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은 왜 세계 어디서나 같을까…금속 덩어리서 기본상수로 ‘재정의’

광고
마트에서 쌀 한 봉지를 집어 든다. 포장지에는 1㎏이라고 적혀 있다. 정육점에서는 삼겹살 600g을 달라고 하고, 공항에서는 수하물이 23㎏을 넘는지 저울에 올려본다. 우리는 숫자를 확인할 뿐 그 숫자가 맞는지까지 의심하지 않는다. 서울의 1㎏과 파리의 1㎏은 당연히 같다고 여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서울의 저울과 파리의 저울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 제조사도 다르고 만들어진 시기도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두 저울이 똑같이 1㎏을 가리킬까. 쌀이나 삼겹살이라면 몇 그램의 차이가 큰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금이나 의약품, 반도체 소재처럼 작은 오차가 큰돈과 안전 문제로 이어지는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격은 흥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양까지 매번 흥정해야 한다면 시장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적어도 ‘얼마나’에 대해서는 같은 숫자를 믿어야 한다. 1㎏은 단순한 질량의 단위가 아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약속이다.
광고
사람마다 다른 자를 쓰던 시대
인류가 처음부터 이런 약속을 공유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역사에서 길이와 무게의 기준은 지역마다 달랐다. 손가락과 발, 팔 길이를 단위로 삼았고 곡식을 담는 그릇이 부피의 기준이 되었다. 이름이 같은 단위도 도시마다 크기가 달랐다. 가까운 마을끼리 거래할 때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교역 범위가 넓어지며 혼란이 생겼다. 국경을 오가는 거래가 늘어날수록 모두가 함께 사용할 기준이 더욱 절실해졌다.
광고
광고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새로운 생각이 등장했다. 왕의 팔 길이나 어느 도시의 오래된 추 대신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프랑스혁명 시대에 태어난 미터법이 바로 그것이다. 길이뿐 아니라 질량도 자연을 기준으로 정하려 했다. 물을 이용해 누구나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준을 찾고자 했다.
자연을 기준으로 삼는 일 역시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물은 온도에 따라 밀도가 달라진다. 매번 정확한 조건을 맞춰 물의 무게를 재는 것도 번거로웠다. 결국 1799년 프랑스는 백금으로 1㎏짜리 기준물을 만들었다. 이른바 ‘기록보관소 킬로그램’이었다.
광고
19세기에 산업과 국제교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나라마다 제각각 정한 기준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1875년 여러 나라가 미터협약을 맺었고 1889년에는 세계가 함께 사용할 새로운 질량 기준이 정해졌다.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만든 작은 원통이었다. 지름과 높이가 각각 약 39㎜. 손바닥에도 가뿐하게 올라가는 이 조그만 금속 덩어리에 ‘국제킬로그램원기’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금속 덩어리
국제킬로그램원기는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국제도량형국의 금고에 보관됐다. 전세계의 1㎏은 이 물건의 질량으로 정의됐다. 이 원통이 정확히 1㎏인 이유는 측정해보니 1㎏이어서가 아니었다. 이 원통의 질량을 그냥 1㎏이라고 정했기 때문에 1㎏이었다.
각 나라는 국제원기를 기준으로 자국의 표준 ㎏을 만들었다. 그것을 다시 기준 삼아 더 많은 표준추를 만들고 저울을 교정했다. 기준은 국제도량형국에서 국가기관으로, 다시 산업현장으로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참 묘한 일이다. 동네 정육점의 저울에서 제약회사와 반도체 공장의 정밀저울까지 그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파리 근교 금고 속 작은 금속 원통 하나에서 만난다. 세계의 수많은 거래가 이 작은 물건과 연결돼 있었던 셈이다.
광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국제킬로그램원기와 여러 복제품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정밀하게 비교했더니 질량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차이는 수십 마이크로그램 정도에 불과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미미한 양이다.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면서 이 정도 차이를 따지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었다. 어느 쪽이 변했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국제원기가 가벼워졌을까, 복제품이 무거워졌을까, 아니면 모두 조금씩 달라진 것일까? 알 방법이 없었다. 국제킬로그램원기는 정의상 언제나 정확히 1㎏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자를 검사하는 마지막 자가 조금 늘어나거나 줄어든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것을 재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자는 무엇으로 검사할 것인가? 기준의 끝에 물건 하나를 놓아두는 방식에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금고에서 자연법칙으로
과학자들은 결국 그 물건을 기준에서 끌어내리기로 했다. 2018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새로운 정의가 채택됐고, 2019년 5월20일부터 ㎏은 더 이상 금속 원통의 질량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의 기본상수 가운데 하나인 플랑크상수(빛에너지를 빛의 주파수로 나눈 수치로, 언제 어디서든 같은 값을 갖는다)의 값을 정확히 정해놓고 거기에서 질량의 기준을 만들어낸다.
플랑크상수의 값은 6.62607015×10⁻³⁴줄·초(J·s)다. 숫자만 보면 물리학 교과서가 펼쳐진 기분이다. 하지만 이 숫자를 외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준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금속 원통은 아무리 조심해서 보관해도 변할 수 있다. 표면에 먼지가 붙을 수도 있고 닦는 과정에서 극미량이 떨어져나갈 수도 있다. 반면 자연법칙은 파리에서도 서울에서도 같다. 제대로 된 장비와 기술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같은 기준을 다시 구현할 수 있다.
그 일을 해내는 대표적인 장치가 키블저울이다. 원리는 복잡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물체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과 그것을 들어 올리는 전자기력을 아주 정밀하게 비교한다. 전기적 측정을 통해 플랑크상수와 질량을 연결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물건이 1㎏”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자연의 이 법칙에 따라 이렇게 측정한 것이 1㎏”이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물건에 매달려 있던 1㎏이 어디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연법칙으로 옮겨간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 체계 안에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키블저울을 개발해 ㎏을 구현하고 국제적인 비교 측정에 참여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의 질량표준은 여러 단계의 교정을 거쳐 산업현장의 저울과 이어진다. 내가 시장에서 사용하는 저울이 키블저울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저울의 정확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표준과 연결되고, 다시 세계의 측정체계와 이어진다. 이를 ‘측정 소급성’이라고 한다.
시장은 숫자를 믿고 움직인다
표준이라고 하면 지루한 규칙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표준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컨테이너의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부산에서 실은 화물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크레인이 그대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볼트와 너트의 규격이 맞으니 서로 다른 회사가 만든 부품을 같은 기계에 조립할 수 있다. 통신 규격이 같으니 다른 회사의 휴대전화끼리 통화할 수 있다.
질량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금을 사고팔고, 의약품의 성분을 배합하고, 화학물질을 거래하고, 초정밀 부품을 생산하려면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거래 상대방의 저울부터 의심해야 한다면 계약 하나를 맺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표준은 모두를 똑같게 만드는 규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안심하고 물건을 만들고 거래하기 위해 함께 정한 기준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숫자를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내가 산 금 1㎏이 당신이 판 금 1㎏과 같은 양이라는 믿음, 내가 주문한 10㎜짜리 부품이 지구 반대편 공장에서도 같은 10㎜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무너지면 가격표와 계약서도 힘을 잃는다.
서울에서 산 쌀 1㎏과 파리에서 산 쌀 1㎏이 같은 것은 자연이 저절로 보장해준 일이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더 정확한 기준을 만들고, 서로 비교하고, 그것을 함께 사용하기로 약속해온 결과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그 약속을 한 덩어리의 금속보다 더 오래가는 곳에 맡겼다. 자연법칙이다. 우리는 물건의 가격을 놓고는 얼마든지 흥정한다. 하지만 그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를 놓고는 흥정하지 않는다. 가격은 달라도 1㎏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의 숫자를 믿을 수 있어야 움직인다.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 관장 penguin1004@me.com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독일에 유학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책 ‘찬란한 멸종’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등을 썼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