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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5, 2026

[산업X파일] “밥은 직접 해야” 통념 깬 서른살 햇반, 미국인 식탁도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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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세상에. 금방 한 밥 같네~” 1996년 말 배우 김혜자는 전자레인지에 돌린 햇반 한 숟가락을 뜨며 이렇게 말했다. 햇반은 ‘밥은 집에서 짓는다’는 통념과 ‘집밥을 어떻게 사먹느냐’는 주부들의 죄책감을 깨고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경쟁 제품이 여럿 나온 지금도 즉석밥의 대명사로 통한다.

1·2인가구, 맞벌이 부부 증가와 함께 시장이 커지면서 작년까지 누적 판매량은 68억4000만개에 달한다. 햇반 브랜드 누적 매출은 올해 말 10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나 스마트폰 등에 비해 단가가 싼 소비재가 이만한 실적을 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기간 폭넓게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햇반. /뉴스1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햇반. /뉴스1

햇반이 올해로 출시 30주년을 맞았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1일 충북 진천 생산 공장인 CJ블로썸캠퍼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8년까지 햇반 연매출(소비자가 기준)을 1조5000억원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작년 매출은 1조1800억원, 판매량은 7억7100만개였다. 김숙진 식품마케팅실장 겸 한국사업본부장은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미국 시장을 꼽았다.

◇K찰진밥, 미국 식탁 공략한다

현재 햇반은 미국, 멕시코, 독일, 베트남 등 세계 60국에 진출해 있다. 2021년 전체 매출의 8% 수준이던 해외 비율이 작년 15%까지 늘었다. 작년에만 1억1600만개가 해외에서 팔렸는데, 이 가운데 미국이 1억500만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 판매량은 2021년 5500만개에서 4년 만에 거의 두 배로 올라온 것이다.

미국에서의 이름은 ‘비비고 스티키 화이트 라이스(bibigo Sticky White Rice). 코스트코, 월마트, 샘스클럽 같은 주요 매장마다 제품이 깔려 있다. CJ제일제당은 “볶음밥·김밥 같은 한식으로 즐기는 사람부터 치킨, 스테이크, 부리토, 맥앤치즈 등 미국식 메뉴와 함께 먹는 소비자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미국의 쌀 소비 시장은 작지 않다.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과 곁들여 밥을 먹는 가구가 많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쌀을 먹는 미국 소비자 비율은 2023년 37%에서 지난해 45%로 증가했다. 미국 즉석밥 시장 규모도 작년 1조5000억원에 달한다(시장조사기관 서카나). CJ제일제당은 “햇반 소비자 인종을 조사해보면 백인 67%, 아시아계 14%, 아프리카계 미국인 9% 등으로 아시아계에 국한돼 있지 않다”고 했다.

다만 현재 미국 즉석밥 주류 제품은 밥알이 서로 붙지 않고 흩어지는 장립종 쌀이다. 단립종으로 짓는 한국식 찰진 밥 햇반과는 식감이 다르다. 형태도 대부분 파우치로 전자레인지에 용기째 돌려 먹는 햇반과는 차이가 있다.

햇반은 미국의 이런 주류 제품과 차별화해 한국 밥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현재 햇반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1% 정도다. 미국 이름에 잘 달라 붙는다는 뜻의 ‘스티키’(sticky)를 넣은 점을 감안해, 미국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김, 고추장, 양푼, 주걱과 함께 구성한 마케팅용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햇반 백미 캠페인 영상. 샐러드볼 형태로 밥을 먹는 현지 문화를 반영하고(왼쪽), 한국계 미국 NFL 선수 카일러 머레이와도 협업했다(오른쪽). /CJ제일제당

미국에서 진행 중인 햇반 백미 캠페인 영상. 샐러드볼 형태로 밥을 먹는 현지 문화를 반영하고(왼쪽), 한국계 미국 NFL 선수 카일러 머레이와도 협업했다(오른쪽). /CJ제일제당

김 실장은 “미국 소비자가 햇반을 먹는 이유 중엔 한국식 식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는 것 같다”며 “(미국 제품과는 구분되는) 품종, 간편성, 호기심을 중심으로 사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쌀이 ‘건강한 음식’으로 통하고, K팝·K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한식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수요도 커지고 있다.

◇국내선 잡곡밥·건강밥으로 변신

햇반이 글로벌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는, 국내에서 백미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고민이 적잖게 반영돼 있다. 1997년 1인당 하루 280.6g에 달했던 쌀 소비량은 작년 147.7g까지 줄었다. 햇반 기본 제품 1개(210g)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이다. 햇반 백미도 10개 먹던 소비자가 20개를 먹는 식으로 확장은 되고 있지만 소비자 숫자 자체는 정체 상태라고 한다.

1996년 출시 당시 햇반. 사각형 용기를 사용하다가 2001년 한국의 밥그릇 모양을 반영해 둥근 용기로 바꿨다. /CJ제일제당

1996년 출시 당시 햇반. 사각형 용기를 사용하다가 2001년 한국의 밥그릇 모양을 반영해 둥근 용기로 바꿨다. /CJ제일제당

햇반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백미 대신 잡곡밥·건강밥으로 다각화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더 건강한 식사를 하려는 수요를 공략한 것이다. 건강 관리에 관심 많은 2030세대를 공략하는 동시에, 잡곡밥을 직접 집에서 해 먹는 50대 이상 세대를 새로운 소비자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그 결과 햇반 백미와 달리 잡곡밥 제품은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햇반 매출 중 잡곡밥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9년 10%대에서 지난해 30% 이상으로 올라왔다. 김 실장은 “앞으로 5년 안에 백미와 잡곡밥 비율이 비슷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양화 수준은 최근들어 더 높아지고 있다. 흑미밥·현미밥·잡곡밥 등에 이어 2024년엔 고단백·식이섬유를 더한 잡곡밥과 칼로리 부담을 낮춘 곤약밥을 내놨다. 소식(小食) 흐름에 맞춰 지난 6월엔 110g짜리 햇반도 내놨다. 오는 12월에는 신제품 ‘햇반 단백질 잡곡밥’도 출시할 예정이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의 오예진 수석연구원은 “다양한 식물성 단백질 소재를 쌀 모양으로 가공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단백쌀을 일반 잡곡에 섞어 계란 흰자 3개 이상의 단백질 함량을 구현했다.

◇9개월 상온 보관 핵심은 무균 공정

CJ제일제당은 햇반 30주년 기자간담회에 맞춰 진천 가공식품 공장도 공개했다. 2018년 본가동을 시작한 이 공장에서 6개 라인을 이용해 햇반 연 2억8000만개를 생산한다. 나머지는 부산 공장에서 만든다. 수출용 햇반도 이 2개 국내 공장에서 생산 중으로,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보고 해외 공장 생산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충북 진천 가공식품 공장의 햇반 생산 라인. /CJ제일제당

충북 진천 가공식품 공장의 햇반 생산 라인. /CJ제일제당

햇반 유통 기한은 상온 기준 9개월이다. 햇반 출시 초기엔 “이렇게 오래 상온 보관해도 돼?”라는 의심도 많았다고 한다. CJ 측은 “무균 기술을 통해 일반 밥보다 보관 기관을 대폭 늘렸다”고 했다. 햇반 용기에 담긴 쌀에 직접 스팀을 가하는 오픈 살균 기술, 쌀알 사이사이에 분포한 공기 방울을 제거해 고온 고압 스팀을 효과적으로 침투시키는 기술 등 다양한 기술도 적용했다.

공장에선 우선 당일 도정한 쌀을 씻고 불린 다음, 햇반 용기에 담는다. 이후 고온 고압 스팀으로 살균해 미생물을 제어한 후, 취반수를 넣고 높은 온도의 스팀에서 30분 이상 밥을 짓는다. 다 지어진 밥은 클린룸에서 용기 상부를 필름으로 밀봉 포장한다. 김동준 햇반생산팀장은 “내부를 반도체 공장 수준의 청결도로 관리하고 있고, 엑스레이부터 식중독균 검사까지 다양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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