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노동절’인 추석···모두의 명절이 될 수 있을까[설명할경향]
명절 시가 스트레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한가위 추석입니다.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송편이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풍경이 떠오르는 날인데요. 하지만 평화로워야 할 명절은 누군가에겐 ‘과로’와 ‘위협’이 도사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성인 여성 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10명 중 8명이 명절 이후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겪는다고 답했습니다.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과도한 요리와 장시간 가사 노동’이 꼽혔습니다. 같은 해 추석 연휴 직후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의 하루 상담 건수는 평소보다 50.4% 증가한 1251건에 달했습니다.
명절이 ‘며느리 노동절’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는 수치들인데요. 모두에게 평등한 명절이 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가사노동. 경향신문 자료사진
명절 문화가 정책의 대상이 된 것은 2015년입니다. 당시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는 추석을 맞아 ‘양성평등한 명절문화’ 실천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남성의 육아·가사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아빠들이 모여 송편과 산적을 만드는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습니다.
이후에도 성평등은 명절마다 강조되는 주요 가치였습니다. 2018년 수립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는 ‘명절문화 개선’이 양성평등 정책 과제로 명시되기도 했지요. 주요 캠페인으로는 ‘친가’와 ‘외가’라는 표현을 ‘아버지 본가’ ‘어머니 본가’로 바꿔 부르기,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남성 장관들이 ‘응원 메시지’ 전하기 따위가 있었습니다.
2017년 여성가족부는 남성 장관 5명이 이번 추석 명절을 성평등하게 보내자고 말하는 ‘대국민 응원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런 정책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까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20년 실시한 조사에서 ‘성평등 명절 체감도’를 묻자 응답자 810명 가운데 43.2%는 ‘전보다 성평등해졌다’고 답했고, 39.3%는 ‘전과 똑같다’고 답했습니다. 답변에서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는 뚜렷했는데요. ‘지난해 추석 명절은 얼마나 평등했다고 느꼈는가’라는 질문에 여성은 평균 46.1점을, 남성은 70.1점을 매겼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명절 캠페인은 하루치 이벤트지만 우리 사회 성차별은 그보다 훨씬 공고하고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캠페인도 의미 있지만 그것만으로 차별과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예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주여성 노동자가 2024년 2월16일 서울 종로구 여성가족부(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서 결혼이주여성 노동자의 처우 개선 및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매년 비슷한 캠페인이 반복되는 사이 폭력과 차별의 구조는 또 다른 ‘취약한 위치’를 만들어냅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23년 이주여성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5345건으로 전년(4416건)보다 21% 늘었습니다. 성폭력 상담 건수도 전년(522건)보다 40.4% 증가한 733건이었어요. 가사 노동을 위해 입국한 이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자는 주장도 정치권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통계나 정책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추석 연휴를 앞둔 14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에 추석 맞이 문구가 걸려 있다. 권도현 기자
‘모두가 평등한 명절’은 단순히 남성이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돌봄과 가사노동을 떠맡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정 내 폭력에 취약해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피해를 제대로 발견하고 보호할 정책이 마련돼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 시작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가혹할 수 있는 명절의 풍경을 곰곰이 상상해보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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