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전통·자연·사람이 만들어낸 깊은 울림…안동 하회마을

낙동강이 감싸 안고 흐르는, 살아있는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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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안동하회마을[사진/정동헌 기자]
(안동=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낙동강이 감싸 안고 흐르는 하회마을은 물 위에 뜬, 한 떨기 연꽃처럼 고즈넉하다.
이곳은 옛 유적지가 아니다. 조선 시대 양반·서민 문화, 씨족 공동체의 전통, 실제 주민의 삶이 60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 천혜의 자연 속 '살아있는 유산'
수령 600여년의 삼신당 느티나무. 하회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이다. 마을 정중앙에 있다.
기와집과 초가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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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600년의 삼신당 느티나무[사진/정동헌 기자]
집들이 앉은 방향은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좋은 집들이 주로 남향인 것과 대조적이다.
큰 와가 주변에 초가가 원형으로 배치된 것도 특징이다.
양반이나 부자가 좋은 터를 독차지하지 않고, 양반과 서민이 어우러져 사는 풍경이다.
'하회'(河回)란 '물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낙동강 본류가 큰 'S'자를 그리며 마을을 껴안듯이 휘돌아가는 모양이 선명하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혹은 연화부수형이라고 일컬어진다.
마을을 둘러싼 산세와 물길이 마치 음양 태극 문양처럼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산태극 물태극'(山太極 水太極)이라 불렸다.
연화부수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을 의미한다.
마을 동쪽에는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화산(花山, 해발 328m)이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은 화산에 대응시켜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불렀다.
이곳 자연의 정취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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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사진/정동헌 기자]
하회마을은 조선 시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년 동안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 씨족 마을이다.
풍산 류씨의 하회마을 입향조인 류종혜 공이 15세기경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는 허씨와 안씨가 세거했다고 한다.
선조들이 살다 간 수백 년 세월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하회마을은 국보 2개, 보물 5개, 사적 1개, 국가민속문화유산 10건, 천연기념물 1건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탄생시켰다.
하회마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공동체적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가장 전통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999년 73세 생일에 하회마을을 방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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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사진/정동헌 기자]
◇ 국가유산 '보물'인 양진당과 충효당
양진당은 풍산 류씨 대종택으로, 입향조 류종혜 공이 마을에 들어와 가장 먼저 지은 집이다.
'양진당'이라는 택호는 풍산 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왔다.
양진당은 '입암고택'이라고도 불린다.
'입암'은 류운룡과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이다.
사랑채는 고려, 안채는 조선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평생을 청렴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옥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문하생과 지역인들이 선생을 추모해 지었다.
서애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늘 강조한 것이 당호의 유래이다.
양진당과 충효당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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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사진/정동헌 기자]
◇ 역사와 참회의 기록 '징비록' 집필지
"아! 임진란의 전화는 참혹하였다. 수십 일 동안에 삼도를 지키지 못하고 팔도가 산산이 깨어졌으며, 임금께서 피란하셨으니 그리고서도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천운이다. …중략… 시경에 이르기를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노라' 했으니 이것이 징비록을 쓴 연유라 하겠다."
류성룡이 징비록 서문을 통해 밝힌 저술 동기이다.
전쟁 전 일본과의 관계, 국민적 항쟁과 전황을 기록하고 임진왜란 발발까지의 조선 조정과 지도층의 실책을 반성한 징비록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선생은 벼슬을 떠나 귀향한 뒤 이 책을 썼다.
인조 25년에 간행된 필사본은 16권 7책이었다.
선생이 징비록을 썼던 곳은 하회마을 부용대 아래 있는 옥연정사였다.
옥연정사 맞은편에는 선생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거처했던 겸암정사가 있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나라를 구해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학문적 동문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학봉 김성일이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뒤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했으나 류성룡은 내부적으로 침략에 대비했다.
그는 전략에 능하고 강직했던 이순신과 권율을 군사적 요직에 천거하고 남부 지방 수비 태세를 강화했다.
이순신과 권율은 훗날 임진왜란 3대첩 중 2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끎으로써 전세를 바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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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만송정과 부용대[사진/정동헌 기자]
◇ 만송정과 부용대
마을에서 풍광이 특히 아름다운 곳은 만송정과 부용대이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만송정과 부용대는 마주 보고 있다.
만송정은 겸암 류운룡이 조성한 비보림이다.
겸암은 마을 서쪽의 땅 기운이 약하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변을 따라 펼쳐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소나무 1만여 그루를 심었다.
빽빽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여름에는 홍수 피해를, 겨울에는 찬 북서풍을 막아줄 뿐 아니라 낙동강, 부용대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만송정은 평소에 마을 사람들에게 휴식과 문화 공간이 된다.
'부용'은 연꽃의 한자 말이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인 부용대 정상에 오르면 연못에 핀 연꽃인 양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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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대[사진/정동헌 기자]
◇ 하회별신굿탈놀이와 하회선유줄불놀이
하회마을이 낳은 국보는 징비록 말고도 또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쓰이는 하회탈이다.
한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탈인 하회탈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주지(암·수)의 11개 탈이 전해진다.
총각, 별채, 떡다리 탈 3개는 분실됐다.
하회탈 11개는 국보로 지정돼 있다.
하회탈은 조형미와 기능이 뛰어나다.
양반, 선비, 중, 백정 탈은 턱 부분이 탈 본체에서 분리돼 있어, 말할 때 턱 부분이 움직인다.
가령 탈을 쓴 광대가 웃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면 탈은 입이 크게 벌어지며 웃는 모습이 된다.
화를 낼 때 광대가 고개를 숙이면 턱과 윗입술이 붙어 입을 꾹 다문, 화난 표정이 된다.
"탈은 신령스러워 탈 쓴 광대가 웃으면 탈도 따라 웃고, 광대가 화내면 탈도 따라 화낸다"는 말이 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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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사진/정동헌 기자]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2세기 중엽부터 상민이 놀았던 놀이이다.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고, 양반과 중을 풍자하는 내용이 많다.
이 놀이는 하회마을 내 전용 공연장에서 연중 상설 공연된다.
하회마을에서 별신굿탈놀이와 쌍벽을 이루는 놀이가 선유줄불놀이이다.
별신굿탈놀이가 상민의 연희였던 데 반해 선유줄불은 양반들의 놀이였다.
선비들은 음력 7월 부용대를 배경으로 시회를 열고 뱃놀이, 줄불놀이, 달걀 불놀이를 겸하여 풍류를 즐겼다.
부용대에서 만송정까지 공중에 동아줄을 치고, 숯 봉지를 매달아 허공을 밝혔는데 이를 줄불이라 불렀다.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10여 차례 주말에 부용대와 만송정에서 선유줄불놀이가 현대적으로 재현된다.
한일 정상 고향 셔틀 외교 차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올해 5월 안동을 방문해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도 줄불놀이가 재현돼 아름답고 격조 높은 문화로 격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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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변 벗나무 길[사진/정동헌 기자]
두 놀이에서 양반과 상민은 계급적 차이를 뛰어넘어 협력하고 조화를 이뤘다.
양반들은 굿판과 탈놀이를 위해 쌀과 돈을 내 물질적으로 후원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해학도 용인함으로써 신분 갈등을 완화하고 공동체 화합을 도모했다.
상민들은 줄불놀이를 위해 숯가루를 새끼줄에 꼬아 준비하고, 배를 젓는 등 진행 과정 전반에 노동을 보탰다.
하회마을을 자동차로 방문할 때는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IC)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고 편리하다.
수도권에서는 광주원주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영남권에서는 경부고속도로 또는 대구부산고속도로, 충청 및 호남에서 출발한다면 당진영덕고속도로 등을 통해 중앙고속도로로 합류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10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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