드의 희망이다. 앞서 국내 소개된 다른 2종의 소설은 절판된 상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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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책을 주목하긴 쉽지 않을 듯하다. 띠지 과잉의 출판 시장에서 두른 게 없는데다, ‘모신 하미드’라는 이름을 설령 알아도 넘기기 십상이다. 그가 2000년 데뷔 이후 펴낸 5종의 소설 단행본 가운데 가장 호명이 덜 된 작품이다. 전작들만치 부커상 내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른 것도 아니고, 원작이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지도 않았다. 그의 네번째 소설 ‘서쪽으로’(2017)는 “모두가 (본질적으로) 이민자”라는 함의로, 그해 등장해 반이민 정책을 몰아붙이던 트럼프에 때마침 맞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째 되는 지금, 차별과 배격은 더 만연하여 더 무감해질 판이다. 그래서일까. 모신 하미드의 최신작 ‘라스트 화이트맨’(2022)을 추천한 한 서점 주인의 절박함이 소설책에 걸칠 법한 그 어떤 띠지보다 각별해 보인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동예루살렘의 한 서점이 이스라엘 치안 당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며 국제 뉴스가 됐다. 수백권 책을 압수당한 ‘교육서점’(Educational Bookshop)이다. 서점 주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마흐무드 무나(44, 팔레스타인 출신)는 구금에 이어 벌금, 가택연금, 서점 출입 금지까지 당했다. 딸이 보는 앞에서 붙잡혀갔다. 말이 씨라도 된 걸까. 이스라엘 침공 다음달인 2023년 11월 영국 비평 저널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무나는 사태의 참상을 에둘러 전하며 “딸들과 얘기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굿나잇 키스를 했다. 평범한 밤 아빠라면 누구나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특권인가 생각한다”고 썼었다. 그 글 말미에 “사랑, 상실, 변화, 정체성에 대한 시의적절한 책”으로 “예루살렘의 서점 주인이 강력 추천”한다며 ‘호명’한 작품이 이번 주 국내 출간된 하미드의 ‘라스트 화이트맨’, 우리말로 옮기자니 ‘마지막 백인’이다.

라스트 화이트맨 l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문학수첩, 1만6000원
라스트 화이트맨 l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문학수첩, 1만6000원

“어느 아침, 백인 남자 앤더스는 제 피부가 누가 봐도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사실을 깨달았다”며 소설은 운을 뗀다. 도발적이지만 상투적이기도 하다. 소설 ‘변신’에서의 카프카적 우화를 연상시키거니와, 문학성을 떠나 사회 문제를 투사한 환상 문학의 세계는 실로 광활해져 왔다. 다만 이 작품은 앤더스의 ‘역지사지’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앤더스는 앤더스임에도 어떻게 앤더스일 수 없는가’는 앤더스의 변화가 아니라, 앤더스를 바라보는 집단과 사회의 생리적 변질로 추인된다. “내가 누구인지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로 하여금 인종과 정체성이 권력이 되고, 피지배자의 상실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절망적 세계 원리를 하미드식 너스레로 풀자면, “외국어로 말하려고 하면 원래 있었던 유머 감각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2024년 8월 덴마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하미드는 “인종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에게선 읽을 수 없는, 우리가 개발한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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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책을 읽고, 그나마 어머니의 미소를 물려받은 백인 청년이 앤더스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도둑질당했다”는 “분노”와 “서슬 퍼런 격정”도 잠시, 주변의 적대에 삽시간 노출된다. 그를 위협하는 백인 부류에 제 지인이 끼어 있다는 정도가 반전이나 되겠는가. 앤더스에 이어 또 다른 백인들이 하나둘 갈색 피부로 바뀐다. 전염병처럼 퍼진다. 자고 일어나 변한 자는 움츠리고 스스로를 가두고, 변치 않은 자는 더 결집하고 군림하여 숨은 자의 숨조차 끊으려 한다. 늘어나는 유색인에 대한 지레 공포가 곧 적의이기도 하다. “전쟁과 역병의 시대를 버텨낸 조상들처럼 자신 역시 그런 운명을 타고”난, “선택받은 소수”로서.

하미드라는 장르를 통해, 무감한 현실은 선연해진다. 작중 피부색이 변해 자살한 이가 앤더스의 관점으로 인식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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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총을 쐈다. (…) 사건 직후의 현장은 마치 가택 침입자를 막다가 벌어진 정당방위 상황 같았다. 바닥에 쓰러진 어두운 피부의 시신이 바로 그 침입자이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제 총에 맞고 숨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집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 백인이 흑인을 쏜 것은 맞지만, 사수와 피격자는 동일 인물이었다….

그러한들 “선택받은 소수”들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변한 자들에겐 “이 나라 전체가 거대한 애도에 잠긴 듯” 유색인이 대다수가 된다. 소설은 과연 어디까지 밀어붙이려는 걸까. 제목처럼 ‘마지막 백인’의 자취까지다. 바로 앤더스의 아버지다. 병들어 죽어가는 그 마지막 백인과 화해하며 영면의 길을 돌보는 앤더스, 한편으로 피부색이 변했으나 끝내 변하지 않는 장모의 ‘백인성’을 또한 견디고 돌보는 앤더스와 그의 아내 우나를 통해 인종·부족주의는 ‘돌봄’의 세계관과 대비된다. 무엇보다 그 둘이 낳아 기르는 딸의 현명함을 보건대, 피부색을 넘어선 미래 세대의 진정한 ‘변화’ 가능성을 상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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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이 오래 남는 대목이 있다. 앤더스를 건사한 여인 우나는 그즈음 쌍둥이 오빠를 잃었다. 그 오빠와 열렬히 사랑했다 수년 전 헤어진 남성을 몇년 만에 만난다. 그는 “결혼했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며, 옛사랑을 잃었고, 피부색이 변했”다며, “이중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큰 의미였는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피부색은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한다.

동성애자로서 감당한 삶 또한 행간에 품었을 저 청아한 인식조차, 그러나 본래 유색인이었던 이들의 것과 어울리긴 어렵다. 소설 후반에 이르러, 본래 유색인이 여전히 백인 출신들을 구별하고, 그들이 “누구였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비칠 때, 그제야 이 소설에서 유색인의 이야기가 여전히, 대부분 삭제되어 있다는 것을 섬뜩하게 감각한다. 한계일까, 의도일까?

모신 하미드는 1971년 파키스탄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가 다시 프린스턴 대학으로 진학했고, 몇년 뒤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공부했다. 뉴욕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며 완성한 데뷔 소설이 ‘나방 연기’다. 생활 반경뿐만 아니라 영국 국적도 있으므로, 그는 영락없는 서방인이자 파키스탄 사람이다. 대표작 ‘주저하는 근본주의자’(2007)를 상기시킨다. 파키스탄계 미국 엘리트 청년이 ‘9·11 테러’ 이후 달라진 시선과 처우에 자신의 정체성을 재인식하는데, 작품 주인공 ‘찬게즈’만의 서사일 리는 없다.

하미드 역시 9·11 테러 이후 “어떤 상실감에 휩싸였다”고 고백한다. 따져보니 자신이 영위하던 “백인성의 일부”였더라는 자각은 결국 “(인종 위계적)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이 시스템의 공모자”로까지 자신을 새로 인식시켰다고 한다. ‘라스트 화이트맨’의 정서·사상적 배경이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무엇을, 어떻게, 잃었는가’에 관한 좀 더 긴급한 질문이라면, ‘라스트 화이트맨’은 ‘무엇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가’까지 궁구하는 수십년치 질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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