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엔 천장과 바닥이 없다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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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어느 유명 사립대 교수의 글이 화제였다.(공적 지면의 글이 아니었기에 실명은 적지 않는다.) 정부기관에서 강연을 요청받았는데 강연료가 30만원이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하루 종일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일반 노동자 일당이 30만원 정도”라며 “솔직히 모욕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는 “한시간에 수백만원”이라는 오은영 박사의 상담료를 예로 들며 “한 분야 최고 전문가의 한시간이면 그 가격이 꼭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대학교수의 노동이 “지식 교류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김영란법에 묶여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각 분야의 정상권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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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 본인이 “최고 전문가” 혹은 “정상권” 지식인인지는 판단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의 질문, “한 분야 최고 전문가”이자 “정상권”에 대한 대우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공동체의 분배 원칙에 직결되는 까닭이다. 참고로 이 교수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나 글을 통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처럼, 외국인 노동자를 한국 노동자보다 훨씬 싼 가격에 부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렇게 말하면 시장주의자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는 시장주의자가 아니라 차별주의자다. 노동의 질이나 효용과 관계없이 외국인과 자국민의 등급을 나눠 차별하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아무리 “최고 전문가”일지라도 평가절하당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교수 자신의 주장과도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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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진짜배기 시장주의’라면 어떨까?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적용해보자는 말이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비판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에게서 나왔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임금 계약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과 별개로, 고용주와 노동자는 협상력의 차이가 커서 근본적으로 불공정 계약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고용주는 노동자 없이도 길게는 1년도 버티지만 노동자는 일하지 않고는 며칠도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백년 자본주의 역사는 ‘임금의 시장 결정’을 제한해온 역사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노동법이나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발전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산주의 혁명은 그런 점진적 개혁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으려는 시도였다.
많은 시장주의자들은 스스로 현실주의자라 착각한다. 하지만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건, 오늘날 대부분 영역에서 통용되지 않는 비현실적 공상에 불과하다. 노동자 임금의 ‘바닥’을 정한 최저임금제도부터 그렇다. 특히 의료, 교육, 에너지 등 우리 일상의 필수 영역은 시장 원리보다 공공성이 우선한다. 대한민국 법은 교육을 영리 행위가 아닌 공공서비스로 보기에 매우 엄격한 규제 조항을 둔다. 사립대 교수 역시 교육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이므로 과도한 이윤 추구, 즉 ‘천장’이 제한된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취지 또한 이러한 공공성 가치를 향하고 있다. 따라서 ‘김영란법이 사립대 교수의 외부 강연료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은, 사실상 교육의 공공성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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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공공기관 강연료 체계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실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천장’이 아니라 ‘바닥’의 관점에서 그렇다. 공공기관들은 ‘장관급’ ‘차관급’ 등 직위로 급을 나눠 강연료에 차등을 둔다. 이건 시장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이고, 강연의 질과 무관하게 시간강사와 전업 작가 등 비정규직 지식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고착시킨다. 권위주의는 때로 시장주의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똑같이 나쁘다.
존 롤스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았고 시장 효율성도 긍정한 철학자였다. 그럼에도 약자의 ‘바닥’이 개선되는 한에서만 강자의 ‘천장 뚫기’를 인정했다. 또 그는 “유리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두번씩이나 유리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강자의 ‘천장’과 약자의 ‘바닥’이 뚫린 사회, 그곳엔 끝없는 비교와 경쟁이 만들어내는 불안, 공포, 고통만 존재한다.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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