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M&A, 계륵에서 화수분으로…‘시간 운용’ 능력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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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사이에 세계 10위권의 글로벌 사모투자회사들로부터 케이디비(KDB)생명과 교보생명의 지배구조에 관해 몇 차례 문의를 받았다. 산업은행(산은)을 떠난 지 4년 반이 지났지만, 과거 M&A실과 사모투자실에서 일할 때 KDB생명 매각에 고생하던 모습을 지켜본 인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새 주인을 찾지 못하던 보험사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왜 관심을 가졌을까. 왜 하필 지금, 여러 보험사가 한꺼번에 주인을 찾는 것일까.
오랜 기간 자본시장에서 보험사는 다루기 껄끄러운 ‘계륵’(鷄肋)이었다. 고령화와 중장기 저금리, 그리고 과거 경쟁적으로 팔았던 고금리 확정형 상품의 역마진 부담이 거대한 족쇄였다. 2023년 도입된 새 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는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게 해, 금리와 손해율 변화가 곧바로 자본에 반영되도록 했다. “사면 자본만 까먹는다”는 낙인 속에 보험사 매물들은 수년간 표류했다.
그런데 최근 기류가 급변했다. 10여 년 넘게 매각이 무산되던 KDB생명이 2026년 8월 마침내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우선협상대상자로 맞았고, 부실금융기관 지정 후 표류하던 예별손해보험 역시 오케이(OK)금융그룹의 품에 안길 채비를 마쳤다. 찬바람만 불던 시장에 온기가 도는 이유를 글로벌 금융자본의 눈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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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의 질긴 인연
2000년대 중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한 차입으로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주채권은행이던 산은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사모투자펀드를 조성해 대우건설과 금호생명을 인수했다. 금호생명은 이후 KDB생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2021년 대우건설은 중흥그룹에 팔리며 민영화됐지만, KDB생명은 재무 악화로 매각과 유찰을 반복하며 산은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2014년 이후 여섯 차례 매각이 무산됐고, 이번 일곱 번째에야 새 주인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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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M&A는 제조업과 셈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험사를 살 때는 자산뿐 아니라 수십 년 뒤까지 이어질 부채를 함께 산다. 과거 높은 확정금리를 약속한 상품은 저금리가 길어지면 역마진이 되고, 평균수명이 늘면 연금·장기보장 상품의 부채도 함께 늘어난다. 그래서 현재 이익보다 보유계약의 질,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자본적정성, 자산운용 능력을 함께 봐야 한다.
이 때문에 보험 M&A에서는 ‘얼마에 사느냐’보다 ‘사고 나서 얼마를 더 넣어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실제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인수 후 최대 1조원가량의 증자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매도자인 산은도 5천억원 안팎의 증자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예별손보도 예금보험공사의 정상화 지원을 전제로 입찰이 진행됐다. 오랜 매물의 위험을 매수자 혼자 떠안던 구조에서, 매도자와 공적기관이 위험을 나눠 지는 구조로 바뀌면서 거래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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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의 본질은 단순하다.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조달해 얼마나 높은 수익률로 운용하느냐의 싸움이다. 국가의 인가를 받아 대규모로 조달·운용하는 금융의 세 축은 은행, 증권, 보험이다. 은행은 싸게 조달하지만 규제로 공격적 운용이 어렵고, 증권은 운용에 강하지만 시장이 얼어붙으면 조달이 마른다. 반면 보험은 인출 위험이 거의 없는 수십 년 만기의 초장기 자금을 대주는 저수지다. 자산운용에 강한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안정적 장기 조달 창구에 갈증이 있었고, 대출에 능한 OK금융그룹이 조달 다변화를 절실히 원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대목에서 워런 버핏을 떠올리게 된다. 버핏이 평생을 바친 버크셔해서웨이는 보험사업이 투자 모델의 심장이다. 버핏은 보험료를 먼저 받고 보험금은 한참 뒤에 지급하는 사이 그 돈을 운용하는 거대한 자금, 곧 ‘플로트’(float)에 주목했다. 2025년 말 버크셔해서웨이의 플로트는 약 1760억달러에 이르며, 보험영업에서 이익까지 내면 이 자금의 조달비용은 사실상 0이거나 오히려 음수가 된다.
글로벌 대체투자회사들도 이 공식을 체득해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는 2022년 아테네(미국의 생명보험·연금보험 및 은퇴서비스 회사)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2024년 초 글로벌애틀랜틱(미국의 생명보험·연금보험 및 은퇴서비스 회사)을 완전 자회사로 품었다. 펀드에는 만기가 있어 아무리 아까운 회사도 때가 되면 팔아야 하지만, 보험사를 품으면 만기 없는 영구 자본을 스스로 조달하는 플랫폼이 된다.
그러나 값이 싸다고 반드시 좋은 투자는 아니다. 자본확충 부담, 해약 위험, 손해율과 금리 변동, 자산과 부채의 불일치가 인수 뒤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 플로트는 ‘공짜 돈’이 아니며, 먼 훗날 계약자에게 반드시 돌려줘야 할 돈이다. 정교한 자산부채관리와 자본력, 본업을 정상화하는 운영 역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장기자금의 바다는 순식간에 부채의 늪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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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보험이 갑자기 좋은 업종이 됐다는 뜻이 아니다. 가격이 현실화되고 매도자 지원이 더해졌으며, 비은행 금융그룹의 확장 욕구와 자산운용 경쟁력이 맞물린 결과다. KDB생명과 예별손보, 두 거래 모두 아직 최종 종결된 것도 아니다. 롯데손해보험도 신한금융과의 가격 협상이 결렬된 뒤 공개매각을 준비하고 있어 결국 숫자 싸움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M&A의 진짜 실력
M&A의 진짜 실력은 남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위험을 정확히 가격에 반영하고, 그 위험을 자신의 능력으로 줄일 때 드러난다. 과거의 관성에 젖어 외면받던 보험사의 빈틈에서 자산운용과의 결합이라는 실마리를 찾아낸 이들이 지금 판을 흔들고 있다.
보험사는 결국 오늘 받은 돈과 수십 년 뒤 지급할 돈 사이의 ‘시간’을 운용하는 회사다. 그 시간을 더 잘 다룰 자신이 있는 인수자에게 지금 매물은 마르지 않는 장기 자본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그런 능력이 없다면 싼 가격은 기회가 아니라 함정이다. 그러므로 보험 M&A의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하나로 모인다. “이 회사가 가진 긴 시간을, 나는 남보다 더 잘 운용할 수 있는가.”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uokiok11@gmail.com
반영은은 1992년 1월 산업은행 국제금융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2020년 M&A실장까지 주로 M&A와 사모투자펀드 업무를 담당하며 현대건설·하이닉스 등 대형 딜의 매각 자문, 금호아시아나그룹·현대그룹·동부그룹 등 대기업의 구조조정 M&A 업무를 수행했다. 2005~2008년, 2017~2020년 두 차례 산업은행 뉴욕지점장 등으로 근무하며 미국 금융시장에서 M&A 인수금융에 참여하는 등 선진 금융시장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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