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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29, 2026

[이스라엘 총선 현장을 가다]총 대신 ‘카메라’ 든 이스라엘인…20년째 서안지구 검문소 인권침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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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총선 현장을 가다]총 대신 ‘카메라’ 든 이스라엘인…20년째 서안지구 검문소 인권침해 기록

팔레스타인 아이들 사진 찍어주며
“너희는 투명인간이 아니야” 연대
“한국 등 세계, 이스라엘 압박해야”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여기 있네, 네 사진.” 27일(현지시간) 오후 4시쯤 예루살렘 북쪽 칼란디야 검문소를 지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로 향하는 길. 이스라엘 여성 타마르 플라이슈만(79·사진)이 봉지에 담아온 사진 뭉치를 뒤적이다 한 장을 골라 하밋(14)에게 건넸다. 팔레스타인 소년 하밋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하밋은 타마르가 건넨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타마르에게 말했다. “또 찍어주세요.”

타마르가 칼란디야에 나타나면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몰려든다. 타마르는 가방 한가득 가져온 테니스공을 나눠주면서 안부를 묻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20년. 그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청년이, 청년들은 장년이 됐다.

타마르는 이스라엘 인권단체 ‘마흐솜 워치’에서 활동한다. 이스라엘 여성들이 2001년 만든 이 단체는 서안지구 검문소 등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관찰·기록·고발해왔다.

기자는 타마르를 따라 칼란디야 검문소를 지나 라말라 방향으로 걸었다. 차량 검문소를 왼쪽으로 우회해 아랍계 주민들이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을 지나자 검문소 위를 가로지르는 교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다리를 건너면 라말라로 이어지는 출입구다. 교량에서 바라본 차량 검문소에서는 총을 멘 이스라엘 군인들이 출입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회전문을 지나자 줄지어 선 택시들이 보였다. 기사들은 타마르를 알아보고 반겼다. 타마르가 택시 기사 무사(60)에게 안부를 물었다. “헤브론 사건 이후로 별일 없었어?” 지난 23일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이스라엘군 2명이 숨지고, 팔레스타인 국적의 범인 2명이 사살됐다. 무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것보다 일이 너무 없어. 사람들이 택시를 안 타.”

칼란디야를 휘젓는 이 여성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케밥 노점상도, 택시 기사도, 열쇠고리를 파는 꼬마도 타마르를 친구처럼 반겼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달라며 그를 따랐다. 사진은 타마르가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건네는 시선이다. “너희는 투명인간이 아니야. 누군가 너희를 잊지 않고 보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그의 손길엔 아이들이 떠올리는 이스라엘인(주로 군인)의 이미지를 바꿔주려는 마음도 담겼다. 타마르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맞잡으면서 그들 삶에 닿는다고 생각한다. 그 손길에는 이스라엘인으로서 느끼는 죄책감, 이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책임감, 연대가 담겨 있다.

시작은 한 소년과의 인연이었다. 격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잡혀간 사건에서 재판 참관을 하던 타마르는 재판정에서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을 만났다. 평소 칼란디야를 오가며 만났던 소년 이브라힘이었다. 칼란디야 난민캠프에 사는 그의 가족은 예루살렘 재판정에 올 수 없었다. 타마르와 이브라힘의 시선이 마주쳤다. 타마르의 당혹감과 달리 이브라힘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립무원이던 이스라엘 재판정에서 아는 사람이 생긴 거야.”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브라힘의 얼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칼란디야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브라힘은 도로 충돌 방지대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징역 16개월을 살았다.

라말라 초입의 작은 마트에서 담배 두 갑과 사이다 한 캔을 산 타마르는 담뱃불을 붙였다. 푸른 눈의 아담(14)이 비스킷 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타마르는 아담이 학교에 낼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않는다 했다. 그들 곁에 다가갈수록 삶의 굴곡도 선명해진다. 타마르가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곱 살 때 만난 소년은 스무 살이 된 지금도 행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타마르에게 유대인 정체성은 죄책감의 원인이자 책임감의 원동력이다. 몇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이모는 열두 살 때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작업장으로 향하는 소녀들에게 문을 열어주던 독일군 병사는 매일 “견뎌야 해”라고 속삭였다. 소녀들은 이름 모를 그 병사를 모세의 유대식 표현인 ‘모셰’라고 불렀다.

타마르는 “팔레스타인에 권리를 주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했다. 사회주의자이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자신의 신념이 이스라엘에서 배척당하는 극소수라는 것도 안다. 이른 아침 투표장에 다녀왔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삶과는 무관한 선거였다. 투표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옥에나 가라지”라고 답했다.

검문소로 돌아가는 길, 세숫대야를 팔던 남성이 타마르를 보고 다가왔다.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별명)는 오늘 끝날 거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타마르는 이곳 모두가 같은 바람이라고 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해달라. 이스라엘의 미래는 세계에 달려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회전문으로 들어가려는 타마르의 이름을 멀리서 앳된 목소리가 불렀다. 쿠란 글귀를 적은 쪽지를 파는 나딘(12)이었다. “지난번에 주신 사진, 집에 액자로 걸었어요.” 타마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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