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못따라갑니다, 3등합시다”…한국 얘기 아니라는데 [Book]

대개 모든 시험이나 시합은 1등 내지 금메달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주는 그렇지 않다. 동메달, 아니 3등만 차지해도 승자가 되는 기술 패권의 새로운 전장.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말이다.
‘국가의 미래’라는 상금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 이 글로벌 경주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 역사상 가장 치열한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기술 패권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신간 ‘초번영’은 이에 대해 답한다.
근래 몇 해 동안 인간은 세 번의 AI 충격을 경험했다. 첫 번째 충격은 2022년 11월 30일 아침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연구소가 완성품도 아니고 요란한 광고도 없는, 사전 예약 명단도 없이 조용히 공개한 ‘연구용 미리보기’판 챗GPT를 내놓았을 때 구글은 ‘코드 레드’를 선언했고, 각국 정부는 챗GPT를 ‘지정학적 비상사태’에 준한다고 봤다.
두 번째 충격은 2025년 1월, 중국 딥시크의 등장이었다. 비용 560만달러에 불과한 딥시크는 미국 최고 수준 모델과 맞먹었고, 그 결과 엔비디아는 단 하루 만에 시가총액 중 5900억달러가 사라졌다.
세 번째 충격은 ‘숫자’에서 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메타, 아마존, 애플은 2025년 1년간 AI 인프라스트럭처에 3640억달러를 쓴다고 했다.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고 독일, 프랑스, 영국의 국방예산 전체를 합친 숫자였다.
그 결과 미국과 중국은 ‘슈퍼파워’로 도약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AI 경쟁에서 앞서가는 게 아니다. 측정 가능한 대부분의 지표에서 모두를 따돌렸다. 세계 최고의 두뇌를 자석처럼 끌어들인다. 젠슨 황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야심가들을 모아 그들의 도박을 ‘미국의 자산’으로 변환한다.
중국은 챗GPT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쟁 우위의 본질 자체를 다시 정의 내린다.
특히 중국엔 딥시크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7월 베이징 스타트업 문샷AI가 공개한 K3는 미국 최상위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딥시크와 K3는, 중국이 정확히 이 순간을 위해 장기간에 걸쳐 국가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재설계한 결과라고 저자는 쓴다.
저자는 여기서 질문한다. 미들파워, 그러니까 AI 기술 패권의 ‘3등’ 자리는 누구의 차지일지를.
우선 한국의 경쟁국은 영국, 프랑스, 아랍에미리트(UAE)다. 영국은 딥마인드와 앨런튜링연구소를 통해 국가 규모의 성과를 낸다. 한계도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연합(EU)의 규제권역 밖에 놓였지만, 영국 기관들이 형성하는 데 기여했던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영향력이 소진되는 중이다.
프랑스의 글로벌 영향력은 국가 규모를 뛰어넘어 미스트랄AI, 프레리, 3IA 등의 연구소가 중심에 선다. 그러나 프랑스는 ‘유럽의 단결’에 의존하는 단점이 있다. UAE는 ‘돈’으로 리더십, 전략, 투자, 인프라, 동맹을 확보해냈다. 그러나 기초 연구, 국내 인재 확보, 신뢰 높은 규범 체계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책은 한국을 ‘스프린터’에 비유한다. AI 경쟁 대열에서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은, 스프린터의 강력한 엔진으로 최고 속도를 낸다. 세계 수준의 하드웨어, 메모리반도체 기반, 국가 주도의 투자,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 등이 강력하다.
그러나 이 스프린터에는 역설이 내재돼 있다.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는 빠른 추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로 달리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 아직 이러한 추격자의 속도를 새 패러다임의 창조로 전환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초 연구 기반은 얇고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가며, 하드웨어 자본은 과감하지만 민간 소프트웨어 자본은 주저한다.”
서두에서 저자는 “기계가 인간의 뇌처럼 학습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반세기 넘게 매달렸던 제프리 힌턴을 소환한다. 2023년 5월 1일, AI의 대부로 불리던 힌턴이 은퇴를 결심했을 때 그의 책상엔 튜링상이 올려져 있었고, 구글에서 10년을 보낸 뒤였다.
또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지만 그에겐 노벨물리학상(2024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75세 나이에 이른 힌턴의 결론은 적중했다. “AI는 인류에게 매우 위험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멈출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힌턴이 바라본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3등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더 깊이 밟고 있다. 이 경주에서 브레이크는 곧 패배이자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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