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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2, 2026

[끊는 사람들④] 중독된 딸에 중독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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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는 사람들]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과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열악한 교정 시스템의 문제, 중독의 사회적 요인, 여성 중독 당사자들의 막막한 현실을 전할 예정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③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두아(15·가명)가 두통을 부쩍 자주 호소하자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정신과를 찾았다. 두아가 처방받은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치료제를 여러 알씩 삼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병원을 바꾸고 처방약을 끊었다. 최초 처방 후 3개월 뒤, 두아가 문자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두아는 처방약 없이도 약국에서 쉽게 수할 수 있는 기침약, 수면유도제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었다. 엄마를 진짜 두렵게 하는 건 중학교 3학년짜리 딸이 자살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엄마와 딸을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엄마와 딸을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여진은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열심이다.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헬스장에서 운동한다. 이른 아침에는 교회에 다녀온다. 아는 사람이 많고 지인들을 잘 챙겨서 거의 늘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미술과 건축을 좋아하는 여진은 전시를 자주 챙겨보고, 날씨가 아름다운 계절에는 숲을 산책한다. 성실한 자기관리 덕분에 나이보다 훨씬 젊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여진을 딸 미나가 닮았다.

여진을 처음 보는 사람은 중독 당사자 딸을 둔 엄마라는 것을 절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미나의 파란만장한 중독 이야기(①편 참조)를 듣고 나면 의구심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동안 생지옥같은 시간을 이만저만 겪은 게 아닐 텐데, 저렇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나?’ 미나가 약을 하느라 며칠씩 집을 비우고 연락이 되지 않는 중에도 여진은 운동을 가고, 사람을 만났다.

그동안 중독 당사자 가족을 여럿 봐 왔다. 실제로 여진만큼 에너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가족은 드물게만 만난다. 물론 여진에게도 중독 당사자의 가족들에서 보이는 깊은 슬픔이 있다. 슬픔과 아픔으로만 살아서는 출구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하고 기쁜지를 다시 찾아냈다. 이렇게 괜찮은 것처럼 보이게 되기까지 여진이 지나온 시간은 충분히 길고 고통스러웠다.

공동의존, 중독 당사자에게 중독되다

여진은 미나에게 공동의존(또는 동반의존, Co-dependency) 상태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고 거들면서 점차 그 관계에 과몰입하고 의존하게 되는 것. 공동의존은 중독 당사자와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에게서 관찰된다.

여진의 하루는 오로지 미나의 상태가 결정했다. 미나가 약을 먹지 않은 날은 천국, 외출해서 연락이 되지 않는 날은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을 몇 번씩 오가는 날들도 있었다. 딸이 약에 손댄 이후 생긴 학업 문제, 인간관계 문제를 쫓아다니며 해결했다. 미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미나에게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자주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외동딸에게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준 엄마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는 동안 여진은 삶을 조금씩 잃어버렸다.

중독에 빠진 자식·배우자를 통제하고 구해내는 데 모든 자원을 쏟는 건 전형적인 공동의존자의 모습이다. 24시간 대기 중인 소방수와 같다. 중독 당사자를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추적하다가 그가 불을 내는 순간 바로 소화기를 들이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공동의존자는 돌봄 생활에 매몰돼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하게 된다. 상대를 위기에서 구해낸 효능감은 공동의존을 심화시킨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마찬가지다. 중독 당사자에게 중독되는 것이다.

미나에게 약물 사용 문제가 생긴 이후 여진은 불안이 극심해졌다. ‘자식 중독 문제가 있는 엄마치고 항불안제를 안 먹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걱정되니까 동선 확인하고, 계속 연락하고, 애 핸드폰 비밀번호가 뭘까 궁리하게 돼요. 내 생활보다는 애 생활에 맞춰지게 되는 거예요.” 뭐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었다. 몸도 상했다. “위가 작살이 났다”고 여진은 말했다.

중독 당사자 가족 모임은 여진의 ‘공동의존 선후배’가 모인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딸과 함께 생을 마감하려 한 엄마의 이야기도 아주 특별한 것만은 아니다. 끝이 없을 거라는 절망에 목숨을 끊으려다, 남겨진 중독자 딸이 다른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함께 죽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냈던 엄마의 말을 들을 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알코올 의존·중독에 빠지거나 가산·건강을 다 잃어버린 이야기도 심심찮다. 영재의 아버지가 400곳 병원에 전화한 것(②편 참조), 두아의 어머니가 딸에게서 일분일초도 눈을 뗄 수 없는 것(③편 참조) 모두 공동의존의 징후라고 볼 수 있다.

모자라거나 미련해서 공동의존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약물 사용 문제가 있다면 공동의존에 빠지지 않기가 오히려 어렵다. 장기간 독박 간병 끝 간병살인과 자살이라는 비극도 공동의존과 얼마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가족(간병인)의 삶이 환자를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상호의존이 깊어지고, 두 사람이 서로의 관계 속에 고립돼 갇혀 있다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공동의존은 잘못이 아니라 도움받아야 할 일이다. 중독에서 회복되어야 하듯 공동의존에서도 회복이 필요하다.

분리해야 사는 이유

‘어떻게 분리를 하라는 거야. 매일매일이 전쟁인데. 말이 좋아 분리지, 그런다고 내 생활이 돼?’ 미나와 분리를 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을 때 여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여진을 순덕은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다.

순덕은 필로폰 중독인 남편의 삶을 뒤치다꺼리하는 데 20대와 30대를 바쳤다. 남편에 몰두하느라 삶을 내팽개치게 된 지 14년이 된 어느 날, 불안장애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홉 살, 세 살 먹은 어린 아들들이 내맡겨져 있던 것도 그제야 보였다. 남편과 떨어지자고 처음으로 결심했다. 25년 전 일이다. 순덕과, 중독에서 완전히 회복한 남편은 사단법인 다시행복에서 중독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순덕도 공동의존자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의 상태가 어떤지부터 확인했고, 하루 마무리는 마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 따지는 걸로 끝났어요. 남편은 교도소 입·출소를 반복했고요. 사생활은 당연히 없었고, 교도소 면회나 변호사 사무실 가는 게 외출의 전부였어요.” 사람도 안 만나게 됐다. 내 삶이 왜 이런지 설명하고 변명하기가 싫었다. 인간관계 단절이 더 심한 공동의존을 불렀다. 악순환이었다.

공동의존의 지나온 순덕은 여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여진아, 미나를 포기하거나 버리라는 게 아니야. 통제하고 감시한다고 미나가 약을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미나를 더 건강하게 사랑하라는 거야. 미나를 살리겠다고 네가 무너지는 건 건강한 사랑이 아니야. 네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 발견해.”

여진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미나도 괜찮아질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영특하고 재능 많은 외동딸인지라 몰입을 끊는 게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분리해야 했다. “미나 핸드폰을 보고, 계속 추적을 하는 것도 결국 불안해서 그런 거였더라고요. 어느 시점부터는 핸드폰을 보려는 마음을 아예 접었어요. 운동은 거의 목숨 걸고 하고 있어요. 체력이 떨어지면 마음도 떨어지거든요.” 주위의 지지체계도 중요하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여진이 중독 당사자 가족 모임을 빼먹지 않고, 가까운 지인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이유다.

여진은 이제 미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분리하려 한다. 미나에게 집착하는 대신 딸을 다시 알아가려 한다. 부족한 게 없이 키웠다고 자부했지만 미나가 느끼기에도 그랬을지 돌아본다. 그러면서도 자책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글재주 좋은 미나는 구치소에서 엄마에게 수필 몇 편을 보냈다. 퇴고 한 번 없이 잘 쓴 글이다. 스스로를 “경계 밖의 사람, 섞일 수 없는 사람, 바깥의 사람”이라고 표현한 데서는 마음이 아팠지만 “너는 너도 모르지만 네 인생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쓴 글에서는 희망도 보이는 듯하다. 어느 쪽이 됐든 여진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할 것이다. (⑤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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