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건전지에 하얀 가루, 손에 닿았는데 괜찮나요…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2]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명사. 1. 전해액(電解液) 2. (제조사) 누액(leakage), 배터리 잔류물(battery residue), 배터리 백화(battery efflorescence), 결정체 구조 【예문】오래 놔둔 장난감을 볼 때마다 건전지 전해액투성이가 된 내부를 상상한다.
전해액¹ 성분이다. 건전지 내부에 있던 젤 형태의 전해액이 건전지 밖으로 스며 나오면서 고체로 굳어진 것이다. 버석하게 마른 하얀색 곰팡이나 솜털처럼 보인다. 쉽게 부서져 가루처럼 휘날리거나 배터리 장착 부위 구석구석에 끼어 있거나 한다. 시큼한 냄새²가 나기도 한다. 여하튼 존재의 모든 순간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제조사에서는 흔히 건전지 누액(漏液·leakage)이라고 표현하는데, 엄밀히 말해 누액은 전해액과 기타 화학 성분이 흘러나오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얗게 결정화된 것은 배터리 잔류물이나 배터리 백화라고 지칭한다. 결정체 구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를 건(乾) 자를 쓰는 주제에 어디서 액체가 새는 거야 - 싶다. 습식 전지와 달리 흐르는 액체로 된 전해액을 쓰지 않을 뿐이지, 젤이나 반죽의 형태로 만들어 쓴다.
건전지 내부 압력이 과도하게 높아지거나 케이스가 부식되거나 하면 전해액이 건전지 외부로 스며 나오게 되는데 이때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종류에 따라 누액 과정 및 결정화 성분이 달라진다.
우선 망간 전지의 전해액은 염화아연(ZnCl₂)과 염화암모늄(NH₄Cl)을 녹여 풀처럼 걸쭉한 페이스트 형태로 만든 것이다. 오래 사용하면 건전지의 아연 케이스가 염화아연에 의해 부식된다. 느리지만 확실한 부식은 케이스에 손상을 입히고 결국 구멍 내기에 이른다. 새어 나온 전해액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수분과 반응해 탄산아연(ZnCO₃), 수산화염화아연(Zn(OH)Cl) 등을 만들어낸다. 전지 재료로 쓰이는 이산화망간(MnO₂) 검은색 가루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널리 쓰는 알카라인 전지는 알칼리성 용매인 수산화칼륨(KOH)을 녹인 전해액으로 사용한다. 수산화칼륨 자체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강알칼리성 물질로 인체에 해롭지만, 누출된 이후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와 결합해 무해한 탄산칼륨(K₂CO₃)과 물(H₂O)로 변한다. 식품첨가물로도 쓰이는 탄산칼륨 자체는 위험하지 않지만, 누액은 탄산칼륨 외에도 수산화칼륨 잔여물이나 전지 내부의 여러 화합물(염)과 첨가제가 포함된 혼합물로 본다. 아무래도 씻는 게 낫겠다.
누액이 곰팡이처럼 ‘자라나’ 있는 이유는 실제로 결정이 자라기 때문이다. 전해액이 누출되면 물은 공기 중으로 증발하고 전해질의 농도는 점점 증가한다. 과포화 상태에서 석출된 결정 씨앗을 중심으로 결정이 만들어진다. 이 결정이 모세관 역할을 해 전해액이 다시 빨려 올라오고, 증발하고, 다시 결정이 덧붙여 자라게 된다.
망간 전지의 누액이 필연적인 케이스 부식 때문이라면, 알카라인 전지의 누액은 내부 압력 상승 때문이다. 음극 아연 분말이 전해액과 반응하며 수소가스(H₂)를 만들어내는데 이 수소 가스가 압력 상승의 주범이다. 특히 전지 수명이 다 되어가거나 일회용 전지를 억지로 충전하거나 전지 내부의 손상(단락)이 발생했을 경우엔 수소가스가 더 맹렬히 생성된다.
알카라인 전지에서의 누액은 최악의 사고를 막아주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있는 대로 혐오해놓고 갑자기 미담을 꺼내 드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앞서 말한 대로 알카라인 전지에서는 필연적으로 수소가스가 생성돼, 쓰면 쓸수록 내부 압력이 높아진다. 단단히 밀봉한 금속 케이스가 있다. 내부 압력이 계속 커진다. 해소되지 않는 압력의 결말은 하나로 귀결된다. 폭발이다. 이거 원 무서워서 전지 쓸 수 있겠나.
그래서 대부분의 전지에는 벤트(vent)가 있다. 우선 벤트는 ① 통풍구·환기구 ② 상의 아랫부분의 뒤트임 ③ (감정·분통을) 터트리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④ 새·물고기·파충류 등의 항문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다. 전지의 벤트는 일부러 구조적으로 약하게 만든 부분이다. 내부 압력이 일정 이상으로 상승하면, 벤트가 파열되거나 절개되는 등 변형을 통해 외부로 가스를 배출한다. 일종의 안전밸브인 셈이다. 전지 자체가 작지만 치명적인 폭발을 일으키는 걸 방지하고 ‘안전하게 망가지는 쪽’으로 유도하는 설계다.
문제는 가스만 나오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폐를 포기한 배터리 케이스는 가스와 함께 전해액도 배출한다. 그렇다. 누액이다. 그저 부글거리는 배를 진정시키려 방귀를 뀌었을 뿐인데 다른 것도 배출된 상황이다.
알칼리·망간 전지의 경우 누액이 발생한 건전지는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가전제품이나 장난감 내부에 쌓인 백화는 닦아낸다. 화합물로 인한 피부 자극을 예방하기 위해 장갑을 끼는 편이 좋다. 문제는 새 건전지로 갈아 끼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누액 잔여물을 제대로 닦아내려면 중화시켜야 한다. 알카라인 전해액과 누액은 염기성을 띠고 있으므로, 산성 용액으로 닦아내면 된다. 식초나 레몬즙을 면봉에 묻혀 문지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말라붙은 자국도 버리는 칫솔을 이용하면 쉽게 지워진다. 망간 전지는 반대로 염기성 용액으로 닦아낸다. 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걸 쓰자.
접점부(스프링이나 금속판)가 부식됐거나 변색된 경우엔 식초로도 회생이 어렵다. 이 경우엔 맞닿는 부분을 사포로 살짝 갈아내거나, 심하게 부식된 스프링 끝부분을 니퍼로 잘라내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러고도 안되면? 접점부를 통째로 교체하거나, 삭아버린 케이블과 단자를 다시 납땜한다.³ 그러고도 안되면? 버리자. 당신은 할 만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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