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LH 전관 카르텔’ 주요 기획수사에 법원은 ‘무죄, 무죄, 무죄’…왜? [판결돋보기]
2023년 6월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과거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인 사건에서 법원이 최근 연달아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과도한 법 적용과 별건 수사 및 강제수사의 위법성을 짚으면서,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윤석열 말 한마디로 시작된 ‘사교육 카르텔’ 수사, 법원 “형사처벌은 문제 해결의 최후 수단”
윤석열 정부에서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며 벌인 사교육 강사와 현직 교사들 간 비리 혐의 사건에서 법원은 최근 관련자들에 무죄 판결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이재욱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유명 강사 현우진씨와 현직교사 2명 등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씨가 교사들에게 준 돈이 문항 거래의 대가로서, 청탁금지법상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적 거래라고 봤다. 현씨가 현직 교사들과 문제를 사고판 것이 ‘부도덕한 행위’가 될 순 있으나,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는 앞선 감사원의 판단을 전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3년 6월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은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며 사교육 시장의 부패 범죄에 엄단을 주문했다. 이후 교육부와 감사원은 자체 조사를 거쳐 수사기관에 고발을 의뢰했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사교육 강사와 전·현직 교사 등 126명을 입건해 이들 중 100여명을 검찰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현씨도 현직교사와 부당하게 문항거래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고 형사처벌은 문제 해결의 최후 수단”이라며 “공직자의 행위에 설령 부적절한 면이 있더라도 이를 모두 형사처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은 모든 경우를 예상해 입법될 수 없고, 형벌법규는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며 “형사처벌은 적법한 수사와 기소를 거쳐 무죄 추정과 엄격한 증명의 원칙에 따른 판결에 의해서만 부과될 수 있다”고 했다.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형사처벌을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원들까지 사망했던 LH 수사…대법서 무죄 확정
이른바 ‘전관 카르텔’을 엄단하겠다며 벌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입찰 담합 관련 사건에서도 최근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LH 용역 발주 관련 심사위원을 맡았던 공기업 직원 A씨와 B씨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2023년 검찰의 LH 입찰 담합 수사 과정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당시 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철근 누락으로 붕괴사고가 발생하자, 해당 사업을 맡았던 용역업체를 조사하다가 LH 전관들이 운영하는 용역 업체 간 담합 사실을 적발하고 이들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특정 입찰업체가 LH 용역 심사 과정에서 일부 심사위원들에 높은 점수를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준 정황을 포착해 A씨와 B씨 등을 입건해 수사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선 참고인 신분이었던 LH 전직 직원 2명이 자살해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법원은 검찰의 수사가 ‘별건’으로 위법했다고 보고 A씨·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당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용역업체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이들 용역 업체가 LH 심사위원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별건 뇌물 혐의에 대한 정황 증거들도 함께 압수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해당 증거들은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보고, 1심과 달리 A씨 등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검사는 해당 자료를 발견한 즉시 탐색을 중단하고 별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적법 절차를 거쳤어야 했는데도 별도 압수수색 영장 없이 자료를 확보·보관하고 나아가 뇌물공여 등 별개 범죄 수사에 활용했다”며 “이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훼손한 위법 행위”라고 했다.
‘공수처 1호 인지’ 경무관 사건, ‘핵심’ 뇌물 혐의는 무죄로 뒤집혀
공수처가 첫 인지 수사를 했던 전직 경찰 고위간부의 7억원대 뇌물 사건에서도 핵심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이승한)는 지난 25일 김모 전 경무관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뇌물죄는 무죄로 뒤집혀, 김 전 경무관 형량은 징역 10년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크게 낮아졌다.
공수처는 김 전 경무관이 사업가 A씨로부터 사건 알선을 대가로 7억원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인지해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공수처가 김씨의 핵심 혐의인 뇌물죄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씨와 A씨 사이 알선 합의의 존재에 관한 증명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없다”며 “단지 A씨가 김씨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손해를 입을 열려가 없다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정도만으로는 알선 뇌물 수수죄가 성립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뇌물 공여 의혹을 받은 A씨 휴대전화 증거능력도 무효가 됐다. 공수처는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포렌식 하면서, 이를 변호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포렌식 절차에서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아 위법하다면서도, 그 위법의 정도가 중대하지 않아 유죄 입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위법 수집 증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엄격하게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압수 절차에서 수사기관이 피압수자 등에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거나 절차를 위반해 수집된 전자정보의 동일성이 인정된다는 점만으로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적법절차 원칙 실현을 위해 마련된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셈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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