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굴팀, 튀르키예 유적서 2천년 전 ‘모자이크 바닥’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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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처음 철기를 본격적으로 쓴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17~12세기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오늘날 튀르키예의 땅인 아나톨리아에서 히타이트 문화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이 내륙 중심 도시 카이세리 근교의 퀼 테페란 유적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해부터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앙카라대와 함께 퀼테페 유적을 공동 조사한 결과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23~30년)의 건물터로 보이는 모자이크 바닥과 서로 겹치는 4개 문화층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29일 발표했다. 주로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나온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시대 모자이크 유구가 드러난 건 1948년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첫 사례라고 한다.
발굴조사를 벌인 곳은 유적 안 와르샤마 궁전터 동쪽 영역이다. 여기서 건물터 일부로 추정하는 모자이크 바닥 유구를 발견했다. 바닥 모자이크는 모서리 부분이 드러났다. 크기는 동서 163㎝, 남북 165㎝ 정도다. 유구 주변에도 관련 흔적이 확인돼 원래 규모는 현재 영역보다 훨씬 넓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건물터 바닥은 지면을 고른 뒤 깨진 돌과 고운 흙으로 기초를 만들었다. 그 기초 위에 작은 강자갈을 깐 다음 토기 조각과 석회 등으로 단단하게 다지며 마무리한 얼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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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과정에서는 헬레니즘시대에 해당하는 4개 문화층도 나와 당시 유적의 변화 과정과 공간 이용 양상을 파악할 단서도 확보했다. 각 문화층마다 건물터와 바닥, 벽체, 수로, 출입 시설 흔적이 중첩된 것으로 나타나 퀼테페 일대가 약 2천년 전 헬레니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유적의 조성 시기는 헬레니즘 초기 토기가 다수 출토된 점으로 미뤄 기원전 300년께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원 쪽은 “공법상 특징들을 통해 헬레니즘 건축기술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었다”며 “문화층 출토 유물과 유구의 변화 양상을 종합 분석하면, 유적의 헬레니즘시대 편년을 세우고 문화층 구분 기준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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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테페 유적은 고대 아나톨리아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기원전 3천 년께부터 로마시대까지 고대 도시 자취들이 켜켜이 남아있다. 히타이트 이전 카네시(네샤)왕국의 도읍이었고 청동기시대 아시리아 상인들의 활동 거점으로도 알려졌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2만 3,500여 점의 설형문자 점토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적 자체도 2014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으나 발굴된 영역은 전체의 약 3% 정도다. 기존 조사연구도 주로 청동기시대 문화를 규명하는 데 집중돼 후대 헬레니즘기 유적 형성·변화 과정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퀼테페 유적 발굴단장으로, 27일 방한한 피크리 쿨라코을루 앙카라대 교수는 “아나톨리아 중앙 내륙에서 모자이크 유적이 발견된 사례는 드물다”며 “이 지역에도 헬레니즘 시대의 도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첫 고고학적 증거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앞으로 앙카라대와 건축 분야·유적 디지털 복원 등으로 융복합 연구를 확대하고, 그 결과를 유적의 체계적 보존·정비와 전시·보존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내년 한국·튀르키예 수교 70돌을 맞아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퀼 테페 공동조사 성과를 소개하는 특별전도 열 예정이다. 연구원 쪽은 그동안 쌓은 조사성과들을 중심으로 고대 아나톨리아의 교역과 생활상을 기록한 점토문서(세계유산) 출품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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